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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주거 실태와 주거 불안에 관한 연구 결과 발표

 

최근 2030세대를 강타하고 있는 주거 불안은 ‘영끌(영혼까지 끌어올린다) 대출’뿐만 아니라 주식과 코인투자의 광풍이라는 기이한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오력’ 끝에 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업한들 10년, 20년을 일해도 수도권 내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청년 세대들이 비상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건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비상구를 찾기 위한 길조차 더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설사 그 비상구를 통과하여 집을 장만한다 하더라도 주거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가, 그동안 비가시화되었던 성소수자의 주거권 문제를 다루는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은 뜻깊다.

 

▲ 지난 6월 29일,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 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가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주최로 온라인 zoom을 통해 공개됐다. (출처: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는 2020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만 19세 이상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주거실태 및 주거 불안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다. 총 949명이 온라인 응답으로 참여했다. 주거현황에 대한 질문부터, 주거의 어떤 부분에서 불안과 부담을 느끼는지, 어떤 기준으로 주거를 선택하는지, 어떤 주거정책을 원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설문조사 이후엔 17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도 진행했다.

 

6월 29일, 이에 관한 연구결과 발표회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가 다음세대재단과 오픈소사이어티재단 후원으로 온라인에서 열렸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자캐오 신부가 진행을 맡고, 민달팽이 유니온 김경서 활동가와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민수 연구자가 발제를 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혜실 공동대표,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아델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성소수자 청년들, 반/지하와 옥탑방 거주비율 높아

 

1차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2030 세대 비율이 82.4%로 가장 높았고 거주 지역은 서울이 58.7%, 경기도가 15.9%, 인천이 4.4%로 수도권이 79%였다. 성별정체성은 시스젠더 남성 53.4%, 시스젠더 여성 24.9%, 트랜스젠더 여성 6.5%, 트랜스젠더 남성 2.1%, 논바이너리/젠더퀴어가 13.1%였다. 성적지향은 남성 동성애자 52.4%, 여성 동성애자 16.5%, 양성애자 12.9%, 범성애자 7.3%, 무성애자 4.1%, 보기에 해당하지 않음 6%, 이성애자 0.8%로 분류되었다.

 

▲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 20~30대는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전국 20~30대의 아파트 거주 비율보다 낮았고 자가 비율도 낮았다. *자료 출처: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그래프 제작: 일다


설문에 많이 참여한 청년층의 주거실태를 전국 20~30대(2019 인구총조사 기준)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일단 주거 유형의 경우, 성소수자 20~30대는 단독·다가구주택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아파트 거주 비율은 13.4%였다. 이는 전국의 2030세대 아파트 거주 비율 47%와 비교했을 때, 지역 편차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큰 격차를 보인다.

 

민달팽이 유니온 김경서 활동가는 이에 대해, “성소수자들이 제도적으로 파트너와 혼인 관계를 맺지 못해 신혼부부에게 지원되는 다양한 주거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이와 연관되어 1인 가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 등이 이유로 추론된다”고 밝혔다.

 

주거 점유 형태에서도 전국 2030세대에 비해 자가 비율이 낮고 월전세 비율이 높았다. “이는 성소수자들의 주거 불안정이 다른 집단에 비해 높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거 환경에선 (반)지하 및 옥탑방 거주 비율이 수도권 청년세대에 비해서도 약 2.2배 높았고, 전국 일반가구에 비하면 약 6배 정도 높았다.

 

비성소수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거 유형과 환경이 좋지 않다는 건, 성소수자들의 월수입, 특히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젠더퀴어의 수입이 낮은 점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를 성별정체성으로 분류했을 때 월급여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타났다.  *자료 출처: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 보고서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2021, *그래프 제작: 일다


‘나의 공간’에서조차 주거불안을 겪는다

 

그런데, 이렇게 주거 환경이 좋지 못하고 자가 비율이 낮은 것만이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인은 아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집은 ‘편안’, ‘안정’, ‘안전’의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지만, 많은 성소수자들은 그 공간에서조차 때때로 ‘소외’를 경험한다. 김민수 연구자는 성소수자들이 “일상의 사회 관계에서도 주거불안을 감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진짜 그게 너무 스트레스에요. (부모님) 초대는 해야 돼서. 오면 어쨌든 애인이랑 찍은 사진이랑, 이런 게 다 있잖아요. 올 때마다 액자를 떼는 것도 너무 번거롭고. 근데 그렇게 숨기는 게 너무, 너무 기분이 나쁜 거예요. (중략) 내가 무슨 잘못도 아닌데. 나한테는 소중한 거니까 그렇게 붙여놓은 건데, 그걸 내 손으로 다 떼야 되고. 또 그게 괴로운 거예요.> -심층면접 참여자 H씨, 시스젠더 여성, 범성애자, 20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부모, 지인, 외부인이 집을 방문할 때 정체성이 드러나는 물건들을 숨기고, 심지어 같이 사는 파트너(애인)를 밖으로 내보내는 등 “퀴어의 장소를 이성애 규범에 맞춰 재장소화”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는 것. 이런 과정은 “자신의 공간을 낯설게 만들며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괴로움 등”의 감정도 마주하게 된다. 한 심층면접 참여자는 “우리 사는 모습을 숨기고, 가리는 게 너무 속상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웃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설문에 참여한 성소수자의 67.1%가 “이웃과 교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의도치 않은 아웃팅 때문에(21.1%)”였다. (이웃의 간섭이 불편해서 29.2%, 집에서 시간을 별로 보내지 않아서 22.2%, 자주 이사를 해야 해서 13.2% 등)

 

<그냥 언니라고 소개를 하고, 그럼 “그 언니는 뭐 하는 언니야?” 이렇게 물어보시면, 물론 대답을 해드릴 수 있기는 한데, 저한테는 그냥 언니가 아니잖아요. 기분이 되게 묘해지는 거죠. (중략) 누군가한테 악의가 없더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라는 게 너무 그랬어요, 지금도 기분이 좋지는 않죠.> -심층면접 참여자 B씨, 시스젠더 여성, 양성애자, 20대

 

김민수 연구자는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이웃의 시선을 의식해 파트너와의 친밀한 행동을 단속하거나 둘의 관계를 부정하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불안함’, ‘피곤함’, ‘무력감’을 느낀다. 이는 소외의 경험과 주거 불안을 야기한다”고 했다.

 

실제로 아웃팅을 겪게 되었을 때 “전월세 계약 거부가 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스트레스”다. 이런 스트레스는 주거 계약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특히 트렌스젠더, 논바이너리/젠더퀴어의 경우, “법적 성별 불일치로 아웃팅을 겪거나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를 실제 겪기도 한다.

 

집이 자기 소유라 하더라도 이런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 이웃에 아웃팅이 될까봐, 신상이 공개될까봐, 소문이 날까봐 자신들의 행동을 단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 6월 29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 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 (출처: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신혼부부, 이성애가족 기준 주거정책에서 배제돼 

 

국가의 다양한 주거 지원정책과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것 또한 성소수자들의 주거 이동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주택 청약저축을) 10년 넘게 넣었어요. 근데 그 돈으로는 청약을 하면 문제가, 제가 애인과 같이 공동명의가 안된대요. 공동명의를 하게 되면 전매제한이 걸린대요. 전매제한이 없을 때는, 예를 들어 4억짜리 집이었으면 그 친구와 공동명의를 받고 같이 대출을 했으면 부담이 좀 덜했을 텐데, 전매제한 때문에 공동명의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주택 청약은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중략) 동성혼이 인정됐으면 전매제한도 안 걸리고, 둘의 소득에 따라 대출받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전매제한에 걸리기 때문에 둘의 소득을 합산해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거예요. 망했어요.> -심층면접 참여자 ㅂ씨, 시스젠더 여성, 동성애자, 30대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주거지원 정책과 제도가 신혼부부, 이성애 가족을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어 불평등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재생산, 그러니까 출산율”에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에 대해 비판했다. 동성 커플뿐만 아니라 1인 가구를 위한 제도들도 미비하다.

 

기숙사 등의 특정 주거공간이 성별 이분법에 따라 구성되어 있어,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젠더퀴어도 있다. 이런 경우, 불가피하게 환경이 좋은 편인 기숙사 대신 열악한 환경인 자취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생활동반자법, 차별금지법이 필요해!

 

설문조사에 응답한 성소수자의 77.3%는 정부나 지자체의 주거지원 정책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이용하고 싶지만 자격이 안돼서(26.2%), 자격이 안될 것 같아 이용하지 않음(15.5%)”이 거론되었다. 참여자들의 80%는 성소수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주거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정책으론 “생활동반자법이나 동성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혈연 및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한 공공임대주책 정책의 변화”도 언급되었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다.

 

<일단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돼야 될 것 같고, 그게 시작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빨리 제정이 돼서 좀 차별받지 않아야 된다.’라는 것들 사회적으로 인식이 좀 구성이 된다고 하면, 이제 가족구성권, 그러니까 다양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시 수면에 오를 것 같고. 그리고 나서 이제 주거권과 관련된 이야기라든지 행복권이나 결혼의 자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 얘기하잖아요, 사회적 합의. 대통령도 그렇고 사회적 합의가 먼저 돼야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제도가 저는 먼저돼야 소수자들에 관련된 건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제도가 먼저 바뀌고 나서 그다음에 우리가 그런 주거권, 우리에 대한 가장 기본권들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심층면접 참여자 E씨, 시스젠더 여성, 동성애자, 30대

 

여러 사정과 환경으로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나 긴급하게 독립하게 되는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도 확충되어야 한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젠더퀴어들도 머물 수 있는 쉼터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꼭 성소수자 주거 지원 정책이 아니더라도, “주거지원 정책이 조금 더 쉽게 쓰여야 하며 접근성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거 정책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정책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 연구는 성소수자 주거불안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주거 안정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자리였다. (박주연 기자)

 

※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보고서 다운로드 https://dawoom-t4c.org/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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