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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집밖의 자동차소음은 끊이질 않는다. 거실 창을 모두 닫고 실내에 앉아 있는데도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머릿속이 소란스럽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성가신 소음이 어디 자동차 소음뿐이겠는가. 난 정적을 비용으로 도시에 자리잡은 것이다.
 
소음의 홍수에 빠진 도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요한 순간이 도시인들에게도 필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도로를 면하고 있다. 날씨가 추울 때는 거실 창뿐만 아니라 베란다 창까지 꼭꼭 닫아두고 지내니까, 자동차 소음도 견딜만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온이 오르면 더위 때문에 베란다의 창이란 창은 활짝 열어두고 살 수밖에 없다. 특히 화초들에겐 원활한 통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접도로를 오가는 차량으로 인해 소음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인데,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자동차소음을 애써 무시하려는데, 또 다른 소음이 내 귀를 파고든다. 그러고 보니, 이삿짐차 사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소리다. 언젠가부터 이사는 계절이 없어졌다. 거의 날마다 이사를 들고나다 보니 수시로 바뀌는 이웃 익히기도 힘들지만, 사다리차 소음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하루 종일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사다리차 소음 사이로 ‘낡은 가전제품을 팔라’는 확성기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물건을 팔기 위해, 또 고물을 구하기 위해 반복적인 광고문구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다니는 차량들. 그 소음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시끄러운 음악까지 동반할 때면, 자동차소음을 능가할 정도로 짜증스럽기만 하다. 도시광고의 횡포는 시각적 차원을 넘어 청각적 차원까지 파고들어, 그 인내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거의 매 순간 계속되는 자동차소음에, 자동차경보장치의 찢어지는 소음처럼 간헐적이지만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폭력적 소음까지 도시는 소음의 홍수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웃간의 소음문제, 소통이 해결책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이웃집 소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이웃집 소음을 참을 수 없어 단독주택만을 고집한다고 했다. 이웃이 내는 소리에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사실 공동주택에서 어울려 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웃도 있다. 그래서 가까운 이웃, 특히 아래층과 윗층 이웃으로 누가 이사 오느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2,3년 전, 나는 이웃의 층간 소음 때문에 한동안 극심한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말로는 공부방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은 초등학생들의 놀이터였던 윗집,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밤낮으로 전화기를 잡고 고함과 욕설, 비명을 질러대던 아랫집.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이웃의 소음은 정말 참기 어렵다. 층간 소음만이 아니라, 아파트 규약에 세부조항까지 명시케 한 애완견의 소음 역시도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잦은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부부싸움이나 이웃끼리의 다툼, 계단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음, 가끔 들리는 피아노 소리 정도는 사람 사는 세상이니 무시할 수도 있다. 또 근처 학교운동장에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 벨 소리도 견딜만하다. 처음 아파트 생활에서 당혹스러웠던 관리소 안내방송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세탁!’하고 소리지르며 다니는 세탁소 아저씨의 고함소리는 감사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공동주택의 소음문제는 이웃간의 소통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온갖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그 중에는 환자도, 재택근무.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생활방식, 생활리듬이 동일하지 않다. 이웃을 알지 못하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기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 상대의 관점에서 자기행동을 바라보게 되고 또 조심할 수 있다.
 
게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참을 수 있게 된다. 내가 아랫집 아주머니의 끔찍한 비명을 1년 동안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처지를 동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윗집 사람들도 일터이자 생활공간인 우리 집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더욱 조심하게 되었고, 나도 어느 정도의 소음은 모른 척하게 되었다.
 
생활의 편리가 소음 만들어
 

앤 맥거번 글/ 심스 태백 그림 "우리집은 시끌시끌해" 외서 표지

그런데 밖에서 들어오는 소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도 소음은 넘친다. 겨울철 보일러 작동소리나 냉장고 소리에 가끔 새벽잠을 설치기도 하고, 새벽까지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가족 때문에 잠을 깨기도 한다.

 
아무튼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가전제품들은 실내소음의 주범이 되고 있다. 전기청소기로 청소하고, 세탁기로 빨래하고, 냉장고에 음식보관하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하고,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고, 텔레비젼으로 휴식하고, 컴퓨터로 일하고, 전화로 대화하고…. 가전제품은 이용하는 순간, 소리를 질러댄다.
 
게다가 요즘 우리 생활 깊숙이 차지하고 들어온 핸드폰은 전화보다 더 소음을 생산한다. 아무리 멋진 음악 벨소리를 사용해본들, 시간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우리 정신을 붙잡는 그 소리를 소음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오디오를 통해 들리는 음악조차 때로는 소음 같다. 평소 쉴새 없이 불편한 소리의 공세를 받다 보니, 그 어떤 멋진 음악보다도 고요한 정적의 필요가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난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본다. 손으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연필과 펜으로 일하고, 바람에 머리를 말리면서 가전제품을 잠재운다. 또 텔레비젼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산책을 가거나 잠을 청한다. 때로는 잠자는 밤이나 휴일, 전화코드를 뽑아둘 때도 있다. 또 핸드폰은 꺼두고 멀찌감치 밀쳐둔다. 그래도 냉장고는 어쩔 수 없다. 아파트에 사는 이상, 가전제품 없는 삶을 실현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어쨌거나 사생활 속에서 편리를 추구하는 것은 강요된 선택은 아니다. 비록 어렵긴 하지만 내가 편리를 포기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소음을 벗어날 수 있어 위안이 된다.
 
그러나 지금도 창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 하루 온종일 거의 쉴새 없이 계속되는 그 소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가 그나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라면 이사를 가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우리 집보다 더 자동차소음에 시달리는 집을 며칠 방문하고 오는 것도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살면서 사막에서의 정적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인도 정적이 필요하다. 아니, 정적이라기보다는 풀벌레 소리, 새 소리, 시냇물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밤하늘의 별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고요한 순간이 필요하다. 먼 길 떠나지 않더라도 일상적 공간에서 말이다. 소음에 지친 도시인은 소리를 향유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두 귀를 멍멍하게 하는 순간, 자동차 소음까지도 순간 사라지는 굉음의 순간, 나는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도 그 비가 그립다.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일다는 어떤 곳?
 
*함께 읽자. 앤 맥거번과 심스 태백 <우리집은 시끌시끌해> (보물창고, 2007)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유기동물 없는 세상을 넘어 |  나이에 갇히지 않는 나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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