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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없는 세상, 동물과의 진정한 공존에 대해 고민하자 
 
나른한 오후, 친구 어머니께서 가꾸시는 텃밭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밭에는 파, 시금치, 상치, 얼갈이 배추의 연한 푸른 잎들로 가득했고,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방울토마토와 가지도 보였다. 그때였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호랑이만한 개” 한 마리가 우리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한 눈에 봐도 외래종 애완견임을 알 수 있었는데, 엉겨 붙은 털로 미루어보아 떠돌아다닌 지 여러 날이 지난 것 같았다. 한쪽 다리는 약간 절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어머니는 나름의 재롱을 피워대는 개를 향해 “저리 가!”하며 큰 소리로 쫓기 시작하셨다. 내가 보기에, 개는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유기동물의 운명은 비극적 죽음
 

도시 주변에는 버려진 동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부쩍 도시주변을 배회하는 개, 고양이가 많이 눈에 띈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도 길 잃은 개 한 마리를 만났고, 우리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배회하는 새끼고양이도 주인이 없어 보였다. 또 근처 산속 묘지, 봉분 위에서 쉬고 있던 개들, 숲 속 옹달샘에서 목을 축인 고양이도 모두 집 없이 떠도는 동물이 분명했다. 한번은 산자락 아래서 더럽고 지쳐 보이는 개 한 마리가 오가는 등산객들을 뒤따르다 포기하다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광경도 목격한 적이 있다.

 
버림받은 애완동물의 모습은 참으로 가엾다. 순전히 사람에 의지해 살던 동물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면 생존하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더 이상 돌봐줄 주인이 없는 애완동물은 그때부터 혐오동물로 바뀐다. 세상사람들은 그 동물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위생, 안전 등의 이유로 허용하지 않는다.
 
애완동물은 유기되는 순간, 그 운명이 비극적 죽음으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를 배회하다 교통사고로, 또는 사람들의 해고지로 죽음을 맞거나, 신고로 포획되어 동물보호소로 잡혀간다. 동물보호소로 간다고 해서 유기동물의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동물보호소에 머물며 예전 주인을 재회하거나 새 주인에게 재분양되면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기동물은 열악한 시설의 보호소에서 폐사하거나, 보호소의 부족한 자금을 이유로 한 달에서 석 달 내로 안락사 당한다. 어떤 유기동물은 비양심적인 사설보호소에 잡혀갔다 개 장수에게 넘겨져 끔찍하게 도살되기도 한다.

 
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얻지 못해
 
우리 주변,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확실히 증가했다. 그런 만큼, 그 동물이 유기되는 수도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유기동물의 수가 절정에 달하던 해는 2005년, 그 해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올해 다시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보도는 하나같이 경기침체로 집안경제가 어려워져 사료비와 치료비가 부담이 돼 애완동물을 버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도 동물유기의 중요 이유로 작용했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고 생명체다. 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야생동물과 달리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라면, 보살핌의 몫은 당연히 그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동물을 반려자로 삼으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동물을 끝까지 잘 돌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서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아직도 장난감과 별 다를 바 없는 애완동물이며, 삶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 즉 ‘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동물을 키우겠다는 결심에는 자녀를 낳거나 입양하겠다는 결심, 파트너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에서만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신중함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백화점에서 물건을 쇼핑하는 것과 동물 구입은 닮아 있다. 마음에 드니까 선뜻 구매하고, 나중에 시들해지면 버린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예외로 보더라도 말이다.
 
고양이를 사랑했던 한 유학생의 경우, 가둬 키우던 고양이가 발정기가 되어 열어둔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되자, 고양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안락사를 선택했다. 자신의 아이였다면 내내 가둬 키우지도 않았을 테고, 장애아가 됐다고 해서 ‘안락사가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제대로 키울 형편도 되지 않는데, 그처럼 선뜻 키울 결심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시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던 한 주부도 생각난다. 그 사람 역시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의 대체물로 고양이를 정성껏 키우다가, 갑자기 아이가 생기니까 아무 미련 없이 고양이를 내쳤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고양이를 찾지 않았다.
 
흔히 말하듯, 위의 두 사람 역시도 애완동물을 통해 고독감을 극복하고 정신적 안정감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완동물에게 위로를 받기보다 그 동물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거나, 더 이상 애완동물의 도움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자, 그들은 동물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을 위해’ 애완동물 키우기를 권장하고, 여전히 인간중심으로 동물을 키우고 있다. 사료를 먹이고 옷을 입히고 털을 염색하고 성대수술, 불임시술 등을 동원하면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 동물을 위해서라고 감히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날로 비대해지고 있는 애완동물산업이 조장하는 소비충동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또 내 편의를 도모하고 내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함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 아파트와 같은 주거형태에서는 그야말로 동물이 마음껏 소리 내고 달릴 수도 없어 동물이 동물답게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다. 집밖을 나가봐도, 도시 자체는 공원출입금지, 입산금지 등 애완동물 동반을 금하고 있어 애완동물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예전의 개나 고양이처럼 집 안팎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며 살 자유가 오늘날 애완동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애완동물의 존재이유가 그 동물에게 어떤 의미인지 숙고해야만 한다.
 
어쨌거나 현재 사람 손에서 키워지고 있는 애완동물은 끝까지 돌봄을 받아야겠고, 유기동물은 새 주인을 만나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겠지만, 진정으로 동물을 위한다면 동물을 인간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고 이용하는 행위자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수반된다면 유기동물의 수도 줄어들겠지만, 애완동물의 수 자체도 자연스럽게 감소하리라고 생각된다.
 
동물 의무등록제 실시를 앞두고
 

가브리엘 벵상 "떠돌이개" (열린책들, 2003)

하지만 당장 개개인의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기 힘들다면, 법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애완동물을 손쉽게 키우고 유기하는데 제동을 거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사실상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동물유기는 각 지자체의 골치거리다. 매년 유기동물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동물을 관리 처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호시설은 혐오시설로 여겨져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서 부족한 시설확충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발맞춰 각 지자체는 작년부터 외출 시 애완동물에게 목줄, 인식표를 부착하도록 해왔고, 지자체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제주도, 인천, 경기 지역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애완동물 의무등록제 실시를 준비하고 있다.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하고 잘 정착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제도 때문이라도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데 좀더 신중해지고 동물을 손쉽게 키우고 손쉽게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적어도 자기가 키우던 동물을 유기동물로 신고하는 파렴치한 사례는 확실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문득, 10여 년 전 나를 동행해 긴 시간 동안 길동무가 되어 주었던, 그 늙은 떠돌이개가 떠올랐다. 지금도 그 개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개는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했을까? 아니면, 좋은 주인을 다시 만나 여생을 편안히 보냈을까?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일다 www.ildaro.com  [관련 기사 보기] A독감, 가축의 생존권에도 관심을!
 
*함께 읽자. 가브리엘 벵상 <떠돌이개> (열린책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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