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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유지법 시행 이후의 홍콩 사회를 전하다
홍콩에서는 2019년에 다시금 불붙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체포와 언론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20년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홍콩 국가안전유지법’(이하 홍콩 보안법)은 현재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아코 토모코(阿古智子)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와 저서 『홍콩,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지그, 2020) |
작년 가을 일본에서 『홍콩,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라는 책을 펴낸 아코 토모코(阿古智子) 씨로부터 홍콩과 중국, 그리고 대만과의 관계 등을 들어본다. 현대중국연구와 비교교육학을 전공한 아코 토모코 씨는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가난한 사람이 밥 먹는 나라-중국 격차 사회로부터의 경고』(신초샤) 등의 책을 썼다. [편집자 주]
‘홍콩 보안법’ 시행,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와 영국 식민지 시대의 홍콩 사회에서, 중국계 주민들은 정치 참여의 권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경제 활동은 상당히 자유로웠습니다. 또 다양한 NGO와 종교단체 등에서 사회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등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했습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시작된 후, 원칙대로라면 행정, 사법, 입법에 관해 홍콩 독자적인 제도가 유지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 해당하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이하 기본법)의 해석권이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있기 때문에 베이징의 간섭을 배제하지 못했죠. 일국양제는 모순된 구조를 떠안고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가안전’과 관련하여, 정권을 전복할 만한 움직임을 단속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기본법 23조에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2003년에, 해당 조항에 근거한 ‘국가안전 조례’ 제정 이슈가 제기되었을 때에는 이를 반대하는 집회가 일어났습니다. 중국 측은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홍콩이 중국 본토에 영향을 미치고 공산당 정권이 유지될 수 없게 될까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강경하게 국가안전유지법(이하 보안법)을 도입했습니다.
▲ 2019년 12월 9일, 홍콩에서 세계 인권의 날(10일)에 맞춰 열린 집회. 주최 측 추산 80만 명이 참가했다. 필자인 아코 토모코 씨도 함께했다. (제공: 아코 토모코) |
작년 12월, 홍콩 언론 <빈과일보>(Apple Daily, 蘋果日報)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반중 인사로 알려진 지미 라이 씨(73세)가 외국 세력과 결탁해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며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습니다. 지미 라이 씨는 보석을 신청했지만 법정 공방을 거쳐 올해 2월 9일, 종심법원(대법원에 해당)이 “홍콩의 법원에 보안법 조문의 위헌성을 심사할 권리는 없다”고 판결하며 끝내 불허했습니다.
기본법(헌법)에 의해 보안법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의 법치라고 할 수 있으며, 홍콩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을 의미합니다. 법이 정권의 도구가 되고, 정치적인 안정을 위협할 경우에 정권은 법률 해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공산당 정권은 감시기술과 경찰 권력 등 폭력적인 측면을 활용해 정권 안정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홍콩 시민사회에 압력을 계속 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홍콩뿐 아니라 중국과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주변국에도 미칠 파급이 우려됩니다.
표현과 논의의 장 펼쳤던, 홍콩과 대만 민주시민 교육
홍콩의 고등학교 학습 과정에는 1992년에 처음 선택과목으로 도입되고 2009년에는 필수과목이 된 ‘통식’(通識) 교과가 있습니다. 인문사회학 과정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 고등학생들이 자료를 활용해 논증하는 수업입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상관없이 자료를 보고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장입니다. 이러한 교육이 홍콩 사회에서 ‘시민의 힘’을 길러온 면도 있습니다.
또한, 식민 지배 시기와 계엄령이 내려진 독재정권 하의 통치 시기, 그리고 언론 탄압 등의 역사를 가진 대만에서는 민진당 정권에서 ‘이행기 정의’를 촉구하며 이전 정권하에서 이루어졌던 잔혹한 행위에 관한 조사와 검증, 억압당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인 사죄, 수난자에 대한 명예회복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교육에서도 ‘역사 다시보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홍콩과 대만의 교육에는 일본 사회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2014년 대만의 해바라기운동과 홍콩의 우산혁명은 청년 층이 중심이 된 민주화 시위였습니다. 중국이 강대해졌음에도, 군사적으로도 약하고 국제적으로도 국가로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가운데 자유를 지키고 있는 대만에 대해, 홍콩 사람들은 높이 평가하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대만과 홍콩의 청년들은 해바라기운동, 우산혁명 때에도 서로 협력하며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홍콩은 보안법 제정 이후 ‘통식’ 교과 과정의 차시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침입니다. 국가안전교육과 애국심 교육이 추진되면서 더 큰 전환이 강요될지도 모릅니다. 국가, 국민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정체성이 강했던 홍콩 사람들이 갑자기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이라는 것은 위에서 찍어 눌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지난 2월 19일, 일본에서 아코 토모코 씨 주도로 ‘중국의 홍콩 탄압에 항의하는 1만 명의 서명’을 모아 일본 외무부 부대신(차관)에게 전달했다. ©페민 |
홍콩 민주화,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
민주화 운동 주동자 중 한 명이고 일본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아그네스 초우 씨가 작년 8월에 체포되었습니다. 도망범 조례에 반대하는 집회를 조직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녀가 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입증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그네스 초우 씨는 보석으로 풀려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률은 시민의 권리를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홍콩 정부에게 법률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되어버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중국의 정치가 짧은 기간 내 달라지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고, 이러한 정세는 당분간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지하활동으로 전향하는 점도 우려됩니다. 홍콩에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고, 벼랑 끝으로 몰리면 실제로 테러 활동을 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동아시아에 테러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궁지에 내몰린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해나가는 것이 세계 시민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에는 해외로부터의 의견 표명, 자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 등이 있을 겁니다.
중국의 위협을 부채질하지 말고, 홍콩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상황을 주의 깊게 보면서, 다음 세대의 배울 권리를 지키며 누구나가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세계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아코 토모코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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