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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바레인 출신의 영국 트럼페터, 야즈 아메드

 

영국에서 2020년 12월에 발표된 보고서 <첼트넘 재즈 페스티벌의 키체인지 운동: 여성 재즈 음악가를 위한 도전과 재즈 축제에서 동등한 젠더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은 사라 레인(Sarah Raine) 박사가 첼트넘 재즈 페스티벌 측과 협력하여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이다. 영국 재즈 음악 시장에서 여성 뮤지션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최신 자료다.

 



▲ 사라 레인(Sarah Raine) 박사가 영국 첼트넘 재즈 페스티벌과 협력하여 수행한 연구 보고서 <첼트넘 재즈 페스티벌의 키체인지 운동: 여성 재즈 음악가를 위한 도전과 재즈 축제에서 동등한 젠더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 표지. (2020년 12월)


‘키체인지 운동’(Keychange Movement)은 음악 산업 내 성평등을 위한 유럽 내 움직임으로, 2022년까지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의 성비를 5:5로 맞추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키체인지 운동은 영국 음악가 지원단체 PRS 재단이 주도하고, 유럽연합의 크리에이티브 유럽(Creative Europe) 프로그램이 후원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실제로 라인업 성비를 5:5에 가깝게 맞춰가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사라 레인 박사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음악 시장의 성별 격차와 성차별 실태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영국 재즈 음악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열 명의 여성 음악가를 대상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는데, 무려 아홉 명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성차별을 겪었다’고 말했으며 세 명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재즈 음악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장비를 설치할 줄 아냐’는 질문을 받은 이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임신을 하자 자신의 기획사가 당연하다는 듯 음악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그만둘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앨범 커버를 만들 때 ‘좀 더 성적으로 어필하라’는 주문을 받은 여성도 있었다.

 

영국 재즈의 중심에 서 있는 트럼펫 연주자, 야즈 아메드

 

보고서에는 실명을 공개하며 인터뷰를 한 여성 뮤지션도 있는데, 바로 재즈 트럼페터 야즈 아메드(Yazz Ahmed)다. 야즈 아메드는 런던 재즈 오케스트라, 라디오헤드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그룹들과 협업을 하는 트럼펫 연주자이다. 야즈 아메드가 발표한 앨범은 2020 재즈 FM 어워드 올해의 앨범, 재즈 매체 <다운비트> 선정 올해의 재즈 트럼펫 아티스트 후보 등 여러 부문에서 수상하거나 후보로 올랐다.

 

▲ Yazz Ahmed, Brussels Jazz Festival, Olivier Lestoquoit, 2019 영국 재즈의 중심에 서 있는 트럼펫 연주자 야즈 아메드. 바레인 사람 아버지와 영국 사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동 배경을 가진 뮤지션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음악에 담는다.

 

그런데, 그는 “남자처럼 연주한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심지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지금도 “노래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여성 재즈 음악가는 당연히 보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야즈 아메드는 자신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를 담은 이러한 말들에 질렸다며, 2011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쫓아다니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야즈 아메드는 바레인 사람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바레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영국에서도 거주한 경험이 있다. 재즈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였던 외할아버지 덕에 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자신의 한 쪽 뿌리인 바레인 음악, 중동 음악을 재즈에 담아냈다. 이러한 색깔의 작곡 방식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같았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며 영국 재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영국 재즈는 현재 세계 재즈 음악 시장 전체에서도 가장 주목 받고 있으며, 변화의 중심에 있다. 젊고 뛰어난 연주자들이 자메이카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태생적 뿌리를 바탕으로, 혹은 새로운 메시지와 작법으로 다양한 재즈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이 재즈 연주자로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

 

야즈 아메드에게는 바레인이라는 뿌리와 더불어 크게 자리하는 정체성이 있는데, 바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다. 그는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계속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었고, 작품에도 그러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나이든 남성 음악가들에게 수업을 받는 것이 겁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후배 여성 연주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연주하고 미친 듯이 연습하라’고 조언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을 쌓게 되었다.

 

그는 앞서 소개한 ‘키체인지 운동’을 펼치는 PRS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당신의 소리가 훌륭하다면 아무도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 슬프게도, 많은 남성 연주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지만, 불행히도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 2021년 9월 뉴욕에서 열린 Festival Of New Trumpet Music에 참여한 야즈 아메드의 모습.


야즈 아메드가 여성 연주자들에게 ‘미친 듯이 연습하라’고 얘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은 재즈 연주자들 간의 잼 세션(여러 연주자가 함께 즉흥연주로 무대를 채우는 방식)에서, 경쟁적으로 들이대는 남성 연주자들 사이에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 연주자는 ‘재즈 연주는 당연히 남성이 한다’는 편견과도 싸워야 하며, 잼 세션 내에서도 소수의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래저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여성 연주자가 어떤 연주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두려움 없이, 뛰어난 연주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야즈 아메드의 이야기다. 또한 남성 연주자들의 경쟁적이고 거친 연주 방식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은 필수라는 것.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앨범을 냈다고 밝혔는데, 자신이 지닌 내면의 목소리가 그렇게 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중심의 영역에서 나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어려웠고, 그만큼 스스로 여성 재즈 음악가로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즈 역사를 통틀어 뛰어난 여성 연주자와 작곡가가 있었지만 극소수이고, 젠더 불균형은 심각하다. 어릴 적에는 영감을 주는 여성 롤-모델을 찾기 위해 열심히 검색했지만 찾지 못했고, 후에야 키쿠 콜린스(Kiku Collins)와 잉그리드 젠슨(Ingrid Jensen), 바바라 톰슨(Barbara Thompson)과 같은 연주자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재즈 매거진 <다운비트>와의 인터뷰에서 야즈 아메드는 “소수자를 볼 수 없다면 변화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어릴 적 내가 재즈를 배울 때에는 여성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만약 여성 연주자를 찾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여성은 재즈 트럼페터가 될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잉그리드 젠슨을 찾았고, 그는 나에게 롤 모델이 되어주었다. 단지 한 사람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것은 나에게 자신감을 줬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며, 결국 프로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우리가 다른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놓치게 되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난 나아지는 걸 보는 중이다.”

 



▲ 야즈 아메드 세번째 앨범 Polyhymnia jazz(2019) 쟈켓. 평등한 시대를 개척한 여성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에게 존경을 담은 음반 만들어

 

야즈 아메드는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드러나는 것보다 협업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에 담긴 의미 역시 성차별적인 재즈 음악계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

 

“나이 어린 여성들은 협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음악적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의 형태로 일할 수도 있다. 문화적으로, 소녀들은 자신이 세간의 관심을 받는 중심이 되는 것에 기뻐하는 소년들과 달리, 연주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수라고 평가 받는 것에 대해 더 큰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나는 과거에 이런 종류의 압박을 경험했고, 그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내가 잼 세션을 이끌었을 때, 그 세션의 학생들 안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여성들은 조롱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경쟁적인 환경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연주가 줄어들고 뒷자리에 앉게 된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어린 여성 연주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또 연주를 지지해주는 환경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즈 아메드, <바이닐 팩토리>와의 인터뷰 중

 

이처럼 성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야즈 아메드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결과가 바로 앨범 Polyhymnia(2019)다. 이 앨범은 여성 연주자도 훌륭한 즉흥 연주를 해낸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의 문화적 뿌리인 중동 배경의 음악도 담겨 있으며, 앞서 평등한 사회를 개척했던 여성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부터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 불을 지핀 로사 팍스(Rosa Parks)와 루비 브리지스(Ruby Bridges),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영화감독 하이파 알만수르(Haifaa al-Mansour),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인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까지.

 

또한 이 앨범에는 총 스물 여섯 명의 세션이 함께 했는데, 대부분이 여성 연주자다. 여기에는 누비아 가르시아(Nubya Garcia)처럼 독자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Polyhymnia 앨범은 다양한 의미와 메시지, 제작 과정, 작품성,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 야즈 아메드 “Lahan al-Mansour” 싱글 커버.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영화감독인 하이파 알만수르(Haifaa al-Mansour)에 대한 존경을 담은 곡이다.


영국 재즈 음악 시장은 독특하다. 기존에 양분화되었던 미국의 재즈와 유럽의 재즈 사이에 있으면서, 전자음악과 아프리카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변모하고, 디아스포라(이민자)의 관점으로 과거 아프리카의 유산을 현재의 영국에서 풀어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 야즈 아메드는 중동 이민자의 정체성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성공적으로 드러내며 활동하는 중이다. 그는 변화의 돌풍 속에 있다. 야즈 아메드의 음악과 메시지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있으니, 아마 앞으로 더 큰 변화의 움직임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참고자료]

-사라 레인, <첼트넘 재즈 페스티벌의 키체인지 운동: 여성 재즈 음악가를 위한 도전과 재즈 축제에서 동등한 젠더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 2020년 12월

-<가디언> “여성은 드러나는 것보다 협업에 더 관심이 있다: 재즈 트럼페터 야즈 아메드” 2018년 7월 27일

-<바이닐 팩토리> “야즈 아메드가 직면한 성차별과 모던 재즈”, 2017년 6월 8일

-PRS 재단, 야즈 아메드 인터뷰 2020년 12월 3일

-영국음악가조합, “야즈 아메드: 음 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2021년 7월 9일

-재즈 매거진 <다운비트> “야즈 아메드, Polyhymnia로 세대 간 여성의 힘을 전하다” 2019년 11월 12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2019)이 있다. ildaro.com

 

*일다의 책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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