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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림 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

 

2019년 한국 음악 시장 전체에 의미 있는 작품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큰 이벤트가 되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노래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올해의 노래 부문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바로 림 킴의 Generasian이다. 4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이 앨범은 이렇게 그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전했다.

 

▲ 림 킴의 Generasian 앨범(2019) 커버

 

많은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림 킴은 과거 김예림이라는 이름으로 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름이 알려졌고, 미스틱 스토리라는 레이블에 합류하여 대중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All Right”이라는 곡이 사랑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며, 가요 프로그램을 비롯해 각종 방송에 출연하였다.

 

그 외에도 OST에 참여하는 등 대중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이름을 감췄다. 이후 앨범 제작을 위한 펀딩을 받기 위해 텀블벅에 공개한 글에 따르면, 림 킴은 그간의 활동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바탕이 되어 나올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기획사 시스템 안에서는, 그리고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을 하면서는 ‘정체성’과 같은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회사의 계획이 좀 더 앞서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니 음악적으로나 활동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회사의 입장에 맞춰 가야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지금도 일부 회사는 그렇지만, 과거 기획사들은 창작자의 파트너라는 관계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림 킴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부분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음악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림 킴은 해외에서 살며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동양 여성’이라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는 해외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 정체성에 관해 자각하고 돌아보며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동양의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고,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만 담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요소까지 그에 부합하게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 림 킴이라는 새로운 활동명으로 발표한 첫 곡 “SAL-KI”(2019) 커버


우선 앨범 발매 이전에 선보인 첫 곡 “SAL-KI”는 완전한 힙합 곡인데, 림 킴이 그간 하지 않았던 음악적 방식과 목소리 톤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난 이 게임을 바꿔야 해, 남성적 시선에서 자신을 정의하지 마.” (Sal-Ki 중에서)

 

*LIM KIM – “SAL- KI” https://youtube.com/watch?v=P87gzqWr1_U

 

림 킴이 앨범을 작업하며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 중 하나는 동양 여성에게 적용되는 각종 선입견과 서구의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미디어에서 우스꽝스럽게 다뤄지는 요소는 물론, 흔히들 오리엔탈리즘이라 통칭하는 ‘동양’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각종 스테레오타입을 모두 깨는 동시에 단순히 소리만, 표면적으로만 동양의 정신과 음악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 실린 내용부터 비주얼까지 모두 하나의 메시지로 묶었다. 동시에 주체로서의 아시안 여성의 모습이 작품을 관통하게끔 치밀하게 작품을 구성했다. 한국에서 이 앨범이 지니는 의미도 크지만, 보다 더 넓은 세계를 상대로 (특히 서구권에) 아시안 여성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다.

 

세대(generation)과 아시안을 합친 앨범 제목 Generasian에는 총 여섯 곡이 담겨 있다. 그 안에는 한국의 굿부터 디지털 시대에 칸의 기상을 가진 동양 여성의 모습, 동양의 요술과 같은 요소들도 있다. 그 중 가장 메시지가 뚜렷한 곡은 단연 처음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YELLOW”다.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메시지가 가장 분명한 곡이기도 하고, 가사와 뮤직비디오 역시도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환상이나 잘못된 인식을 깨고자 한다. 그래서 아시아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고,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담았다. 피부색을 의미하는 “yellow”는 소리치다 라는 뜻의 “yell out”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시안 여성들은 나처럼 노래해, 그들은 여왕처럼 노래해.”

“남성 지배의 돔을 파괴하자.” (YELLOW 중에서)

 

*LIM KIM - YELLOW https://youtube.com/watch?v=o5S3sPpkd8w

*LIM KIM- MONG https://youtube.com/watch?v=XYNfqKJr538

 

림 킴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소속사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타자화되는 시선을 느꼈으며, 스스로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가 앨범을 제작하며 티셔츠에 가사를 써서 선보였던 것도, 욕망의 대상으로서 시선을 받는 것이 싫어서였다고 한다. 이 기사에도 써있지만, 여전히 서구의 백인 음악가들은 아시아의 스테레오타입을 단순히 비주얼로 차용하는가 하면, 그마저 왜곡되는 경우가 다수다. 림 킴은 그러한 상황들을 지켜보며 당사자로서, 주체로서, 아시안 여성으로서 확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 림 킴이 2020년 발표한 “All Right Remix” 커버


림 킴의 이야기는 Generasian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에는 “All Right Remix”를 발표해 자신의 과거를 현재에서 재해석하여 다시 선보였다. 다소 수동적인 이미지였던 과거를 깨고 좀 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 가사와, 메시지를 풀어내는 목소리도 훨씬 단단해졌다. 이어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국내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Mischief)와 함께 “MAGO”를 선보였는데, 한국의 창세신 마고할미의 의미와 가치를 꺼내 여성의 힘 모으기를 이야기하는 곡이다.

 

림 킴은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이제 그것을 확장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행보를 준비 중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채, 타협하지 않은 채, 각종 CF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음악은 어떤 세계를,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기대도 크다.

 

“여성은 강하게 태어났어, 세상을 다시 만들지.” (MAGO 중에서)

 

*LIM KIM – MAGO https://youtube.com/watch?v=SwcdVHRUBE4

 

[참고자료]

-경향신문 2019년 6월 17일자 기사 “[인터뷰]김예림(Lim Kim), 3년 공백 끝에 ‘지옥에서’ 돌아온 이유는

-림 킴의 앨범 발매 토크 https://youtube.com/watch?v=HfZHaNzvsVI

-종합 미디어 바이스 2019년 10월 15일자 인터뷰 “‘여성’과 ‘동양인’ 정체성 강조한 림 킴의 이유 있는 변신

-문화 매거진 비슬라 2020년 4월 21일자 인터뷰 https://visla.kr/interview/119117

-BBC 2021년 1월 22일자 인터뷰 “림킴: ‘당신이 기대하는 ‘동양 여자’는 무엇인가요?’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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