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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페스티벌 기획‧운영자들의 근황 토크
쿵쾅거리는 음악, 시원하게 내지르는 함성, 아티스트의 몸짓을 생생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우연한 만남들, 그 안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에너지. 축제라 불리는 그 공간은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혹은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없는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그런 축제가 사라진지 벌써 2년째다. ‘온라인 축제’로 대체되기도 하고 축소된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이전의 축제와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들의 축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건지, 축제가 계속될 방법은 정녕 없는건지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축제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아니라, ‘일상이자 생업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코로나 상황에 축제가 왠말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마주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축제를 이어나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왼쪽부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김미소 총감독,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백교희(쿄) 기획자,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홀릭) 조직위원장 ©일다 |
뜨거운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방역 수칙은 4단계로 올라간 8월의 어느 날,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있는 세 축제의 기획·운영자들을 만났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백교희(쿄) 기획자,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홀릭) 조직위원장,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김미소 총감독. 세 사람은 이런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눴다. 축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질문하는 뜨거운 시간이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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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각자 소개와 축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선우입니다. 홀릭이라는 활동명을 쓰고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퀴어퍼레이드와 한국퀴어영화제 등 성소수자를 위한 복합 문화예술 행사입니다. 2015년부터는 서울시청광장에서 퍼레이드와 부스 행사를 진행했는데, 코로나 이후엔 대부분의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 중입니다. 올해 22회를 맞이했고, 6월 26일부터 7월 18일까지 열렸어요.
백교희: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일하는 백교희입니다. 쿄라는 활동명을 쓰고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선정이나 심사 없는 자유 참가 제도로 24년 동안 이어져 온 축제로 독립예술 축제라고도 하는데요. 상업예술이나 순수예술과 조금 결이 다른 독립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을 응원하는 플랫폼이라, 실험적인 작품을 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찾아주는 곳이죠. 매해 70~80팀이 참여하고 있고 올해도 시작은 70팀 정도이긴 했는데 지금은….(멋쩍은 웃음)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8월 4일부터 시작해 29일까지 진행 예정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한 것으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김미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하고 있는 김미소입니다. 피스트레인은 2018년에 시작한, DMZ 철원 지역에서 하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7년에 한반도 상황이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이전엔 반전(反戰)을 노래했던 노래도 있고 축제도 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없네.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축제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다 시작하게 되었어요.
▲ 2018년 철원에서 열린 첫 축제 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모습. (Peace Train Inc.) |
2018년 첫 축제 때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고,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다른 뮤직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관객들이 함께 즐기는 장면이 연출되었어요. 그게 또 회자가 많이 되다 보니 2019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왔고요. 2020년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취소되었죠. 올해는 10월 23일, 24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Q. 프린지랑 퀴어문화축제의 경우는 2020년에도 열렸고, 올해도 진행이 되었잖아요. 상황이 어땠나요?
백교희: 프린지는 다양한 공간을 실험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거든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때도 잔디 위에선 못하게 해서, 그 공간 빼고 모든 공간을 다 썼어요. 계단, 경비원 대기실, 스카이박스, 심지어 전광판 아래에서 공연한 분도 있죠. 2019년 상암 문화비축기지로 이동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혼란 속에 놓여졌던 축제의 운명
코로나 이후엔 그런 오픈된 공간에서 공연을 하기 힘들어졌잖아요. 그렇다고 블랙박스형 극장 무대로 가진 못하겠는 거에요. 프린지를 찾는 예술가들은 그런 공간을 원해서 오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갤러리나 극장 중에서도 좀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곳들을 찾아 협업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되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죠. 정규 등록 공연장이 아니면 공연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시 공간에선 전시만 해야 되고 ‘어떤’ 퍼포먼스가 들어가면 사용불가라고 해서, 그 퍼포먼스에 대한 기준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또 없다 그러고. 구청도 시에 물어봐야 한다고 하고….
그래서 축제 시작하고 나서 취소되거나 연기된 공연도 많아요. 무관객으로 영상을 찍기로 한 곳도 있고요. 지금 프린지 홈페이지 들어가면 장소랑 시간 공지가 계속 수정되어서 난리도 아니에요.(멋쩍은 웃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블랙박스형 극장 공간으로 이동한 공연들도 있긴 한데요, 그런 극장에서 하고 싶지 않아서 프린지를 찾은 예술가들한테 다시 ‘극장으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죠. 그런 연락을 하고 설명하는 스텝들도 힘들어 해요. 울면서 전화하는 분들도 있고….
사실 작년에 공연예술축제, 거리예술축제들 대부분이 취소되었는데, 거의 유일하게 저희가 진행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작년이 기적이었구나 싶죠.
양선우: 퀴어문화축제만 혼란의 도가니인 줄 알았는데 다들 비슷하군요.(웃음) 저희도 작년에 처음 온라인 송출이라는 걸 해야 했어요. 내부 사정을 잠시 설명 드리자면,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을 기획단이라고 하는데요. 사무국 직원 빼곤 다 자원활동이에요. 대부분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죠. 그렇다 보니 온라인 송출이 더 힘들었어요. 완전 기술 분야잖아요? 없던 팀을 만들어야 했고, 새로운 걸 배워야 했고,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죠.
그리고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대표 행사인 퀴어퍼레이드는 오프라인 성격이 워낙 강하다 보니 온라인으로 기획하는 게 힘들었어요. 완전히 온라인으로 하는 건 너무 아쉽기도 해서, 어떻게든 오프라인에서 뭘 하려고 했죠. 결국 선택한 방식이, 한 사람이 큰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거였어요. 그걸 6군데에서 동시에 진행했고, 유튜브로 생중계했죠. 축하 공연들은 다 사전 녹화를 해서 중계했고요.
올해는 작년에 한번 해본 게 있어서 조금 더 안정된 느낌은 있었어요. 퍼레이드의 경우엔 인원도 조금 더 늘릴 수 있었고요. 원래 퍼레이드 할 때 행진 사이사이에 트럭이 있고, 거기서 음악도 틀고 춤도 추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니까 골프 카트를 빌려서 거기 스피커를 싣고 행진했죠. 그 골프 카트 뒤로 9명이 한 팀으로, 총 6개 팀이 행진을 했습니다.
▲ 올해 6월 26일~7월 18일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중에서 퀴어퍼레이드 모습. (2021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
백교희: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 포스터랑 슬로건(차별의 시대를 불태워라)이 너무 강렬하고 좋았어요!
양선우: 감사합니다. 올해 유독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보통 슬로건에 관심 안 가지거든요.(웃음) 사실 이렇게 쎈 슬로건을 한 적이 없어요. 2회 땐 “한 걸음만 나와봐” 였죠.(웃음) 작년이랑 올해 성소수자 혐오가 너무 많고 심했잖아요. 퀴어축제는 도심 밖에서 하라는 정치인도 있었죠. 그런 혐오와 차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성소수자들도 많았죠. 여성 차별과 소수자 차별도 계속 목격하고 있고요. 많은 이들의 억눌린 심정을 좀 반영하고 싶었어요.
다시 오프라인 행사가 가능해 지면, 그런 억눌린 마음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벌써 조금 걱정도 되고.(웃음) 근데 온라인 중계를 아예 안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온라인의 장점이 또 있더라고요. 퀴어영화제 같은 경우엔 조금 더 성과가 보이는 부분도 있어요.
백교희: (온라인 상영 덕에) 영화제 진행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극장에 못가는 관객들이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요.
양선우: 근데 확실히 온라인으로만 하면 한계가 있어요.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진행하기 어렵고, 소통이 원활히 안 되기도 하고요. 소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코로나 이후 회의나 모임을 하기가 힘들어져서 기획단 내 소통도 좀 어려워졌어요.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같이 일해도 얼굴을 모르는 상황도 생기고요.
김미소: 피스트레인도 작년에 취소되기 전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축제 날짜 즈음에 철원군에 확진자가 생겼고, 돌아가신 분도 있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다 입원하는 사태가 생겼는데, 외지인들이 오는 축제를 해도 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연기를 한 거죠.
온라인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 지역에 와야 지역이 활성화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거니까요. ‘결국 취소하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오프라인으로 시도한다!’는 게 내부 의견이었어요. 그랬으니까 라인업도 공개했고, 시간표도 공개했던 거죠. 그렇게까지 하고서 축제를 취소한 곳은 아마 저희밖에 없을 거에요.
축제 연기, 취소 사태를 경험하며 마주하게 된 질문
만드는 입장에선 이렇게 축제가 취소되면, 무기력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죠. 무엇보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된 피스트레인을 좋아해주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 분들도 고생했거든요. 대부분 외지에서 철원으로 오는 거잖아요. 숙소, 교통도 다 예약하고 일행들과 시간도 맞춰야 하고요. 한번 취소했다가 또 다시 예약하면서 계속 기다려준 사람들. 마지막까지 피스트레인을 응원해준 분들께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Canceled but not canceled”(취소했지만 취소한 게 아니다)라는 특별 콘텐츠를 만든 거에요. 관객인 당신들도 ‘못 왔지만 못 온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요.
작년과 올해를 보내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사람들의 전환이 참 빠르다는 거에요. 세상에 축제 없다고 밥 못 먹고 사는 거 아니고 문화예술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 다른 대체제가 자꾸 생기니까요. ‘사라져 가는 관객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축제가 왜 있어야 하는가, 축제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 인터뷰 현장에 놓인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퀴어문화축제 팜플렛들. 각 축제의 기획‧운영자인 인터뷰이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했다. ©일다 |
양선우: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퀴어문화축제는 참여하는 분들한테 정말 특별하거든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이 축제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퍼레이드 하는 날 다같이 광장에 모여서 서로를 확인하고, 평소에 숨겨야 했던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그 경험이 정말 소중하니까요.
코로나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은 더 힘들어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친구들을 못 만나서 우울해지고 고립되고, 더 가난해지고. 게다가 이런 힘듦을 외칠 수도 없고요. 차별금지법 하나도 제정하기 너무 힘들고…. 이렇게 나를 위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축제를 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죠.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도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축제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와 안전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온라인이 해답일까? 마찰을 내고 틈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
김미소: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고 한다면 정말 고민이 깊어지죠. 이런 축제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잘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축제가 우리에게 줬던 감각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가다 보니 이제 ‘국가나 지자체가 축제 같은 걸 지원해야 해? 돈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냐?’ 이런 얘기도 나오게 되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왜 서로를 마주하고 만나서 함께 하는 경험이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아이들의 언어발달이나 소통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길 하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니까 그런 감각을 배울 수 없는거죠.
온라인으로 수업 듣고 온라인으로 일하고 이런 게 편한 부분도 있죠. 그게 또 적응되다 보니 사무실에 다같이 있어도 카톡으로 대화하고 있고요. 근데 전 서로 만나지 않는 ‘마찰 없는 사회’가 괜찮은건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직접 맞닥뜨리고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날카로운 부분들이 깎이고,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근데 그런 걸 피하고 그냥 카톡에서만 얘기하는 반면,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선 오히려 혐오가 분출되고 있어요.
요즘 예술도 온라인에 적응하는 온라인 예술을 해야 된다, 기술과 결합된 아트앤테크를 개발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크랙(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의 가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축제의 역사를 보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축제는 ‘축’(祝)의 기능이 강조된 거지만, 오랜 기간 동안 ‘제’(祭)의 기능이 강했어요. 거의 제사였던 거죠. 사람들의 안녕을 묻고, 위로하고, 떠난 사람들을 기리는 형태였어요.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백교희: 올해는 정규 등록 공연장이 아니면 공연하지 마라 등의 일을 겪다 보니, 어떤 ‘구획’에 들어갈 수 없는 예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프린지에 오는 예술가들처럼 새로운 공간과 장소에 가고 싶어하고 실험하고 싶어하는, 경계에 있는 예술가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꾸 어떤 틀에 맞춰지도록 강요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이나 영상 촬영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면이 아니면 빛을 보지 못하는 공연들이 많아요. 어떤 특수한 공간에서 공연을 할 경우엔, 그걸 촬영한다고 해서 그 분위기가 담기지도 않고요.
Q.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해요. 축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도 발생하는데 이런 혼란 속에서 생계를 어떻게 꾸리고 있는지…
백교희: 생계라는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데요. 며칠 전에 전시 공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네 마네 할 때, 지자체 공무원이 “당신들이 축제를 강행하면 난 밥줄을 잃을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나도 여기 밥줄이 달렸는데, 누구 밥줄이 더 중요한 걸까, 우리가 그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생력을 키워야 계속 생존할 수 있다
김미소: 전 제가 참 순진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피스트레인 같은 경우엔 생각보다 무리 없이 지자체 지원금도 받았고 잘 진행되고 있는 편이었으니까요. 근데 코로나 이후에 다 멈춰버렸잖아요. 지원금도 그렇고요. 축제를 연다는 건, 늘 불안정성을 가지고 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정말 자생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지원금에 의지하다 보니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없고, 계속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고.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전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갈 생각인데, 고민이 많아요.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도 기후위기 등의 재해가 계속될 것 같은데, 그런 불안정성 속에서 어떻게 자생력을 가질 것인지. 결국 피스트레인을 좋아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 어떤 기업이나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풀뿌리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백교희: 지원금 관련해선 프린지도 고민이 많아요. 재정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가 계속 지켜야 하는 가치와 변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계속 토론하고 있어요. 매번 축제가 끝날 때마다 ‘이걸 계속 해야 하냐’는 이야기가 매번 나오거든요.(웃음)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가 늘 화두죠.
양선우: 퀴어문화축제도 어떻게 계속 생존할 것인지 고민이에요. 작년 20주년을 맞이해서 내부적으로 세대 교체도 좀 이뤄졌는데, 행정적인 부분도 좀 탄탄히 하고 싶죠. 후원해 주시는 분들한테 기부금영수증도 발행해드리고 싶고요. 그래서 2019년부터 사단법인으로 만들려고 준비했는데 서울시가 아직도 등록을 안 받아주고 있어요. 부서들마다 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면서 시간을 끌고 답변을 미루고…. 생존을 위해서 투쟁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네요.
▲ 2020년 8월 13일~23일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중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제공) |
Q. 오늘 문화예술과 축제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재해’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그런 논의가 좀처럼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미소: 일련의 일들을 겪다보니 굉장히 냉소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문화예술 왜 필요한데? (축제에 쓸) 예산으로 정말 힘든 분들 한끼 좋은 식사를 대접하는 게 더 의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예술만 하는 게 이제 예술의 역할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정말 왜 문화예술이 필요한지, 그걸 가시화하는 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사회적 역할을 가지는지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시대에 맞는 문화예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죠.
문화예술과 축제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함께 고민하자
백교희: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문화예술의 역할이나 기능, 필요성을 논의하는 부분이 약했던 것 같아요. 거리예술축제 중에 과천축제가 유명하고 역사도 오래되었거든요. 근데 그 축제를 지원하는 시의 시의원이 ‘과천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와서 우리 예산을 쓰는데,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과천축제는 ‘과천축제키즈’가 있다고 할 정도거든요? 과천축제에서 공연을 보고 예술가의 꿈을 키운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과천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일도 있는데, 시의원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이렇게 오래된 축제조차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김미소: ‘당신들이 자꾸 우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물어보니까, 우리가 입증하고 증명하겠어’가 아니라, 이제 이런 시대가 도래했고, 예술의 수월성이나 미적 가치 말고도 어떤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좋겠어요. 축제를 만드는 사람, 와서 즐기는 사람, 지원금을 제공하는 사람 등등 모두가 함께요.
백교희: 영국에선 작년에 국회의원 158명이 총리한테 공연 산업을 구제하는데 총력을 다해달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고 해요. 영국극장협회도 지금 극장을 지원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강조하는 성명서를 냈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더라고요. 본인들의 활동이 왜 중요하고,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지원이 필요한지 잘 설명할뿐더러 그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요.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Q.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코로나 이후 어떤 축제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백교희: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너무 꿈 같은 얘기여서.(웃음) 코로나 이후 온라인이니 메타버스니 이런 데서 축제를 하는 것도 생기고, 규모로 확 줄인 곳도 있고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근데 프린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하는 예술가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 대안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솔직히 내년이 어떻게 될지,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김미소: 피스트레인은 오래된 전통이 있는 축제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우리가 계속 지키고 싶은 고유한 정체성,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이에요. 온라인이냐 메타버스냐 이런 형식이 아니라 핵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DMZ는 뭐고, 피스(평화)는 뭐고, 뮤직 페스티벌은 뭘까. 이것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어쩌면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정말 오래 못 열릴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인간이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보는 행위, 그걸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는 그 감각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축제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양선우: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네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얼마 전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발족했어요. 대구, 제주, 부산, 광주 등에 이어 이 좁은 땅덩어리에 퀴어문화축제가 또 하나 더 생겼다는 거에요! 지리산 내에서의 다양성 축제도 있고요. 퀴어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그것을 어떤 형태로 구현할 것인가가 고민이죠. 특히 저희는 ‘안전’이 중요한 키워드거든요. 온라인으로 행사를 할 때도 댓글 창에 혐오발언이 등장하면 바로 삭제하고 차단하는 인원을 따로 배치했죠. 퀴어들에게 안전하고 또 퀴어의 삶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적어도 레즈비언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삶이 익숙해 질 정도까진 축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쉽게 오진 않을 것 같아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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