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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 이후에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다

 

“올라오는 첫날부터 청와대 진격 투쟁했어요. 경찰하고 몸싸움하고 잡혀가고. 그때는 ‘다 잡혀가자’하는 심정으로 올라온 거죠. (...) 경찰이랑 싸울 때 우리가 절대 안 밀리더라고요. 진짜 잘하더라고요.” 일다 기사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② 위험한 캐노피 위, 수납원들은 어떻게 98일을 버텼나> 중, 2020년 4월 8일 https://ildaro.com/8694

 

≪일다≫ 위험한 캐노피 위, 수납원들은 어떻게 98일을 버텼나

※ 작년 6월,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면서 이들의 실태가 알려졌다. 공공부문이 얼마나 많은 용역 노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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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19년 6월 30일. 전국 영업소에서 일하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천여 명이 서울로 왔다. 이들은 도로공사 지시를 받아 일하면서도 용역업체에 속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고용은 불법이었다. 법원은 한국도로공사에 ‘불법 파견’ 책임을 물으며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다.

 

수천 명을 직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도로공사는 꼼수는 부린다. 바로 자회사 설립이다. 요금수납원들에게 자회사의 정규직이 되라고 했다. 제안을 거부한 1천 5백 명은 해고당한다. 이 중 천여 명이 서울로 ‘투쟁’하러 온 것이다. 40여 명은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랐다. 다른 이들은 거리에서 밤을 보냈다. 청와대 앞,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 국회의원 사무실, 어디서든 싸웠다. 이들이 싸울수록 세상이 여성들에게(그리고 장애인, 경제 취약층에게) 어떤 일자리를 남겨 놓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 2019년 6월, 전국에 흩어져 일하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대량해고에 맞서 서울톨게이트로 모였다. (사진: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기약 없이, 출근 날을 미룬 한국도로공사

 

투쟁이 해를 넘기자,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직접고용 하겠다는 의사 말고는 확인된 것이 없었다. 복귀 후 업무와 처우 등도 도로공사 자의대로 주어질 것이 뻔했다. 아쉬운 결과이지만, 기나긴 싸움의 성과이기도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안을 받아들이며 거리농성을 마무리한다. 농성 217일째인, 작년 2월 1일이었다.

 

하지만, 출근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코로나19 확산을 빌미로 도로공사는 출근 날을 통보하지 않는다. 벌이도 없이 출근 날만 기다리길 수개월. 이들이 첫 출근을 한 것은 그해 5월이 되어서다.

 

출근 소식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던 것도 잠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들이 도로공사 본사에서 매주 선전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복귀한 지 1년이 지나 있었다. 본사 점거로 인해 고소고발된 이들이 징계(직무 정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들을 만나러 갔다. 이제는 요금수납원이 아닌 ‘현장지원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다.

 

‘현장지원직’이라는 임시 직군으로 버텨내는 중

 

“투쟁이 편하고, 투쟁이 쉬웠어요. 직장생활하면서 싸우는 게 더 힘들어.”

 

문한수 씨의 말이다. 도로공사 눈치에 회사 생활이 쉽지 않은 것은 알겠다만, 투쟁이 더 편했다니. 설마 싶었는데, 그와 같이 성주지사에서 근무하는 김미이 씨도, 이진희 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수납업무와는 전혀 다른 일이 주어졌다. 도로정비 등 대부분 청소 일이었다. 게다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향해 ‘시험 보고 들어오라’며 반발하던 도로공사 정규직원들과 같이 일해야 했다. 편치않을 것이 뻔하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사가 바글바글”했다. 

 

▲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현재 한국도로공사의 ‘현장지원직’이라는 직군으로, 고속도로 관리 및 청소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도로공사 사원증은 이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사를 하는데 부동산에서 우리 애들한테 엄마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까. 한국도로공사 정규직이요! 이러는데 내가 얼마나 웃겼는지…”

 

김미이 씨의 말을 문한수 씨가 받아친다.

“정규직이 뭐라고. 정규직 되고 나서 월급도 더 적은데.” 

 

법원은 이들을 현장(실무)직으로 고용하라고 권고했으나, 도로공사는 현장지원직이라는 임시 직군을 따로 만들었다. 이 새로운 직군에겐 현장직보다 한 단계 낮은 기본급과 수당이 주어졌다. 심지어 임금피크제까지 적용해, 월급명세서를 보면 다수가 최저임금이었다.

 

미이 씨도 웃음을 거둬들이고 말한다.

“현타가 진짜 많이 오긴 했어요. 내가 이러려고 싸웠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그런 시기는 이제 좀 지났지. 1년이 됐으니.”

 

현장지원직 업무는 갓길 덤불 치우기, 고속도로 쓰레기 줍기, 졸음쉼터와 주차장 청소 등. 생전 치우지도 않던 장소까지 들춰 일을 시켰다. 누군가는 이리 말했다. “우리가 도로공사 50년 묵은 때를 다 벗겨내고 있어요.” 일다 기사 <‘도로공사 수납원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중, 2020년 5월 11일 https://ildaro.com/8726

 

≪일다≫ ‘도로공사 수납원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들어가서 청소해요.” 지난해 9월 한국도로공사 정직원이 된 이는 이렇게 말했다. 불법 파견 여부를 가르는 근로자지위소송에서 대법 판결(직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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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마저 불규칙하게 주어진다. 그러니 작업 중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 승합차 안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영업소 수납노동자 시절, 쉴 새 없이 ‘부려먹혔다’고 한탄하면서도 자신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굴러가던’ 일터를 뿌듯해하던 이들이다. 지금은 자신들을 ‘잉여’라고 명명하는 일터에서 버텨내고 있다.

 

위축되고, 시키는 대로만 하던 ‘을’은 이제 없다

 

업무 매뉴얼도 없기 때문에, 이들은 현장에서 업무 지시 내용이 정당한가 매번 고민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위험한 것은 하지 않는다. 낫질, 톱질 안 한다.” 회사가 기준을 만들지 않으니,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야외 일의 특성상, 안전교육과 숙련이 필요한데, 고려 없이 일이 주어지니 다치는 일이 잦았다.

 

문한수 씨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려는 동료들에게 말한다고 했다.

“우리 열심히 싸우지 않았냐. 뭘 하려고 열심히 싸운 거냐. 돈 많이 벌려고? 이제는 잘못된 건 잘못이라고 이야기하고 고치라고 이야기하고. 위험한 거 있으면 안 하겠다고 해야지. 할 말 하고. 그게 투쟁에서 배운 거죠.”

 

톨게이트 영업소 시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던 ‘을’은 이제 없다. 사무장 점심 식사를 차려주고, 사장의 텃밭을 일궈주고, 도로공사 정직원 다과를 대접하는 일을 ‘업무’라 여기며 일하던 시절은 옛날 옛적이다. 2년 전 서울로 ‘투쟁하러’ 올라오며 버렸다.

 

“영업소 때는 용기도 없었고. 영업소 생활이 그렇지. 위축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그걸 입 밖에 낼 용기가 없었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당당함도 생기고.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고. 투쟁한 이후에 내가 바뀐 거죠.”(이진희)

 

몇 번이나 들은 말이다. 들을 때마다 의아하다. 이백여 일 동안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냥 평온한 200일이 아니고. 투쟁도 밋밋한 투쟁이 아니었고. 정말 드라마틱했으니까.”

“매일이 전쟁이었지.”

“투쟁하면서 처음에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고. 모이라 하면 모이고. 가라 하면 가고 이랬던 사람들이 부대끼고 소리 지르고. 속에 있던 감정들이 깨지면서, 말 못하고 당했던 그런 것들이 가감 없이 나온 거죠. 그러니까 뭘 해도 안 무섭고.”(김미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정말 잘 싸웠어.” 217일은 자신들에게도 의아하고 기특했던 시간이었다.

 

“그땐 ‘이거라도 해야지’였는데. 돌아보면 ‘우리 이것도 했어?’ 이렇게 된 거죠. 지금 돌아보면 대단하다. 미쳤다.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 있었을까.”(이진희)

 

그렇게 한참 ‘그때 그 시절’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오, 투쟁 이야기는 더는 듣기 싫고 말도 하기 싫고 그런다면서. 그런데 모이면 투쟁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남자들 군대 얘기처럼. 모이면 투쟁 이야기인 거야. 신이 나 가지고.”(김미이)

 

지루한 대기 시간, 승합차에 옹기종기 모여 누군가 입을 열면 그때 그 시절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사원증 찍고 들어간 공사 안의 ‘밥줄 질서’

 

“내가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는데, 출근 안 하고 이것만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든 거에요.”(김미이)

 

요즘은 주마다 날을 정해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 본사에 가서 선전전을 한다고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업무 재배치와, 도로공사가 직무 정지시킨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를 철회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한수(톨게이트지부 정책부장) 씨를 포함해 11명이 대상자다. 그는 휴게실에 내내 앉아 있는 것이 일이라고 했다. “덕분에 사람들이 되게 높은 사람인 줄 알잖아요.” 일은 안 하고, 작업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안전하게!” 이러니 현장직 사람들이 저 사람은 얼마나 높은 사람이냐고 묻는단다. 말은 저리해도 앉아만 있어도 살이 빠진다. 재판 결과에 따라 해고될 수도 있다.

 

▲ 요즘은 주마다 날을 정해,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 가서 선전전을 한다.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선전전을 하러 오랜만에 본사에 간 날, 정문 입구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갔단다. 김천 본사 점거농성 시절, 굳게 닫힌 문을 눈물범벅을 해서 힘으로 밀고 들어갔었다. 그때가 1년 반 전이다. 용역업체 소속 직원일 경비노동자가 “뭐 하러 오셨어요?” 묻자 “집회하러 왔어요”라고 해맑게 대답했다. 물론, 문은 막혔다.

 

“차 들어가는 입구를 막는 거에요. 우리가 차를 정문에다 세워놓고 내려버렸어. 조끼 다 입고 피켓 시위하러 간 거죠. 우리가 우리 회사 간다는데. 뒤에 차가 쭉~ 서 있어요. 결국, 열어줬어요. 자기들이 출근을 못 하니까.”(김미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각 지사에서 어떻게 기운 잃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직장에서 말단 직급이 소리를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도로공사로 출근을 한 톨게이트 노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저 안에 계급이 있더라”고. 같은 정규직 직원끼리도 사무직과 현장직으로 나뉘어 줄 세워졌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현장직 아래 현장지원직은 맨 ‘아랫사람’이다. 그것이 밥줄 질서였다.

 

밥줄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행동은 ‘막무가내’ ‘떼쓰기’로 보일 것이다. 순응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이들이 할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밥줄 지킨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밥’은 위계에 순응하면 주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낸 권리였다.

 

나를 찾는 싸움…직장에서, 가정에서 ‘위치’가 변화하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사원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현장지원직 일을 두고 투덜거리면서도 이진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섯 시 퇴근 안 하면 어떻게 사나.”

 

톨게이트 시절, 밤낮없는 3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여자가 일하기(그러니까 여자가 집안일과 병행하기)’ 편하다고 하던 이들이 이제 여섯 시 퇴근을 말한다.

 

“처음 발령받아서는 숙소도 없이 지사 대기실에서 지내야 했는데. 어느 날 옥상에서 영업소가 보이는 거예요. 어둑한데 거기만 불이 커져 있는. 저기서 일할 때는 지금이 한창 일할 시간이었는데. 왠지 생경하면서도 ‘제 시간’에 출퇴근하는 생활을 한다는 안정감이 들더라고요.”

 

타지 발령을 받아, 가족과 떨어져 산다. 전국 지사로 흩어져 배치됐다. 진희 씨도 수도권에 있는 집을 두고 이곳으로 왔다. 떨어져 사는 것이 힘들 줄 알았는데, ‘집’에 매이지 않는 직장생활을 처음 겪는 중이다. 진희 씨는 살짝 웃음을 섞어 말한다.

“나 혼자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은 거 같아요. 집도, 애들도 다 잘 있으니까. 나만 잘하고 살면 걱정이 없다고 생각해요.”

 

217일 거리농성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집을 떠나 거리로 나섰다. 누군가는 그것을 ‘독립 연습’이라 불렀다. 자신을 가족에 매인 존재로 두지 않는 연습이었다. 싸우는 동안 오롯하게 나를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제는 나로 한 번 살아봐야 되지 않겠어요?’ 톨게이트 투쟁의 시작과 끝은 사실 이것인지 모른다. (...) 자신으로, 나의 힘으로, 나의 옮음으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이 이 투쟁을 만들었다.> (책 『우리가 옳다: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중, 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2020)

 

어떤 이는 집에 안 들어올 거면 이혼하자는 남편에게 “지금은 바빠서 이혼할 시간도 없다”고 되받아쳤다며 깔깔 웃었다. 물론 그러다가도 주말에 집에 가면 ‘김치까지 썰어놓고’ 왔다. 정도는 다르지만, 투쟁을 ‘쉬고’ 내려간 집에는 밀린 가사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번에 바꾸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들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성주지사 간담회를 마친 후, 사진 촬영을 했다. 김미이, 문한수, 이진희 씨도 함께. (노동조합 제공사진)


김미이 씨는 말했다.

“영업소 생활을 하면서 저는 잘 보이려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사장이나 사무장이 예뻐해 주니까. 그래서 영업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애들 앞에서 내가 그렇게 사는 게 당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거든요. 비위 맞추고 사회생활하고 그런 거니까.”

 

그러다가 노조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애들이 되게 싫어했거든요. 연차 다 써서 집회 다니면 ‘엄마 거기서 돈 줘?’ 이런 말을 했는데. 나중에 투쟁 문화제에 큰딸이 와서 편지를 읽은 거예요. ‘엄마는 옳다. 그러니까 이 투쟁도 옳다.’ 우리 애들한테 내가 그런 모습이구나. 되게 자랑스러워진 거예요. 내가 우리 애들한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아, 딸들 앞에서 당당한 엄마구나.”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달라진다. 다르게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직장에서,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킨다. “옛날의 내가 아니야!”(책 『여기 우리 함께』 중 <정규직, 그거 포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희정, 갈마바람, 2020) 단지 ‘잘 싸우게 됐다’, ‘목소리가 커졌다’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변화다.

 

공익에 맞게, 공기업을 운영할 수는 없나?

 

이들은 달라졌다. 하지만 쉽사리 달라질 리 없는 일터에서 일한다. 그래서 그 힘들다는 ‘일하면서 투쟁하기’를 하고 있다.

 

“우리 딸이 예전에 ‘아빠, 돈이 많으면 잘 살 수 있지?’ 물은 적 있어요. 아니다. 못 산다. 양말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바지 만드는 사람도, 신발 만드는 사람도, 버스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하다못해 돈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다 연결돼 있으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거지.”(문한수)

 

연결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려 애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분명 있어요.”(이진희)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톨게이트 수납요금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해 책(우리가 옳다)으로 남긴 이용덕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이윤 논리로 작동하는 사회는 멈출 수 없는가? 노동자의 삶을 우선하는 사회 체제는 불가능한가? 일자리 삭감을 금지하고 모든 노동자가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서로 나누는 것,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 노동자가 공기업을 통제하여 공익에 맞게 공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들은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됐다. 그 성과로, 이들을 ‘굴러온 돌’ 취급하는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 역시나 일하는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곳이다. 존중을 시험과 노력으로 찾는 세상이다.

 

그러하기에 덧붙여 묻는다.

“사람이 그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싸우고 견뎌내고 살아가는 일을 기록한다.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등을 썼고 [회사가 사라졌다』(공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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