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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 ‘파리의 여자들’ 운영자 하이디 에반스 인터뷰(상)

 

[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 거주하며 기록 활동을 하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락다운이 단계별로 해제되어 가던 5월 말, 집에서 기차로 3시간 여 거리에 있는 파리에서 3주를 보내고 왔다. 나는 사실 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쓰레기와 행상인들로 붐비는 몽마르뜨 언덕이나, 집세가 너무 비싸서 시 외곽의 좁은 집에 세들어 사는 지인들,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인종차별이 내게는 낭만으로 덧칠된 파리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동안 파리에 서너 번 가서 며칠씩 머무르면서도 에펠탑은 COP-21 기후위기 집회가 열렸을 때만 가까이 가보고,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에도 일부러 안 갔다. 루브르 소장품 3만5천 점 중에서 단 3백여 점만이 여성 작가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오르세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호감이 아닐 수 없다.

 

▲ 19세기 말~20세기 중반, 파리에서 활약했던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티투어 <파리의 여자들> 설립자 하이디 에반스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이 제공 사진)


하지만 이번 파리 출장에서는 내가 호평하고 애정할 수 있는 것들을 만나고 싶어서, 키워드를 좁혀 검색하며 일정을 짰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추상주의 속 여성들>(Women in Abstraction) 전시 보러 가기. 1930년대 한 이주 여성이 다른 여성들을 위해 연 최초의 ‘북카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책보기. 예술비평가 수잔 손택이 묻혀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글쓰기. 패션, 국제교류, 젠더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성들을 만나, 내가 참여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팟캐스트 ‘탈조선, 다음이야기’ 출연자로 섭외하기.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일정은 페미니스트 시티투어를 운영하는 하이디 에반스(Heidi Evans)와의 인터뷰였다.

 

하이디 에반스는 2014년, ‘프랑스와 불어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라는 다소 평범한 동기 때문에 파리로 이주한, 런던 출신의 여성이다. ‘샴페인 소셜리스트’라고 불리는, 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 북부 머스웰 힐(Muswell Hill)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는 문학과 언어를 전공했다. 이후 하이디는 파리에서 영어 관광 가이드로 일하면서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 틈에서 식견을 넓혔다. 경쟁이 치열한 관광업계에서 가이드로 살아남기 위한 기술도 체득했다.

 

그러다가 2016년, ‘파리의 여자들’이라는 자신만의 시티투어 브랜드를 만들어 독립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활약했던, 그러나 주류 관광코스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투어 프로그램들을 직접 개발한 것이다.

 

하이디의 시티투어는 콘텐츠의 차별성만 가지고 그야말로 ‘길바닥’에서 시작한 프리랜서 1인 사업이었는데, 나름 승승장구했다. 이듬해 글로벌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되어 페미니즘 콘텐츠 수요가 커졌고,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Experience’ 섹션을 론칭했을 때 초창기 파트너로 발탁되기도 했다. 독특한 콘셉트 덕분에 유명 언론에도 소개되고, 외교관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 파리의 영국대사관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 하이디 에반스가 2018년, 파리 소재 영국대사관에 연사로 초청되어 발표하는 모습. (인터뷰이 제공 사진)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을 맞았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파리는 락다운되었고 공항과 기차역, 거리는 갑자기 한산해졌다. 사실 인터뷰를 아예 못 할 뻔했다. 약속 시간에 임박해서 연락해 온 하이디가 인터뷰를 못 하겠다고 하소연했기 때문. 코로나로 ‘폐업 위기’를 겪으면서 이 시점에 시티투어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이 됐던 것이다.

 

나는 이런 말로 설득했다. “경제적 성과와 상관없이, 관광업 정글인 파리에서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투어를 만들어 여기까지 끌고 온 당신의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주류가 배제한 여성 서사를 다루는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여성을 위한’ <파리의 여자들> 브랜드가 팬데믹 상황에서 직장에서 더 쉽게 해고당하고, 홈오피스를 하며 돌봄 노동까지 떠맡은 다른 여성들의 삶과 연결된 것 아니겠냐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지금 만나야 할 이유라고 말이다. 7년차 파리지앵 페미니스트는 내 말에 설득되어, 며칠 뒤 툭툭 털고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하리타: 코로나 팬데믹과 락다운 조치들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더구나 여성 서사 콘텐츠로써 주류 시티투어에 비해 잠재 고객이 훨씬 적어서 더 타격이 컸을 것 같아요.

 

하이디: “전반적으로 관광 산업에 타격이 너무 컸어요. 일감 자체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들은 ‘에펠탑 투어’, ‘보트 크루즈’ 같은 것들에 비하면 비주류이죠. 평소에 고객들이 웹사이트나 플랫폼으로 유입해온 경로를 봐도 ‘여성’, ‘페미니스트’ 같은 키워드를 직접 검색한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와 올해 내내 생계유지에 필요한 돈도 빠듯하고 저축도 못했어요. 요즘에 락다운이 풀리면서 투어 시장이 다시 열리고는 있는데 그 영향이 저한테까지 언제 올지는 모르겠네요.

 

그나마 너무 늦지 않게 온라인 투어 코스를 하나 개발해서 운영했어요. ‘레프트 뱅크 버추얼 문학 투어’(Literary Left Bank Virtual Tour)라고, 생 제르망 데프레(Saint-Germain-des-Prés) 구역에서 19세기 말~20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여성 문인들을 소개하는 투어예요. 줌 미팅을 통해 관광객들을 만났고, 대학교 불문학 수업 같은 곳들과도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하리타: <파리의 여자들>은 코로나 이후에 생긴 버추얼 투어 외에 총 3개의 도보 투어를 운영하고 있네요. ‘에센셜 워크’(The Essential Walk)는 라탱 구역에 있는 팡테옹 국립묘지에서 시작해서 대주교의 다리까지 걸으면서 중간에 룩셈부르크 정원 같은 명소를 들르는 제일 긴 코스이고요. ‘슈어 앤 스파이스’(Sugar & Spice)는 생제르망 데프레 구역에 집중해서 당대 여성 예술가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시간, ‘드라마 퀸즈’(Drama Queens)는 벨 에포크 시대에 활동했던, 에디트 피아프 같은 여성 무대 예술가들을 조명하고요.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어떤 콘셉트를 의도하셨나요?

 

하이디: “<파리의 여자들>은 파리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티투어예요. 파리 사회에 존재했고 심지어 당대 영향력 있었던 이들인데, 관광업계에선 완전히 외면하고 있어요. 시티투어는 보통 동상, 기념비, 생가 같은 곳들을 소개하는데 나폴레옹, 루이 14세, 빅토르 위고로 같은 남성 영웅들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죠.

 

알리스 기-블라쉐(Alice Guy-Blaché)라는 인물을 아시나요? 19세기 후반 최초로 서사 영화를 만든 감독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비교적 최근인 영화산업 발달사에서도 남성 인물들만 살아남았어요. 저는 파리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들려주고, 이들을 같이 기억하고 여기서 영감을 얻자는 취지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어떤 구체적인 정치 캠페인은 아니고, 스토리텔링이 핵심이에요.

 

파리에 여러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읽고 투어 스크립트를 직접 썼어요. 온라인에서 기사도 많이 찾아보고, <파리는 여자였다>(Paris was a woman, 그레타 쉴러 감독, 미국, 1996년) 다큐멘터리도 참고했어요. 제 스스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인물들에 대해 충분히 정보를 모은 다음에, 이들이 삶에서 어떤 고난을 겪었고, 남기고 간 유산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리서치 질문이었어요.”

 

▲ 하이디가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참고자료가 된 다큐멘터리 <파리는 여자였다>(Paris was a woman, 그레타 쉴러, 미국, 1996) 포스터. 다큐는 파리 레프트 뱅크에 모여 살았던 작가, 사진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도시가 오랜 세월 남성들에게 ‘뮤즈’ ‘정부’로서 영감과 유혹을 주는 여성으로 대상화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흔한 대상화는 비교적 최근 영화인 우디 알렌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로까지 이어진다. 파리가 그동안 숱하게 여성에 비유되었어도 정작 거기에 실제 살았던 창조적인 여성들은 내내 잊혀지고 가려졌다. (사진 출처: SND Films)


하리타: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다분히 그 사상에서 나온, 부드러운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16년에 시작하셨는데, 그 이후로 미투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났죠. 프랑스에서도 페미니즘 붐이 일었고요.

 

하이디: “맞아요. 사업을 시작할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쓰는데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미투 운동 이후로는 완전히 달라졌죠. 뭐랄까, 여성들이 다들 과감해지고 연대감을 많이 느꼈어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칭하면서 자부심도 갖고요. 초창기에 저는 부드럽게 문제에 접근하고 싶어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넣지 않은 게 맞아요. 미투 운동 이후에 시티투어 브랜드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거기는 ‘파리의 페미니스트’라고 이름을 지었더라고요.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 거죠. 근래 제 고민은 브랜드 이름이 ‘여성’이다보니까, 퀴어와 트랜스젠더 인물들을 스토리텔링에 포함하는데 좀 제한이 있다는 점이예요. 대중들이 아무래도 이름에서 갖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요.”

 

하리타: 페미니스트로서 개인의 삶과 프로젝트가 거대한 사회 현상인 ‘페미니즘 제4의 물결’을 탔다는 게 절묘하고 짜릿한 일인 것 같아요. 덕분에 사업이 호황이었던 게 다행이기도 하고요. 이런 투어를 아무도 안하고 있을 때 과감히 시작했다는 게 용기 있고 멋져요.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를 기억하나요?

 

하이디: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 가이드 일을 하고 있을 때 이모가 놀러 오신 적이 있어요. 평소 하던 대로 구경시켜 드렸는데, 이모가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네가 해준 투어에 여자들이 하나도 등장을 안 하는구나.’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까지 전혀 의식을 못 했거든요. 나는 10대 후반부터 늘 페미니스트로 살았는데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한번 각성하고 나니까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그후론 여성들의 이름을 어떻게든 언급하려고 애쓰기 시작했고, 당시 맡고 있던 루브르 박물관 투어에서도 여성 작가들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오르세 미술관은 아시다시피 인상주의 화가들 위주인데 대다수가 남성 작가들이죠. 여성들도 있긴 한데, 전혀 들어본 적 없어서 가이드 일을 하면서야 익혔어요.”

 

하리타: 우리가 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역사를 배우면서 철저히 지배 권력 중심, 제국주의 중심, 남성 중심 계보에 익숙해지잖아요. 사실 과거는 도처에 기록되어 있고 물리적 공간에 남은 흔적들도 다양한데, 우리 눈은 동상이나 거대한 기념비 같은 것들만 ‘정식 역사’로 인식하게끔 길들여져 있어요. 그래서 하이디 님이 웹사이트에 써놓은 이 말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여성들은 역사에 등장하더라도 부정적으로 나오고, 아내나 정부, 뮤즈로 대상화되거나 사소하게만(trivialized) 그려집니다. (...) 파리에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은요? 그들에게 파리는 어떤 곳이었나요? 그들의 목소리도 이제 들어볼 때가 되지 않았나요?”

 

하이디: “군주제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런던 출신으로서 파리 주류 역사관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걸 의식하게 돼요. 영국의 경우에 군주제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인물들은 다 여성이에요. 예를 들어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2세. 런던의 지하철 역들 중 사람 이름을 딴 것이 단 하나인데, 바로 ‘빅토리아역’이죠. 지금도 런던의 상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그 일가나 다름없고, 실제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런던으로 많이 빨아들이는 요소예요. 반면에 프랑스 왕정에는 남성들만 두드러지고, 그나마 유명한 인물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죠.”

 

▲ 파리 시청사 외벽에 시몬 베유(Simone Veil, 1927~2017)를 기리는 표지판들이 붙어 있다. 시몬 베유는 민주연합 정당 소속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임신중절 합법화, 피임 문화 정책에 기여했다. 하이디의 페미니스트 투어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 이래, 프랑스 사회 전반에서 여성 리더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다.  (촬영: 하리타)


하리타: 투어 가이드라는 직업은 파리로 이주하면서 택한 건가요? <파리의 여자들>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에 2~3년 다른 곳에서 일하셨는데 그때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하이디: “투어 가이드로 처음 일했던 곳은 유럽 주요 도시들과 이스라엘에 지점을 두고 있는 샌더만스(Sandemans)였어요. ‘무료 투어’ 콘셉트로 유명한 곳인데 실상은 누구에게도 무료가 아닌 좀 이상한 비즈니스 모델이었죠. 우선 ‘파트너 가이드’는 투어에 참가한 관광객 수에 따라 회사에 돈을 내야 해요. 샌더만스 브랜드를 사용한 대가로 일종의 수수료를 내는 거죠. 가이드는 이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 투어가 끝난 뒤 손님들에게 팁을 요청해요. 무료 투어라고 광고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3시간 투어 끝에는 팁을 걷는 방식, 이런 시스템이 가이드와 관광객을 착취한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있는데 회사는 지금도 건재해요.

 

제 경험으로도 좋은 회사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투어 가이드를 어떻게 하는지는 혹독하게 배웠어요. 여름 성수기 뙤약볕에 많게는 70명의 손님이 오는데, 나중에 다들 팁을 내게 하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재밌게 해야 하거든요. 샌더만스를 나온 후엔, 마찬가지로 거기 출신으로 작게 회사를 차린 사람들과 박물관 투어를 주로 했어요. 거기서 한번 더 다른 곳으로 옮긴 끝에 (독립해서) <파리의 여자들>을 시작한 거예요.”

 

하리타: 가이드 일 자체는 즐겨 하신 것 같네요. 맞는 플랫폼을 찾기까지 여러 번 시도했고요. 지금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 서사 콘텐츠를 제공하는 셈인데, 시장은 작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로서 신념을 행동으로 적극 발휘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투어가 있었나요?

 

하이디: “너무 뻔한 말 같지만 할 때마다 좋았어요. 투어 참가자 분들이 굉장히 기뻐하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손님들이 그렇게 희망, 흥분, 자랑스러움을 안고 돌아가는 걸 보면서 저도 그런 기분에 젖어요. 사실 다들 그렇잖아요. 좋은 페미니즘 책이나 팟캐스트를 새로 발견하면 굉장히 즐겁고, 그런 걸 만드는 다른 페미니스트 여성한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거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했나 봐요.” <하이디 에반스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하리타(정세연). haritamoonrider@gmail.com 독일과 한국, 그 밖에 매일 여러 경계들을 넘나들며 사는 경계인 페미니스트 작가입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 <탈조선, 다음이야기>를 진행 중입니다! linktr.ee/Talda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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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떠난 그녀들, 지금 행복할까? 하리타/젤리박/릴리/슬원이 만드는 인터뷰 팟캐스트 talda.podca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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