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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들: 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 섹션 기획
만연한 봄의 기운이 여름으로 넘어가려 할 때 찾아오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름의 끝자락으로 이동한 지 벌써 3년째다. 올해도 오늘(26일 목)부터 9월 1일(수)까지 서울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119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도 66작품을 공개한다.
올해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을지 살펴보다 보니 [쟁점들: 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 섹션에 눈길이 간다. 1970년대 이야기부터 2020년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시간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대만,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는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 행사인 [쟁점포럼 - 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 페미니즘 역사와 기억]도 흥미롭다. 8월 30일(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포럼 1부는 [지금 여기의 '래디컬': 트랜스/젠더/워]라는 제목으로, 2부는 [래디컬 퓨쳐리즘]라는 제목으로 6개의 발제와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당 당대표마저 래디컬 페미니즘을 언급할 정도로 그 명칭이 알려져 있지만, ‘잘못된’, ‘나쁜’, ‘한국식의’, ‘오염된’ 페미니즘으로 오해 받는 래디컬 페미니즘. 한편으론 ‘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과 쟁점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래디컬 페미니즘. 많이 이야기되지만,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이 ‘래디컬’에 집중한다는 서울여성영화제의 포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쟁점들 섹션을 꾸린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쟁점포럼을 기획한 권김현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을 만나 왜 지금 ‘래디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물었다. 또한 급진적인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에 대한 소개도 들어보았다. (박주연 기자)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올해 홍보책자를 살펴보며 올해 영화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권김현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좌)과 황미요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우) ©일다 |
Q. 요즘 래디컬 페미니즘 관련해서 말이 많은 것 같아요. 야당 당대표도 래디컬 페미니즘을 얘기하고, 야당 대변인은 최근 강도 높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옹호하며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에 대해서도, 문제는 “(선수의)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 레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했죠. 확실히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래디컬’을 이야기하는데, 그걸 들여다 보면 그 의미가 다 달라요. 그러니 도대체 래디컬 페미니즘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권김현영(이하, 권): 요즘 일부 언론에서 부정적 의미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래디컬이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이비 페미니즘’, ‘이상한 페미니즘’, ‘남혐 페미니즘’ 이런 의미로 쓰이는 거죠.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쓰는 래디컬은 어떤 특정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것의 통합으로 쓰는 거에요. 어떨 땐 메갈이였다가 어떨 때 꼴페미였다가 지금은 래디컬인 거죠. 그러니까 여성가족부도 래디컬이라고 하고 여성할당제도 래디컬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정말 래디컬인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어요. 그냥 그걸 래디컬이라고 비판하는 거에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래디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은데, 그걸 또 전부 아니라고 할 순 없는 맥락이 있거든요.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든지, 트랜스젠더 차별과 배제의 목소리를 낸다든지 등의 일이 있었고, 페미니즘 내부에서 그와 관련해 계속되어 온 논쟁이 있으니까요. 근데 그게 꽤 깊은 이야기이고 많은 것들이 연결된 복잡한 이야기라서, 논쟁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대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분노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말하며 ‘래디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등장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봐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지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동력이 많이 약해졌고, 그 안에서 어떤 가능성이나 희망을 보는 일이 줄어들었잖아요? 이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오히려 ‘진보적’, ‘민주적’이라고 말해 온 집단이 다 부패했고 자기들만의 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나눠먹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더 환멸감을 느끼게 되었죠. 이런 상황 속에서 급진적 사회 변화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과 요구가 집단적으로 등장한 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더욱, 이 열망이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나 배제와 같이 이상한 방식으로 향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래디컬이 뭐냐고 묻는다면, 래디컬의 의미를 확정하는 게 아니라 래디컬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답하고 싶네요. ‘래디컬은 이거야’가 아니라 우리에게 지금 급진적인 사회 변화가 필요한데, 이 급진적 사회 변화와 관련된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지금 나와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급진적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담론인지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 다큐멘터리 영화 <여자들의 중언- 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하네다 스미코, 일본, 1996) 중 (제공: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Q. 쟁점들 섹션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8편인데, 시대적 배경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더라고요. 엄청 고심하면서 선정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미요조(이하, 황): 앞서 얘기된 것처럼, ‘래디컬이 어떤 의미다’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고르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가 말하는 ‘래디컬’에는 (제2물결 페미니즘으로서의 래디컬이라는) 역사적인 시각과 동시대적인 시각이 모두 들어갔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구성을 할 때도 그런 부분을 고려했고요. 조금 의아하실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씨네 페미니즘 영화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래디컬 부분 커리큘럼을 짠다면 보통 이런 영화들을 선택하지 않거든요. 1970년대 씨네 페미니즘 영화들, 샐리 포터 혹은 샹탈 아커먼 작품들 등으로 구성하겠죠.
이 섹션으로 선정된 하네다 스미코 감독의 <여자들의 증언 - 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의 경우엔, 어디서든 한번 꼭 상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작품이었어요. 일본 190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분들이 이제 다들 고령이 되어, 그 때 운동에서 어떤 차별이 있었는지 증언하는 걸 담은 내용이죠. 이번 섹션에 맞겠다 싶더라고요. 영화를 찍는 방식에 대해서든, 평생 내가 어떤 운동에 헌신하고 내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대해서든, 래디컬이 뭔지 한번 물어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각 지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가장 논쟁적이었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을 때의 이슈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을 고르려고 했어요.
Q. 사실 저도 래디컬 페미니즘을 다루는 영화 섹션에 으레 있을 법한 영화들이 안 보이길래, 생각과는 다르네? 싶었어요. 린다 골드스타인 놀튼 감독의 <소녀들의 혁명 - 우리들은 급진군주다>는 영화 소개를 봤을 땐 교차성 페미니즘인데…?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권: 사실 전 래디컬, 교차성, 리버럴(자유주의) 이런 분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 자신에게도 그 세 가지가 다 있거든요. 그걸 정체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어떤 의제에 따른 기획 혹은 전략의 차이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교차성이라고 하면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거고, 래디컬은 급진적 사회 변화를 위해 대안과 실험을 논하는 거고요.
황: 이번 상영 영화들도 그렇게 분류되진 않는 것 같아요. 다 각자의 방식에서 래디컬 한 거죠. 영화 속 인물들에게 다 어떤 자부심과 회한이 있어요. 이 사회에서 뭔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고, 이끌어냈으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서 논쟁도 있고, 갈등도 있죠. 그럼에도 서로를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 다큐멘터리 영화 <소녀들의 혁명 - 우리들은 급진군주다>(린다 골드스타인 놀튼, 미국, 2018) (제공: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Q. 대만 여성운동의 이야기를 다룬 젠웨이쓰 감독의 <되돌아본 길 - 여성 정치참여의 발자취>(젠웨이쓰 감독, 1997)도 궁금해요. 대만의 여성운동 정보를 별로 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황: 대만은 퀴어운동도 굉장히 활발하고 페미니즘 운동도 활발해요. 이 영화는 1990년대 만들어졌고 당시 여성운동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성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동일시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을 거에요. 여성운동가들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는 것과 여성운동에 헌신하는 게 차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좀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요. 동시대 미국, 일본, 한국 등을 포함한 여성운동과 비교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영화에요.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이후 천수이볜 총통 시절 부총통을 두 번 하거나, 가오슝 시장을 세 번 했어요. 지금 총통인 차이잉원 정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면, 어떻게 차이잉원이 총통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죠.
권: 그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여성정치의 역사가 있다는 거죠.
Q. 쟁점들 섹션 영화들을 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이 섹션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아시아의 여성영화 제작 공동체> 섹션도 여성영화를 제작하는 ‘여성공동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쟁점들 섹션과 좀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황: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섹션은 작년에 ‘여성영화공동체 작품들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권김현영 집행위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건데요. 처음부터 아시아 여성영화 제작 공동체를 다룰려고 했던 건 아니고, 올해 여성영상집단 <움>과 <줌마네>가 다 20주년이어서 뭔가 해야겠다 하다가 이런 섹션을 꾸리게 되었어요.
권: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영상공동체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리터’(1989년 창립되었으며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변영주 감독 등이 주축으로 활동했다)나, 여성영상집단 움, 줌마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등의 단체들이 있잖아요. 이런 모임들을 응원하고 이들의 작품을 상영해야 하는 것이 여성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줌마네의 경우, 자신들의 동네에서 몇 십년 동안 그 활동을 지속해왔잖아요. 정말 대단한 일이고 어마어마한 역사죠. 이런 작업들이 <페미니스트 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많은 조명을 받았으면 싶었어요. 굉장히 중요한 사회운동이라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 기록들이 제대로 남겨지지 않고 흩어지는 일이 많은데 그것들을 모아서 다시 우리 안으로 끌고 와야죠.
황: 줌마네가 지금까지 워크숍을 통해 만든 작품이 386편이래요. 엄청난 숫자죠. 20년 동안 해 왔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고요!
▲ 오소리(이숙경), 하리(김혜정) 연출 다큐멘터리 영화 <줌마네에서 영화를 만드는 까닭은>(2021) 중 (제공: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Q. 쟁점포럼에서 이야기 될 내용도 무척 궁금해요, 1부 제목이 “지금 여기의 ‘래디컬’: 트랜스/젠더/워”더라고요. 워(war)이라니, 굉장히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 페미니즘 내의 난민 혐오나 트랜스젠더 혐오 등을 보면서 우리가 단일하다는 생각, 우리 민족은 단일하다거나 여성운동은 무엇이라고 단일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모든 전제가 다시 질문되어야 하고 다시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페미니즘 역사 안에서 이미 섹스 워, 젠더 워 이런 전쟁 같은 논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겠죠. 끝났으니까 이제 그 주제는 치우자고요. 근데 그 논쟁 아직 안 끝났거든요.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왜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는지 구체적인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고, 이렇게 다시 등장했다는 것 또한 그 때와는 다른 맥락이 있다는 거죠.
권: 사실 그런 논쟁은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역사는 계속 움직이는 중이고, 여성운동이 ‘한번 지르고 끝’인 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시공간적인 맥락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연대’, ‘여성집단’, ‘여성공동체’를 강조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영화제’가 래디컬을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특히 지금 젠더 논쟁에서는 ‘여성공간’이 쟁점이 되고 있죠.
권: ‘여성공간’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지금 얘기되는 걸 보면, ‘생물학적 여성들만, 트랜스젠더 빼고.’ 이런 식인데 전 여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대부분 남성이 없는 공간을 여성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남성의 의미가 중요해지지 않는 공간도 여성공간이 될 수 있잖아요. 남성적인 힘, 남성적인 권력이라고 하는 것들이 자리잡을 수 없는 공간, 그런 공간이 여성공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온 여성주의적 장소는 남성 지배에 저항하고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걸 지향하는 공간이기도 했구요.
외부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서 내부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당장은 어떤 안도감이 들지 몰라도 사실 굉장히 강박적으로 되기 쉽고, 그로 인해 훨씬 더 취약한 상태가 되기도 해요. 그 취약성을 계속 증명해야 하기도 하고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로 이야기가 확장되어야 해요. 그래야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가 지어졌던 세상에서 어깨를 펴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잖아요. 영화제가 늘 말하는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것도 그런 의미고요.
Q. 사회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래디컬이라는 이름이 여성들에게 임파워링이나 동기부여가 되는 건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내 파이(몫)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어요. 한쪽에서는 숏컷 헤어스타일이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증거고, 나쁜 거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기도 하고요.
권: 머리카락 길이 정도로 페미니스트임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 때문에 우리의 논의가 나아가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머리카락을 잘랐냐 안 잘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머리 모양을 하던 간에 그것이 나를 규정할 수 없고 누가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머리카락 길이 가지고 페미냐 마냐 하는 말에 ‘뭔 개소리야’하고 치워버리고, 다른 질문들을 던지면서 화제를 바꿔야죠. 우리가 안티페미니스트한테 자기 증명을 해야 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런 논의가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눠야죠.
Q. 그래서 포럼 2부의 주제가 [래디컬 퓨처리즘]이군요. 페미니스트로서 지금을 살기도 힘든데, 미래를 생각하고 얘기한다?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는데요.
권: 포럼 2부에 발제를 해줄 연세대학교 인류학과 김현미 교수가 한 말이 있어요. “미래라고 하는 건 도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미래에 살고 있다.” 저도 동의해요. 강의 때 종종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저도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급진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니라, 이미 그런 사회가 온 것처럼 살아야 한다”구요.
우리가 논의하고 싶은 미래는 ‘지금 내가 뭘뭘 희생하고 열심히 해서 10억을 모으면 나중에 행복해지겠지’ 식의 현재를 억압하는 미래주의 담론이 아니에요. 이미 그 미래가 온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죠.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너네 그렇게 살면 큰일난다’고 하죠. 그럴 때 ‘난 이미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런 나의 삶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논의들을 하고 싶어요.
▲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들이 갱 조직을 만든다 - 로테 초라의 흔적을 찾아서>(리스티네 람베르티, 마리아 바우마이스터, 독일, 2019) (제공: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Q. 쟁점들 섹션에서 특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황: 모든 영화를 다 추천 드리고요.(웃음) 그래도 하나 언급해야 한다면, 제가 최근에 다시 본 크리스티네 람베르티, 마리아 바우마이스터 감독의 <여성들이 갱 조직을 만든다 - 로테 초라의 흔적을 찾아서>을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독일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부장적 권력 관계의 다양한 측면에 대항한 FRG의 투쟁적 여성집단 로테 초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동시대에 기록되긴 힘들어요. 어쨌든 무장투쟁에 관한 거고 몸을 숨기며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의 통해서 래디컬의 의미를 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분리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끝까지 고민하고 끝까지 실천한다는 것이 어떤건지 생각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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