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형 임대기업 소유 주택의 국유화…찬반 투표하는 베를린 시민 (상)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선거 운동의 열기로 뜨겁다. 오는 9월 26일은 메르켈 정권 이후 독일 연방을 이끌 정당을 뽑는 총선 날이다. 그리고 이날 베를린에서는 시의회 선거가 동시에 실시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에 3천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대형 민간 임대기업의 주택을 국유화하는 내용의 시민청원에 찬반을 선택하게 된다.
찬성표가 투표수의 과반을 넘고, 동시에 전체 유권자 표의 25% 이상이면 시민청원은 통과된다. 그렇게 되면 베를린시 정부가 대형 임대기업이 소유한 약 24만 채의 주택을 국유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투표가 총선과 함께 치러지기 때문에, 투표자의 과반 이상이 찬성한다면 유권자의 25% 찬성 기준은 어렵지 않게 충족될 것으로 예상된다.
▲ 임대기업의 주택 국유화를 위한 베를린 시민투표의 찬성표를 독려하는 홍보 포스터. 독일어 Ja는 영어 yes에 해당한다, 출처: https://dwenteignen.de/2021/08/termin-volksentscheid |
주택 국유화를 위한 청원을 이끌었던 “도이체보넨 국유화”(Deutsche Wohnen und Co. enteignen) 운동 측은 8월 초 본격적인 투표 독려 캠페인에 돌입했다. 도이체보넨은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부동산 임대기업이다. 상징적으로 도이체보넨의 이름을 청원 운동에 사용한 것이다.
국유화 청원 운동을 대표하는 로우츠베 타헤리(Rouzbeh Taheri)는 투표 독려 행상에서 “주거 문제는 베를린 시의회 선거의 핵심 의제가 되었으며, 우리의 운동이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며, 시민투표의 최종 결과와 상관 없이 청원운동이 이미 거둔 성과를 언급했다.
도이체보넨 국유화 운동은 실제로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주거 문제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또한 다른 대도시들도 베를린처럼 주택 임대료 가격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에, 베를린 시민투표의 결과에 모두 주목하고 있다.
빈곤층 전락 위기에 놓인 독일의 세입자들
2019년 4월 6일,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대도시에서 치솟는 주택 임대료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베를린에서 시위를 주도한 것은 도이체보낸 국유화 운동 측이다. 이날 시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당일 시위는 베를린에서만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이 참여했고, 전국적으로는 5만여 명이 참가했다. 주택 임대료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 2019년 4월 6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택 임대료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이 거리로 나왔다. 출처: https://mietenwahnsinn.info/aktuelles |
독일은 자가주택 거주 비율보다 세입자 비율이 높다. 임대료 상승은 시민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월세를 내고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레겐스부르크 대학의 부동산경제학 교수 토비아스 유스트(Tobias Just)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자가주택 거주보다 세입자 비율이 높은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빠르게 주택을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는 이를 위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빠르게 건설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 주도의 임대주택은 오랫동안 낮은 가격을 유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택 구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한 통일 이전 동독에서 주택의 소유가 제한적이었던 것도, 독일의 세입자 비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이다.
독일 도시연구소(DIFU)의 보고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독일의 자가주택 거주 인구 비율은 약 45%로, OECD 국가 중 스위스만이 독일보다 낮은 40%를 기록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는 자가주택 거주 비율이 낮다. 독일 연방통계청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베를린의 자가주택 거주 비율은 17.4%에 불과하다. 이는 독일 연방의 16개 주(州) 가운데 최하위다. 따라서 월세는 독일 서민들의 지출 목록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월세의 상승은 경제적 취약층을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코로나19 시국이 시작되면서 상승 폭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독일 대도시의 주택 임대료 상승은 심각했다. 2019년 독일의 7대 도시에서 새롭게 집을 구하는 사람은 2010년보다 40% 높은 집세를 내야 했다. 특히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2018년 베를린에서 60~80㎡ 사이의 집을 새로 임차한 사람은 2008년보다 88.7%가 상승한 금액을 부담해야 했다.
월세 상승은 취약층만이 아닌 서민의 가계에도 큰 부담이 되며, 은퇴 이후 노년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2018년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독일 대도시 가구의 40%가 수입 대비 권장 집세 비율(30%)보다 더 많은 집세를 내고 있다. 독일은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 집세를 올리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려면 높은 집세를 부담해야 한다. 주택임대회사들은 리모델링 같은 방법을 통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세를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높아지는 집세 때문에 청년들이 계속해서 부모 집에 머무르는 현상이나, 이혼 후에도 가정을 분리하지 못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 동독의 사회주의 주택을 상징하는 베를린 카를 마르크스 거리의 주택을 부동산 임대기업 도이치보넨이 구입한 것에 대해 세입자가 항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출처: https://berliner-mieterverein.de/magazin/online/mm0119/modell-gestreckter-erwerb-als-mittel-zum-vorkaufsrecht-der-kommune-011911a.htm |
공공임대주택을 민영화한 베를린 시에 원죄가 있다!
대도시 주택난의 가장 큰 원인은 공공 임대주택(Sozialwohnung)이 감소한 것이다. 2002년 독일에는 250만 채의 공공임대주택이 있었지만, 2017년에는 120만 채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독일 공공임대주의택 대부분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개인 사업자나 주거협동조합이 건설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어진 공공임대주택은 주의 정책이나, 정부의 지원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년에서 25년이 지나면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대도시로 인구가 유입되고 집세가 상승하면서 많은 공공주택이 일반 주택시장으로 돌아섰다.
베를린시의 경우는 시 정부가 소유한 많은 공공주택이 있었지만, 이것을 장기간에 걸쳐 민영화 한 것이 문제였다. 통일 이후 베를린시는 높은 비중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동베를린 지역의 주택 중 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의 비율은 39%였으며, 서베를린은 24%였다. 하지만 통일 이후 베를린시는 많은 공공주택을 민간에 매각했다. 부채를 줄이고, 필요한 리모델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사민당과 좌파당(2007년까지는 민주사회당)의 연정 기간 동안 베를린시가 많은 공공주택을 민간에 매각한 것은, 도이체보낸 국유화 청원 운동 과정에서 주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사민당-좌파당 정부는 6만 채가 넘는 주택을 민간에 매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층에 기반을 둔 두 정당의 연정 기간 동안, 베를린시는 주택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을 상실한 것이다. 당시 매각된 주택 중 상당수가 거대 주택임대기업에 넘어갔다.
2016년 12월, 베를린에는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의 적-적-녹 정부가 출범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시민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베를린의 주택난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도이체보낸이 동독의 사회주의 주택을 상징하는 카를 마르크스 거리(Karl-Marx-Allee)의 주택들을 구입하며 세입자들과 분쟁을 겪기도 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들이 ‘주택 국유화’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게 되었다.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김인건. 대안학교에서 철학 교사를 하다가 독일로 유학,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적 평등을 주제로 석사를 마치고 여행가이드를 하며 통번역, 독일 소식을 한국 언론에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에 관심을 둔 사람들과 움벨트(Umwelt)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번역을 하고 글을 쓴다. 역사 속 사회의 변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이론에 관심이 있다.
*네이버 뉴스메인에서 일다 기사 구독하기! https://media.naver.com/press/007
'저널리즘 새지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차 거부’당한 사실 공개했더니, 악플에 시달렸죠 (0) | 2021.09.08 |
---|---|
잘나가는 렌탈가전, 방문점검 노동자의 환경은 어떨까? (0) | 2021.09.01 |
솟구치는 월세, 베를린 세입자들 ‘주거를 공동경제로’ (0) | 2021.08.31 |
‘회사 책임 있다’ 270여명의 성희롱 소송은 무엇을 바꿨나 (0) | 2021.08.29 |
‘래디컬’이 뜨거운 이때, 래디컬을 제대로 들여다 보자 (0) | 2021.08.26 |
“페미 글은 썰면서 혐오 글은 봐주는 에브리타임” (0) | 202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