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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를 타는 칼럼니스트, 이제나 나츠코
키 100센티미터, 체중 20킬로그램의 왜소한 몸에 선명한 색깔의 원피스, 손가락에는 색색의 젤 네일. 멋과 삶을 온몸으로 즐기는 일본의 칼럼니스트로, 전동휠체어 이용자이기도 한 이제나 나츠코伊是名夏子) 씨는 최근 몇 달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 전동휠체어를 타는 칼럼니스트, 이제나 나츠코 씨(1982년생).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자랐고 현재는 가나가와현에서 살고 있다. 대학 재학 중에 미국, 덴마크에서 유학했으며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대안학교 직원, 공립 초등학교 영어 강사 일을 했다. 저서로 『엄마 키는 100센티』가 있다. (촬영_오치아이 유리코) |
나는 “특별 대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올해 4월, 철도여행을 하려던 장애여성이 JR(Japan Railways, 일본철도) 오다와라역에서 겪은 ‘승차 거부’ 사건. 이제나 나츠코 씨는 장애인차별해소법에 근거해 ‘합리적 배려’를 제공할 것을 역무원에게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제나 씨는 JR 오다와라역-> 아타미역-> 기노미야역 경로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오다와라역 역무원은 기노미야역에 계단밖에 없다며 아타미역까지만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나 씨는 역무원을 3~4인 불러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나 씨가 일단 아타미역에 가자 4명의 역무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종착역인 기노미야역에 도착했을 때는 역무원이 전동휠체어를 나르고 이제나 씨는 활동지원인에게 안겨서 내릴 수 있었다. 당시 역무원은 “이번에는 특별히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종착역의 역무원이 “특별 대우”를 해준 덕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나만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당연하게, 편안하게 전철을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생각해봤으면 한다”며, 자신이 겪은 일을 블로그에 써서 공개했다. 관련 기사: https://ildaro.com/9140
평소에도 칼럼니스트로서, 장애를 가진 여성의 관점에서 본 사회와 마주하게 되는 장벽 등을 알기 쉽고 꼼꼼하게 전해온 이제나 씨.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글을 올린 후 온라인상에서 “제멋대로”라는 등의 악성댓글 폭풍에 휘말렸다.
국토교통성은 이제나 씨의 사례가 ‘승차 거부’라는 점을 인정하고, 각 지사에 개선하도록 주의 환기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이제나 씨에 대한 비방은 멎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장애인 당사자에게까지 “감사해도 모자라다”, “호소의 방식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오다와라역 역무원이 전혀 저와 협의하려 하지 않고 ‘못 한다’고 우기며 ‘합리적 배려’를 제공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제대로 협의와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SNS에 쓴 ‘승차 거부’ 사태가 평소에 장애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건지,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일부러 함정에 빠뜨린 거 아니냐 등의 감정적 반발도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제 방식대로 끝까지 목소리를 높일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있었지만, 악플은 격렬해졌고, 이제나 씨 가족의 개인정보마저 유출되는 상황이 됐다.
“비방의 내용을 보면, 제가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오키나와(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을 안 보면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다고 제가 생활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에 대한 인신공격을 보고 인터넷 사업자에게 신고를 하거나, 함께 들고 일어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 일본에서 2016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해소법은 평등할 권리(예를 들어 교통수단 이용)를 위해 단 한 명이라도 ‘배리어(장벽) 제거’를 요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국토교통성도 이제나 씨의 사례가 ‘승차 거부’라는 점을 인정했다. (출처: pixabay) |
혼자 해내려고 하지 말고, 의지하는 법 배우기
이제나 나츠코 씨는 오키나와에서 교사로 일하는 부모님에게서 ‘골형성 부전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 할머니, 두 언니, 이웃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이제나 씨의 삼촌도 지적장애가 있어서인지, 가족은 이제나 씨에게 제대로 걸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중학교까지 특수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부터 일반학교에 진학했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부탁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연애를 하기도 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독립생활을 했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경부터. 유학 갔던 덴마크에서 사람들이 장애가 있든 없든 첫 대면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저는 애를 쓰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못한다고 말해도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친구에게 부탁할 때는 친구의 일정에 맞추거나 여러 가지를 포기하거나 엄청나게 계획을 세우거나 둘 중 하나였거든요.”
귀국 후에 같은 장애를 가진 아사카 유호 씨를 만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아사카 유호 씨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권 이슈에 대해 목소리 내어온 일본의 장애여성운동가다. 관련 인터뷰 기사: https://ildaro.com/5268)
“제가 혼자서 슈퍼마켓에 가면 유호 씨가 화를 내요. ‘나츠코의 모습을 보고 장애인도 뭐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자기를 위해서도 주변 장애인을 위해서도 더욱 의지하라고.’ 그렇게 말해요.”
유호 씨는 이제나 씨에게 출산과 육아의 선배이기도 하다. 리스크가 높은 출산을 거쳐 현재는 여덟 살, 여섯 살 된 자녀를 키우는 이제나 씨의 생활을, 이제나 씨가 의뢰한 총 15명의 활동지원인이 1일 3교대 체제로 돕고 있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이웃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서인지, 지역 사회에서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매일 실감합니다. 여러 연결을 만들어 활용하면서 간신히 생활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 가정’으로 유학 체험해보길
사실 임신, 출산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이자 여성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의사를 만나기까지는 자신의 성을 무시당한 경험도 있다.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지역에 성폭력 사건이 많고 청소년의 임신이 많다는 사실도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포괄적 성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도 항상 얘기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청년들과의 연결’이다. “젊은 사람이 행복해지면 사회는 좋아져요. 어린이 권리조약에 있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존엄을 소중히 여기면 온라인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지 않겠죠. 그리고 청년들에게 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을 더 많이 전하고 싶어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앎으로써 장애가 없는 사람도 타인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겠죠.”
이제나 씨의 집에서는 ‘장애인 가정 유학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과 자원활동가, 활동지원인을 받고 있다. “인간관계가 희박한 지금 사회에서, 이렇게까지 사람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돕는 경우는 잘 없죠.”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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