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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컨트리 그룹 딕시 칙스가 ‘더 칙스’로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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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컨트리 음악은 보수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샘 헌트(Sam Hunt), 케인 브라운(Kane Brown), 토마스 렛(Thomas Rhett) 같은 컨트리 음악가들이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종합 차트 내 컨트리 음악의 비중이 늘어났다.

 

컨트리 음악이 강세인 지역은 백인 음악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텍사스나 내쉬빌 같은 미국 남부로, 인종차별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지역이다. 음악 장르와 지역, 그리고 정치적 색채가 강하게 연관되어 있는 미국 사회에서는 컨트리가 정치적 보수 성향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참고: 타임지 기사 “컨트리 음악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항상 그래왔다”(Jon Meacham & Tim Mcgraw, 2019년 8월 15일)

*참고: 워싱턴 포스트 기사 “컨트리 음악가는 정치와 트럼프에 관해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물어봤다”(Emily Yahr, 2017년 3월 21일)

 

물론, 모든 컨트리 음악가가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것은 아니다. 당장 컨트리 음악의 대부 조니 캐쉬(Johnny Cash)만 해도 활동 내내 다양한 사회 문제를 가사로 풀어냈고,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조니 캐쉬의 음악 중에는 수감자의 인권을 노래하는 “Folsom Prison Blues”을 비롯해 아메리카 원주민들, 노동자 계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난 햇빛을 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폴섬 감옥에 갇혀 있다.

(중략) 기적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고개를 떨어트리고 운다.

(중략) 내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저 사람들은 계속 움직인다, 그게 날 고문한다.”

- 조니 캐쉬, Folsom Prison Blues 중

 

▲ 컨트리 음악 밴드 The Chicks 프로필 사진. (출처: The Chicks 페이스북 @thechicks)


미국의 전쟁범죄 비판한 컨트리 여성 밴드, ‘딕시 칙스되다’

 

여기에 1990년대, 2000년대 팝 음악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면 한 번은 들어봤을 딕시 칙스(Dixie Chicks)도 해당된다. 딕시 칙스는 3인조 컨트리 그룹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98년에 발표한 이들의 네 번째 앨범이자 첫 메인스트림 앨범인 Wide Open Spaces는 천만 장 넘게 팔렸다. 북미 컨트리 팬들은 이 여성 트리오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이듬해 발표한 앨범 Fly 역시 컨트리 앨범 차트 36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그런 만큼 딕시 칙스의 발언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는데, 보수적 정치 성향을 지닌 그들의 팬층에게는 여러모로 충격을 줬다. 2002년, 컨트리 음악가 토비 키스(Toby Keith)가 군인을 예찬하는 곡 “Courtesy of Red, White and Blue”를 발표하자 딕시 칙스는 이를 비판했다. 당시는 조지 W 부시 정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명분 삼아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던 시기였다. 딕시 칙스의 멤버 나탈리 메인스(Natalie Maines)는 전쟁을 찬양하는 듯한 곡의 메시지에 반대한다고, 2002년 8월 8일자 일간지 LA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자 토비 키스는 나탈리 메인스의 얼굴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콘서트에서 공개했고, 나탈리 메인스는 “FUTK”라고 써있는 셔츠를 입고 아카데미 오브 컨트리 뮤직 어워드(Academy of Country Music)에 등장했다. “Freedom, United, Together in Kindness”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지만, 누가 봐도 “Fuck you, Toby Keith”였다.(후에 그는 다큐멘터리 <셧 업 앤 싱>(Shut Up and Sing)에서 이를 시인했다.)

 

이처럼 반전(anti-war) 의사를 밝힌 딕시 칙스는 2003년 영국 런던 공연에서 조지 W 부쉬 대통령이 자신들과 같은 텍사스 동향 출신이라는 점이 부끄럽다고 말했는데, 그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며 애국보수 정서를 지닌 컨트리 팬들에게 크게 미움을 샀다. 남부 지역 라디오에서는 더 이상 딕시 칙스의 음악을 틀지 않았고, ‘딕시 칙스 물러가라’는 시위를 비롯해 보이콧도 활발히 일어났다. 오죽하면 ‘딕시 칙스되었다’는 표현이 생겨났을 정도. 컨트리 음악가가 보수층과 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하면 지워지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관련 빌보드지 기사: 컨트리 음악, 정치 & “딕시 칙스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있는 두려움, Elias Leight, 2017년 2월 15일)

 

▲ 보수적인 컨트리 팬층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딕시 칙스는 2006년 Taking the Long Way 앨범을 발표하며 그래미 어워드 5개 부분에서 수상하는 등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이 2006년 발표한 Taking the Long Way 앨범은 놀랍게도, 보란 듯이 성공한다. 평단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섯 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모두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여기에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이듬해까지 2백만 장을 판매하는 등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이 많았다. 어쩌면 팝의 색채를 좀 더 보완한 앨범의 음악적 성격과, 이제는 바뀐 컨트리 팬층의 성향이 만나 좀 더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것일지도 모른다.

 

14년만에 발표한 Gaslighter ‘가스라이팅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딕시 칙스는 한동안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간간히 투어를 하며 조금씩 인기의 최전선에서 물러나는 듯했다. 그러던 중 2020년, 그룹 이름을 더 칙스(이하 칙스, The Chicks)로 바꾸었다. 딕시(Dixie)라는 단어가 노예제와 연관된 메이슨-딕슨 선(Mason and Dixon Line, 미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상징적 분계선. 미국 식민지 시기에 펜실베니아와 메릴랜드 영주의 경계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인 측량사 C.메이슨과 J.딕슨이 1763∼1767년 설정한 경계선. 이후 독립혁명 때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자유주’와 이를 존속시킨 ‘노예주’의 경계선이 되었음)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이다. 극우의 상징이기도 한,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연합의 깃발 자체가 ‘딕시 플래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그룹 명에서 딕시라는 단어를 지우고, 칙스는 14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이 바로 칙스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여러 매체로부터 찬사를 얻으며 2007년 이후 14년만에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1위, 종합 200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는 등 열렬한 지지 속에 등장한 작품 Gaslighter(가스라이터)다.

 

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나탈리 메인스가 남편과 이혼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여덟 번째 앨범은 처음에는 음반사와 맺어 놓은 계약 때문에 단지 앨범 수를 채우려고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탈리 메인스가 이혼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고, 결국 다시 창작을 하게 된 것이다.

▲ 더 칙스(The Chick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2020년에 선보인 앨범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가스라이터>(Gaslighter)이다.

‘가스라이팅’(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상대방이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험한 나탈리 메인스가 전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를 담은 곡 “가스라이터(Gaslighter)”부터 여성들에게 힘을 싣는 “For Her”, 기후 문제부터 인종 문제와 총기 문제 등 근래 가장 큰 사건과 이슈들을 담으며 시위를 연상케 하는 “March March”까지 이들의 메시지는 더욱 뚜렷해졌다. 현재 칙스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평등법 통과(Music in Action for the Equality Act)에 힘을 싣고 있는 중이다.


“내 모든 돈을 줬지, 넌 기꺼이 네 갈 길을 가고

넌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난 정말 엉터리라고 생각해

(중략) 네가 나를 어떻게 부쉈는지 볼 수 있을 때까지 여기 서있어, 그래 난 망가졌어

넌 여전히 미안해 해, 하지만 사과는 아직 없지.”

-칙스, Gaslighter 중에서

 

* 더 칙스(The Chicks) “Gaslighter”(Official Video) https://bit.ly/2TdCh4Z

* 더 칙스(The Chicks) “Sleep at Night”(Official Video) https://bit.ly/3dk8bDP

 

이제 칙스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이는 컨트리 음악 시장 내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나탈리 메인스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미국 리뷰 매체 <피치포크>는 비록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 메시지 간의 연결이 헐겁다고 했지만, 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고, 동시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앨범을 두고, 혹은 칙스에게 ‘컨트리 음악은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식으로 딕시 칙스는 ‘딕시 칙스되어야’ 했었고, 원치 않았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하지만 비판적인 의식과 연대, 그리고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서 칙스는 딕시 칙스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역사는 1989년에 시작되었지만, ‘이제 시작이다’라는 다소 식상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을 발표했다. Gaslighter는 개인의 이혼과 과정, 이유를 늘어놓은 사적인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미국 컨트리 역사에 족적을 남긴 트리오가 ‘가스라이팅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담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다.

 

※참고자료

미국 문화 매체 버라이어티의 Gaslighter 앨범 리뷰 (Chris Willman, 2020년 7월 16일)

미국 공영 방송국 NPR의 기사 “화재 후의 더 칙스” (Ann Powers 2020년 7월 16일)

미국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의 Gaslighter 앨범 리뷰 (Claire Shaffer, 2020년 7월 17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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