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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법 이후의 과제…이영희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 인터뷰

 

노동자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11조, 적용범위를 보면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나와있다. 특이한 부분은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다. 그러니까 가사노동자는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거다.

 

이 예외 조항으로 인해,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68년 동안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부당한 대우, 임금체불을 겪어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4대보험 및 최저임금, 휴가와 퇴직금, 실업급여 등에서 제외된 채 뼈아픈 시간을 보냈다.

 

▲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법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오랫동안 요구해왔다. 사진은 올해 3월, 가사노동자 보호법을 통과시키라고 국회에 요구하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가 있는데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는 가사노동자 당사자들과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의 단체. 노동 관련 연구자와 활동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 적용배제 조항’을 삭제할 것을 비롯해,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해왔다.

 

지난 5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가사노동자법)이 통과되었다. 드디어 국내에서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지만, 법안을 살펴보면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가사노동자법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업체)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에게 최소 근로시간(주 15시간)을 보장하고, 최저임금과 퇴직금 및 유급휴일과 연차수당을 적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직업소개(중개)를 통해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이나, 서비스 제공기관에 속한다 하더라도 정부 인증을 받지 않은 기관이라면 이 법에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내년 6월 시행을 앞둔 가사노동자법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계는 무엇인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이영희 노무사를 만나 들어보았다. 이영희 노무사는 특히 ‘플랫폼 가사노동자’ 보호에 관하여 목소리를 내어왔다. 법 시행까지 1년 가량의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하거나 새롭게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보았다. (박주연 기자)

 

▲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영희 노무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일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와 ‘사용자’(사업주, 고용인)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반면, 가사근로자법에는 ‘가사근로자’,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가사서비스 이용자’(가사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가 등장합니다. 이 ‘제공기관'의 위치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부 인증을 받은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만 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제공기관’ 조항을 넣었어야 했나 의문이 들어요. 사실 이 법을 만든 의미는 지금까지 부당하게 근로기준법 적용 논란을 겪으며 소외되어온 가사근로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모든 가사노동자들이 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제공기관에 속한 사람들만 법의 적용을 받게 만들었단 말이죠. 저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럼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고용되지 않은 가사노동자는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건가요?

 

“사실 지금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가능한 사업체에 고용이 된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요. 근로자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가사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적용 배제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건, 가사서비스 시장의 형태 때문이에요. 보통 가사노동자들이 (업체에 고용되지 않고) 중개업소로부터 알선을 받아 이용자 가정에 가서 일을 했단 말이죠. 이 경우 이용자 가정이 ‘사용자’인데, 그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었죠. 그래서 ‘가사사용인 적용 배제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가사근로자법’이 만들어진 건데, 제공기관에 속한 사람만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자들이 남겨지는 거죠.”

 



▲ 고용노동부에서 제작한 가사근로자법 제정 카드뉴스 중.


-이 법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되도록 많은 가사서비스 업체들이 정부 인증을 받도록 하는 게 관건이겠군요?

 

“그래서 가사근로자법 5장에 ‘가사서비스의 촉진’이라는 조항 아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에게 조세 감면과 사회보험료 지원을 해 준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세제 혜택이라는 건 분명 적지 않은 혜택이기 때문에, 업체들이 제공기관 인증을 고려하게 되겠죠. 하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 조세 감면 및 사회보험료 지원에 대한 시행령이 아직 어떻게 만들어질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에요. 업체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지원이 있을지 알 수 없고요.

 

거기다 가사서비스 이용자가 제공기관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용자 입장에서 이용 편의성, 서비스 질과 관리에 대한 신뢰성(이용자의 평가 코멘트, 넓은 선택권, 공시된 서비스 내용 및 가격)이 있는 플랫폼 기업이 아닌 제공기관을 선택할까요? 플랫폼 기업과 제공기관이 과연 경쟁이 될까요? 이 또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에요.

 

플랫폼 기업이 제공기관으로 인증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싶을 텐데요, 과연 플랫폼 기업들이 제공기관 인증을 받을지도 의문이거든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세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냥 지금처럼 ‘중개’만 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있을 수도 있죠. 지금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 의무’가 없으니까요.”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의무’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플랫폼 가사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해서 설명해주세요.

 

“노동법에 적용된다는 건, 사용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생긴다는 거에요. 반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로서 보호를 받는다는 말이고요. 그런데 지금 대다수의 플랫폼 기업은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한 게 아니거든요. 그냥 이용자와 근로자를 알선하고 중개료를 받고 있죠. 그러니까 이들은 노동법 상 사용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사용자 의무가 없는 거죠. 이런 상황인데, 과연 플랫폼 기업이 ‘제공기관’ 인증을 받으려고 할까요? 그러니까 가사서비스 플랫폼 기업이 제공기관 인증을 받고 근로자 고용을 하게끔 하기 위해선,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해요.

 

그리고 사실 지금 플랫폼 기업들의 실태를 보면, 사실 단순히 중개나 알선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사용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노동 배치도 하고, 통제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건 문제거든요. 이 논의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자칫 플랫폼 기업과 제공기관을 구분시키고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없애주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법 조항에서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이 삭제된 것에 대해 큰 유감을 표했는데요. 공익적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육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사근로자 노동권 운동의 목적은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법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배제되어 왔던 가사노동자를 위한 법을 만든다고 한다면,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잖아요? 그럼 노동친화적 기관을 육성하고, 분쟁이나 고충을 처리-조정하고, 노동권을 보호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교육도 진행해서 전문성 향상에 힘써야죠.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이 경력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점, 전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에 어려움을 표했거든요. 몇 년을 일해도, 경력이 없는 사람들과 임금 차이도 안 나니까요. 그런 부분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노동자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건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 제공기관엔 그런 의무나 역할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국가/정부에서 공익적 제공기관을 육성, 지원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해외에서도 협동조합, 비영리 기관 등의 형태를 띤 공익적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사례들이 있어요. 영국의 선더랜드 홈케어 협회나 월셸홈케어 협동조합, 이탈리아의 카디아이 협동조합 사례, 미국의 메릴랜드주 여성연합의 협동조합운동, 미국 뉴멕시코주의 라메사협동조합 등이 있는데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첫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목표하고) 둘째, 서비스 이용자 및 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사노동자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 교섭하고 활동하며 셋째, 가사노동자의 전문성 향상, 인권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에 힘쓴다는 거에요.

 

단지 제공기관에 세제 혜택만 줘서 가사노동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도 꼭 논의되어야 합니다.”

 

▲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가사노동자들도 사회보험과 퇴직금, 유급휴가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법망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사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 가사노동 서비스를 제공 받는 사람들이죠. 가사노동자법엔 이용자의 의무나 책임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더라고요.

 

“가사서비스 노동의 특징이 이용자의 집/공간에 가서 일한다는 건데요. 그런 점에서 가사근로자의 노동권을 보호한다는 건, 이용자로부터의 보호이기도 합니다. 이용자의 책임도 강화되어야죠. 지금보다 조금 더 세부적인 부분들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가사노동자법은 서비스 이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생명/건강/재산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조성할 것, 나이, 성별, 상태에 따라 충분히 배려할 것을 규정하고 있어요. 아일랜드엔 ‘가사노동자에 대한 수색은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허용되고, 수색 시 당사자 입회 시 하며 편지나 전화의 도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례가 있고요.”

 

-이 법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오히려 법 제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사노동자법 시행까지 약 1년이 남았는데요. 앞으로 필요한 논의나,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를 정리해주세요.

 

“가사노동자법이 만들어졌지만, 저는 여전히 ‘가사사용인 법률(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항이 없어지지 않으면, 개별 이용자에게 직접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는 법률 적용에서 배제되고, 선별된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노동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거든요.

 

(국내 정서에는) 개별 가사서비스 이용자가 고용보험 등을 내는 부분이 낯설 수는 있지만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선 ‘내니 세금 제도’(Nanny Tax)가 있어요. 이처럼 개별 이용자에게도 소득세, 고용보험료, 사회보장세 등의 신고 및 납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공익적 제공기관’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가사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러 노동 시장과 연관되어 있는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 강화 논의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부족한 부분, 보완해야 하는 부분들을 개정해 나가면서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한 좋은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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