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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이후의 삶> 가정폭력 피해와 생계 사이

 

젠더폭력 생존자들이 기록하는 <폭력 그 이후의 삶>을 연재합니다. 젠더폭력을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피해와 저항과 생존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본 기획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41234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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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로 윽박지르며 날 공포에 떨게 만든 목소리를 기억한다. 내 뺨을 치고 목을 조르고, 주저앉은 나의 목 뒷덜미를 잡아 등짝을 때리던 손바닥을 기억한다. 그래도 가족인데 네가 이해하라며 가해자와의 ‘화해’를 종용하던 입 모양을 기억한다. 나의 기억들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하기도 하고, 가슴 위에 얹힌 돌덩이처럼 숨 막히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선가 중년 남성의 고함 소리가 들리면 속이 메슥거리고 몸이 굳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폭력이 있는 가정, 울타리가 없다는 절망

 

어린 나는 아빠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경찰들은 ‘학생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어야지’ 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혹시 정말 올바른 조치를 취하는 경찰이 온다고 해도, 당장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벌금을 물게 된다면 나에게도 타격이 올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에게 들을 원망의 목소리도 걱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고등학생이던 내가 손찌검을 당한 날, 폭행이 있었던 당일에는 엄마가 나를 달래고 위로하려 애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다시 문제가 불거지자 엄마는 왜 아직도 그 얘기를 꺼내냐, 아빠가 사과도 하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의 ‘옹졸함’을 탓했다. 아빠도 할아버지한테 맞으며 컸다면서 네가 이해하라는 말도 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어쩌라고?’였다. 아빠가 맞고 자란 게 뭐가?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데? 엄마는 왜 맞은 나보다 때린 아빠를 더 불쌍해해? 아빠가 날 때리고 후회하고 있다고?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왜 아빠를 용서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엄마의 말들은 ‘내 남편 욕하지 마, 내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지 마, 너만 힘든 거 아니야.’로 들렸다. 맞은 건 난데, 아픈 건 난데,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 나를 때린 사람을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엄마하고도 싸워버리면 정말 날 보호해줄 울타리가 하나도 남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또 다른 폭력이 벌어지던 날, 여느 때처럼 아빠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시끄러우니까 둘이 알아서 해’ 하며 나와 아빠를 거실로 내보내고 방문을 닫아버렸다. 곧 무자비한 손과 발이 날아올 것이라는 공포보다 ‘버려졌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나를 덮쳤다. 분명히 내가 구타당하고 있음에도 마치 타인이 맞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내 몸에 느껴지는 통각이 없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폭력의 한가운데에 내던져버렸다는 충격과 배신감이 고통의 빈자리에서 들끓었다.

 

그때의 나는 ‘맞아도 상관없는 사람’이라서 거실로 쫓겨났고, ‘때려도 되는 사람’이라서 맞았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들에 의해 내 존재 가치가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 아빠에게 맞은 날 쓴 일기


이번에도 아빠는 전처럼 나에게 사과를 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나는 이미 아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 또 언제 다시 때리나 보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 날밤, 혼자 방에 들어가 울며 일기를 썼다. 나는 절대 내 자식을 때리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나는 절대 내 자식을 상처 주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일기장을 꾹꾹 눌러가며 글씨를 썼다. 그제서야 온몸에 욱신거리는 고통이 밀려왔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고3 교실에서 홀로 미아가 되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나’를 알아내기 위해 가정폭력, 청소년 인권, 엄마와 딸의 관계 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맞고 자란 것이 왜 나를 때린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는지, 어째서 나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집을 나가는 등의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엄마는 왜 손찌검을 당한 나를 보듬어주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을 막는 것(회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고 싶었다. 미친 듯이 자료들을 검색해 그에 관련된 책, 신문 기사, 논문까지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빠가 나를 때리고, 엄마가 날 방치한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거라는 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나는 폭력의 대물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가스라이팅(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상대방이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청소년임과 동시에 여성이라는 교차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사실들을 지금처럼 언어화하지는 못했지만,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청소년인 내가 부모의 폭력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말대꾸’ 뿐이라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고,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 엄마를 미워하는 것이 죄책감 가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 폭력 이후에 읽은 책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등 관련 서적 사진


아빠의 폭력과 엄마의 방관, 심지어 ‘가족’이라는 관계성을 근거로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는 엄마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이후로 나는 더이상 그 관계성에 의해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딸에게 으레 바라거나 기대하는 역할들을 전혀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애정 표현도, 어버이날 편지도, 생일 선물도,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들에게 더이상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요구할 수 없어졌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학하고 싶었던 대학과 학과를 반대하는 엄마에게 더이상 대학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폭력의 피해자인 나의 편에 서기를 거절한 엄마에게 내 꿈을 지지해주길 기대한다는 건, 스스로 더 큰 상처를 받으려 발악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아빠라도 설득해야 하는데,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 어그러진 관계가 독이 되어 내가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갔다. 그렇게 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어차피 공부해봤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데 공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치명적이었다. 모두가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고3 교실에서 나는 미아가 되었다. 끊임없이 엎드려 잠만 자는 내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셨지만 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다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때는 내가 우울증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리 자도 계속 졸렸고, 폭식과 절식, 구토를 반복했다. 무기력함이 온종일 지속됐고 급기야는 현실 감각이 흐려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걸 느끼기가 힘들었다. 하교 후 방에 혼자 있을 때면, 나만 세상에서 붕 뜬 채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이 상태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집을 나왔을 때의 해방감, 그러나 그 후의 삶은?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니 이러다가는 정말 내가 스스로를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까지 자주, 강하게 든 것은 처음이었다. 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살기 위해 알바를 뛰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인 나는 역할 수행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을 느낄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높은 성적을 받는 것, 대회에 출전하여 상장을 받는 것이 학생의 역할이자 목표라고 배웠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공부 잘하고 상 많이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면 꽃길이 펼쳐질 거라는 기약 없는 말들. 당시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달랐다.

 

주어진 일을 해내면 다달이 ‘보상’이 통장에 찍혔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몸을 움직여 일하고, 출퇴근 일지에 근무 시간을 적으며 오늘은 얼마를 벌었는지 생각하는 일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하루하루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맞아도 상관없는 애’라서 쫓겨나고, ‘때려도 되는 애’라서 얻어맞았던 내 존재가 ‘일 잘하는 애, 열심히 하는 애, 일머리 좋은 애’로 바뀌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무너진 자아를 회복할 틈도 없이 아빠는 또 날 때렸다. 첫 월급을 받고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아빠는 거실에서부터 내 방까지 날 질질 끌고 갔다. 방바닥에 내 몸을 패대기치며 집을 나가라고 했다. 몇 달 전의 나였다면 돈도 없고 갈 데도 없는, 그래서 가해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미성년자 신세였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버스가 끊긴 시간에도 택시를 타고 24시간 카페에 갈 돈이 있었고, 카페에서 밤새는 동안 마실 커피를 살 돈이 있었고, 다음 날 아침 등굣길 버스를 탈 돈이 있었다. 게다가 나를 때린 저 사람이 벌어다 준 돈이 아닌, 내가 땀 흘려 번 내 돈. 내 돈은 나에게 구원이었다. 나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카페에서 밤을 새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다시 집에 어떻게 들어가지? 하는 걱정은 뒷전이었다. 노동은 나의 부서진 자아를 회복하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월급은 나의 존재 가치를 파괴하는 환경에서 내가 탈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일을 계속해야겠구나. 돈이 있어야겠구나. 그래야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미래의 내 삶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다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며칠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잠을 청하다 보니 수중의 돈이 점점 떨어졌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 곤란해지던 차에 마침 아빠가 나에게 예전과 같은 패턴으로 사과를 했다. 나는 속으로 잘됐다 생각하며 못 이기는 척 집으로 돌아갔다. 돈을 모아야 하니까, 돈을 모아야 독립할 수 있으니까 역설적이게도 다시 집에 들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슬프기도 했지만, 나는 안전한 독립을 목적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에 내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래의 큰 목적을 위해 지금의 비참함을 조금은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 가정폭력, 피해와 생계 사이. 원가정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에, 보호자로부터 폭력을 겪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은 딜레마에 처한다. (일러스트 제작: 두두사띠)

 

‘내가 처한 상황을 당장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은 직접 쟁취할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최저시급 겨우 받는 알바만 해서는 돈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아 대학도 진학하기로 했다. 원하던 대학이나 학과는 아니었지만,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도 나의 자아를 재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폭력에 노출되고 난 후, 혼자서 고민하던 사회적 약자와 인권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진 것도 좋았다. 확실히 얼굴 마주칠 일이 없으니 갈등도 줄어들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교수님, 흥미로운 강의들도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부모와 접점이 생기고 싶지 않아서 아등바등 혼자 벌어먹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며 대학생활을 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한편으론 저축도 하지 않고 술자리와 새 옷, 화장품, 데이트, 취미 등에 번 돈을 몽땅 쓰며 소비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저렇게 살아도 걱정 없구나’ 부럽기도 했다. 대학 수업도 쫓아가야 하는데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독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요원해보였다. 나도 남들처럼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성인이 된 나에게 부모가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을 일종의 ‘합의금’으로 생각하고 그냥 받기로 했다. 나에게 가한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돈으로 갚을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부모에게 빚 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일종의 합리화였지만, 이런 결정은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먹을 것 사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등록금을 내주는 사람, 노트북 사주는 사람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돈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전의 거대했던 증오와 분노가 그 몸집을 줄였다는 건 확실하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내가 탈가정을 하지 않고 최대한 이 집에서 붙어 있기로 마음먹은 순간, 나는 날 때렸던 인간, 내가 맞는 것을 방관한 인간, 나를 가스라이팅 한 인간과 함께 잠들고 같이 밥을 먹겠다고 결심한 것과 다름없다. 내가 예전의 증오심을 그대로 가지고 지금의 생활을 했다면, 지금쯤 나는 그 부정적 감정에 드는 에너지만으로도 기진맥진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마음 넓은 내가 합의금 좀 받고 봐준다는 생각으로 그들과 함께 살며 준비된 독립을 위해 돈을 모으는 길을 택했다.

 

내가 폭력을 당한 그 시점에, 혹은 성인이 된 순간에 바로 집을 박차고 나갔다면 가해자들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 혼자서 일상을 이어 나가는 것이 힘들어졌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 내가 비빌 언덕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과 공포, 외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심각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건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지금 탈가정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친구는, 탈가정의 원인이자 탈가정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내가 저 집구석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겠다’는 마음이 가져오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탈가정하지 않았지만, 내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폭력 이후의 삶’을 기록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었던 부분이 나에게는 며칠 간의 가출을 제외하고 탈가정 서사가 없다는 것이다. 폭력의 주체에게서 벗어나 본 경험이 없다는 것. 폭행의 빈도나 정도도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 같고, 글을 읽은 사람들이 무슨 저 정도로 유난이냐는 반응을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가정폭력 이후에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유의미하게 변하는 경험을 했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는 어떤 가정폭력 생존자에게도 감히 탈가정을 해라, 말아라 말할 수 없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처한 상황과 각자가 가진 약자성,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등은 서로 너무 다르고 또 다양하다. 내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택한 최선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겪었던 가정 내의 폭력은 수년 전이고, 현재는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으며 정신건강과 가족관계를 많이 회복한 상태이지만, 그러지 못한 상태인 생존자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최대한 자신을 위하고 보호할 수 있는 선택하길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생존자인 우리는 꼭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서로의 힘이 되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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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은요?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저자 성sung의 첫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아동기에 한국을 떠난 저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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