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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청년 페미니스트 난다 인터뷰

[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서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2월 1일, 깰 수 없는 악몽이 시작되었다

 

지난 2월 1일 월요일, 미얀마의 양곤 시에 있는 한 아파트. 난다(Nandar)가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 데이터 통신망이 차단된 것이다.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직감이 들었다. 와이파이가 잘 안될 때는 종종 있었지만 데이터 연결이 먹통인 적은 없었다. 인터넷 뉴스를 볼 수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어 창 밖으로 거리를 내다봤다. 사람들이 다급하게 오가며 물건을 사재기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창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곧이어 군대 트럭들이 대거 지나갔다. 국가가 크게 울려 퍼지고 승리를 기념하는 방송이 나왔다. 뭐라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몸서리가 쳐지고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 날 바로 통금이 시작됐다. 부모님 세대가 겪었다던 군부 독재가 또 시작되는 건가? 안전과 자유를 빼앗겼다는 감각은 무기력함으로 이어졌다. 수년 간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많은 이들과 함께 이뤘다고 생각한 변화들이 한 순간에 소용없어진 것 같기도 했다. ‘독재 정권 하에서 성평등이 가능할까?’ 의욕이 꺾여 일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평소처럼 페미니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팟캐스트를 한다는 건 너무 위험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눈에 띄는 활동가를 어떤 구실로든 잡아 가둘 수도 있었다.

 

대신, 난다는 매일 시위에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뭘 좀 먹고 나서 바로 집회에 나갔다가 오후 3시쯤 돌아오는 일상이 한동안 이어졌다. 거리에서 많은 시민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다 보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몰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느껴졌다. 

 

▲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활동가 난다.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며 거리 시위를 하는 모습. ©Nanda


그러나, 얼마 안 가 시위대 및 시민불복종운동에 대한 군부의 무력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양곤 시민들은 더욱 고립됐다. 시위 도중 군대와 경찰이 나타나면 건물이나 차 뒤에 숨고 이웃집에 급히 들어가기도 했다. 집에서 문을 닫고 있어도 안전하지 않았다. 최루가스가 터지면 집안까지 그 냄새가 진동을 했다. 군인들이 아무 때나, 아무데나 들이 닥쳐서 불심검문을 했다는 증언이 나돌았다. ‘깰 수 없는 악몽, 멈추지 않는 태풍’ 같은 날들.

 

이는 현재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활동가 난다(Nandar)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난다는 1995년 미얀부 북부 만삼(Mansam) 지역 소수민족인 네팔계 가정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업 활동가가 되기 전에는 소수민족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승가 교육(monastic education) 기관에서 3년 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난다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미얀마어판을 번역 출간했고, 2018년에는 미얀마에서 이브 엔슬러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초연 프로젝트에 기획자, 배우로 참여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단체 ‘퍼플 페미니스트 그룹’(Purple Feminist Group)을 설립해 월경권, 임신중단권, 반성폭력 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또 2개의 팟캐스트 ‘G-Taw Zagar Wyne’ 그리고 ‘Feminist Talks’를 영어 및 미얀마어로 만들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장 또렷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인 난다는 2020년 BBC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들'에 꼽히기도 했다. 군부의 타깃이 되기 쉬운 위치에 있는 활동가인 난다는 현재 국외로 피신하여 미얀마 상황을 알리며 시민불복종운동을 계속 펴는 한편, 해외 페미니스트 그룹과도 연대를 꾀하고 있다. 이 인터뷰는 암호화된 이메일과 메신저, 줌 미팅을 활용해 여러 날에 걸쳐 어렵게 이루어졌다.

 

▲ 난다는 현재 국외로 피신한 상태로, 이 인터뷰는 암호화된 이메일과 메신저, 줌 미팅을 통해 여러 날에 걸쳐 어렵게 이루어졌다.


-얼마 전 쿠데타 군부에 의한 사상자가 7백 명을 넘어서고 체포된 사람은 2천 명이 넘었다는 뉴스를 봤어요. 난다 님이 겪고 있을 아픔과 슬픔에 대해 몇 마디 위로의 말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사실 미얀마에 대한 앎이 부족하기 때문에 질문하기도 무척 조심스럽네요.

 

“네,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은 해외로 무사히 빠져 나왔고, 며칠 쉬면서 조금 안정을 찾은 상태예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소통하게 되어 기쁩니다. 미리 준비해주신 질문이 아니더라도 궁금한 점들을 다 물어보세요. 저도 아는 만큼 솔직하게 답할게요.”

 

-세계 많은 언론이 이번 시민불복종 운동을 동시다발적으로, 또 수평적으로 일어난 풀뿌리 민주주의 행동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요, 난다 님은 보고 겪은 바로는 어떤가요? 

 

“이번 시민혁명에는 교육수준이나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또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모두가 나서고 있어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시민들이 죽어나간 일은 미얀마 역사에서 벌써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1988년, 2007년, 2015년에요. 그래서 세대를 걸쳐 미얀마 사람들 마음에 트라우마가 많죠.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사람들은 ‘지금’ 저항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게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군부 쿠데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저항에 참여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게 너무 비극적이지만,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그 부당한 권력을 용인하는 셈이 된다는 데 생각이 모인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군부와 맞서고 있는데요, 특히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학생 그룹, 예술가 그룹, 디지털 액티비즘 단체들, 카렌민족연합(KNU) 등이죠. 의회 정치에선 민족민주연맹(NLD)과 미얀마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소식이 주로 들려요. 각 그룹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여러 그룹들이 각자 역할을 하면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고 있어요. 청년 층은 시위에 나갈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국제사회와 곧장 연결돼요. 풍자적인 밈을 만들어서 뿌리고, 청원을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예술은, 본래 변화를 만드는 가장 급진적 역할을 하잖아요. ‘생각’ ‘느낌’ ‘행동’을 동시에 촉발할 수 있는 도구 같아요. 카렌민족연합의 무장 군대인 카렌민족해방군이 시위대 앞에 서기도 하는데요, 무력을 반드시 지지할 수 없지만 미얀마의 소수민족 박해의 역사를 생각할 때 불가피한 하나의 저항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탄압의 역사는 길고 잔혹하다. 이와 관련하여 <일다>에서 2007년, 미얀마 소수민족 여성들의 인권 실태와 군부가 집단적으로 자행한 성범죄에 대해 연속 보도했는데, 카렌족 여성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버마 군부의 성범죄 ‘침묵을 깨뜨리며’” https://ildaro.com/3894)

 

≪일다≫ 버마 군부의 성범죄 ‘침묵을 깨뜨리며’

[버마 여성단체들에 의해서 버마 군부가 소수 민족 여성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집단 성범죄가 잇따라 국제 사회에 보고 되고 있다. 버마 민주화와 여성에

www.ildaro.com

 

미얀마연방의회대표위원회(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들로 구성됨)는 군부가 집권을 선언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임시)정부를 만든 거잖아요? 쿠데타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전략이라는 점에서 중요해요.

 

그리고 거리 집회나 시위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력 충돌 뒤에 조용한 혁명도 쭉 같이 있었어요. 저는 이런 다양한 정체성들과 활동들이 합쳐져서 독특하고 회복력 강한(resilient) 지금의 미얀마 시민운동을 만들고 있다고 봐요. 물론 많은 결점과 실수도 벌어지고 있고, 앞날을 잘 예측할 수도 없어요. 그래도 저는 희망을 갖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저항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둡니다.”

 

▲ 난다가 모터 사이클을 탄 채 거리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독재, 가부장제, 인종주의, 부정의에 반대한다 “   ©Nanda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직접 나서는 것, 특히 무력 탄압이 시작된 이후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시위를 계속하는 것이 외부에서 보기에 너무 위태롭지만 또한 숭고한 모습입니다. 사실 여성들은 성적 폭력을 겪을 수 있다는 위협도 항상 따라다니잖아요.

 

“시위에 참가하는 여성 활동가들은 심지어 군부의 무력 탄압이 있기 전에도 군인들에 의해 성추행을 겪고 불법촬영 피해도 많이 겪었어요. 반바지 같이 피부가 조금만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성추행을 당하고, 마찰 중에 드러난 신체 부위가 사진과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죠.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도 여성들은 ‘무엇을 입고 나가야 하나’부터 고민해야 됐던 거예요.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성폭력의 경우에 문제를 제기해도 대개 그냥 묻힌다는 거예요. ‘더 큰 문제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 저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괴로웠어요.”

 

-운동사회 내에서도 성폭력, 성차별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한국도 사회운동 조직에서 페미니즘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고, 조직 내에서 미투 고발을 한 사람은 ‘우리의 힘을 약화 시키는 내부고발자'라고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요.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저조차도 근래 내적 갈등 중이에요. 평소에 하던 페미니즘 교육활동이나 팟캐스트 방송에서 시민불복종 운동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건,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어요. 일촉즉발의 현 운동에서도 저는 내부의 많은 문제점들을 보거든요. 예를 들어, 시위 포스터들에 즐비한 성차별, 여성혐오적인 내용들이요. 공동의 목표와 비전으로 뭉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것들을 다 괜찮다고 넘어가는 걸 많이 목격했어요.”

 

-성차별적, 여성혐오적인 포스터로 어떤 게 있나요?

 

“내 미래는 니키 미나즈의 가슴보다 크다(my future is bigger than nicki minaj's boobs)라는 구호나, 민 아웅 흘라잉(군부 지도자)을 여성의 성기와 비교하는 포스터도 있어요. 또, 시위대가 흔히 쓰는 구호로 ‘민 아웅 흘라잉 마더퍼커’(mother fucker)도 있는데요. 거기 ‘엄마’가 왜 붙어야 되나요? 전 그 구호만큼은 절대 따라 외칠 수가 없었죠.”

 

-주변에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있어요. 주변에 젠더 감수성이 민감한 친구들끼리는 계속 불편함을 호소했어요. 한번은 친구가 이런 일을 겪었어요. 시위 중인 거리 한쪽에서 어떤 여자 아이가 주저 앉아서 인형을 갖고 노는데, 카메라로 아이의 엉덩이를 몰래 찍는 남자를 봤대요.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저지하지 않아서, 친구가 직접 다가가서 뭐하냐고 따졌대요. 그 남자는 ‘그냥 시위 모습을 찍는 것’이라고 발뺌하면서 도리어 화를 냈어요. 그리고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자기 친구들을 불러와서 제 친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갔다는 거죠. ‘우린 지금 나라를 위해서 여기 시위에 나와 있는데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간다’고 크게 떠들면서. 결국 제 친구도, 불법촬영을 당한 그 아이도 위협을 느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나야 했죠.”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공론화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관심을 못 받아도, 계속 얘기해야죠. 한 사람이 나서서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해도 벽에 조금 균열을 낸다고 저는 생각해요. 단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 난다는 3월 4일, 국제개발여성인권연합(awid)에서 마련한 팟캐스트에 3명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출연해 미얀마 시민운동에 대해 이야기나눴다. https://awid.org/resources/awid-live-civil-disobedience-movement-myanmar


-난다 님이 인근 국가로 피신하기 전, 4월 초의 미얀마의 정황은 어땠는지 얘기 들려줄 수 있나요? 

 

“쿠데타가 일어난 뒤로 두려움, 애도, 슬픔, 분노가 일상이 됐어요. 신변이 훨씬 안전해진 지금도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한 감정들이 많아요.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미얀마는 지난 몇 년간 상당히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차단이 되니까, 그 감각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군부의 무력 탄압이 시작되고 나서 양곤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겠다(re-location)는 결심이 섰는데, 떠나기 전에 가족들을 보고 가려고 고향 마을로 잠시 내려갔어요. 그게 3월 둘째 주였어요. 고향 마을에서 다시 양곤으로 갈 때, 도시 풍경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생생해요.

 

고속도로는 경찰과 군대 차량으로 가득 차 있고, 민간인까지 아무나 붙잡고 불심검문을 하더라고요 ‘CDM(시민불복종운동)에 가담하냐, 뭐 하러 가는 거냐’ 물어요. 시내가 조용하다 못해 황폐했어요. 늘상 바쁘고 활기차고 밤에도 사람으로 가득했는데, 그때는 낮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상점들마다 틀어놓는 음악도 없고, 웃는 사람은 물론 우는 사람도 보기 힘들만큼 그냥 깜깜하고 조용한... 쿠데타 때문에 순식간에 미얀마라는 나라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제 안에서 부서진 것 같아요. 아름답고 복잡하면서 활기찬 곳,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 그런 게 다 깨져버렸어요.”

 

-혹시 외국으로 나오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쿠데타에 반대하는 그 누구든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에요. 페미니즘 운동을 활발히 해오던 저 같은 경우에도 군부가 가만히 두질 않겠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피신했는데, 먼저 무사히 떠난 사람이 유용한 정보를 일러줘서 탈출을 도왔어요. 저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하려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거기 있으면 공포에 질려있게 되거든요. 통금 때문에 저녁 8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되는 것도 제약이고, 밀고 당할 위험도 신경 쓰여서 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웠죠. 가족과 지인들까지 저를 걱정할 거고요. 제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계속 미얀마에 남아 있으면 커뮤니티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나왔어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대화도 가능했죠. 이 대화가 기사로 발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텐데, 그것도 시민불복종운동에 힘을 보태는 일이고요. 난다 님은 워낙 왕성하게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한숨 돌린 지금,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저는 하던 일들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심리학자들을 초대해서 정신건강 콘텐츠를 만들까 해요. 유혈사태라는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감정적인 케어도 정말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비대면 인터뷰나 토론회를 통해서 미얀마의 ‘정치적 위기'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도 해야 하고요. 아니 잠깐만요, 그런데 이걸 ‘정치적 위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냥 대량살상 아닌가요?”

 

▲ 군부 쿠데타의 맞서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외무부 소속 정치인 마우 찐 마 웅(Daw Zin Mar Aung)이 “우리 국민들은 권리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대가이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장면.  ©출처: crphmyanmar.org


-젊은 세대, 그리고 성평등에 대한 신념이 강한 활동가로서 난다 님이 원하는 미얀마의 근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들려주세요. 군부가 하루빨리 물러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 후를 내다본다면요.

 

“저는 미얀마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에서 곧 공식 발표(4월 16일)할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를 지지하는 입장이에요. 지난해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과 반쿠데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 소수민족 대표자들이 많아서요. 젠더 감수성을 갖춘 정치인들도 있어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정책 비전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미얀마에서는 이전부터 이런 형태의 연방 민주주의(federal democracy)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왔는데,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이를 지지하고 뒷받침 할 힘이 상당히 모였어요.”

 

-시위대의 피켓이나 인터넷 밈을 보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얼굴이 많이 보여요. 그를 지지하고 복권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사실 지난 몇 년간 아웅산 수치의 리더십에 대해서 국제사회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들도 제기되었는데요, 난다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어떤 식으로든 아웅산 수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기로 정했어요. 여성 리더십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서요. 다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 의회 정치에 수치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 사람에게 권력과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분권화(decentralization)가 필요해요. 좀 더 지속가능한 리더십, 풀뿌리 민주주의, 사람 중심의 정치를 위해서요. 또 한편으로는 나라의 리더가 여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여성 인권, 성폭력, 여성들의 정계 진출 같은 성평등 이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구실로 작용하기도 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요.”

 

-네, 공감합니다. 저는 분권화, 풀뿌리, 사람 중심의 정치가 모든 성(별)의 자유, 해방, 공존이라는 페미니즘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봐요. 성의 억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참여하는 자유로운 정치의 장이 바로 민주주의이기도 하죠.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꼭 여쭤볼게 있어요. 미얀마 시민운동에 공감하며 지지하는 한국의 독자들이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까요?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여섯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 드릴게요.

1) 먼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각자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온/오프라인 시위에 참여해주세요.

2) 국민청원에 동참해주세요. 무의미해 보일 지라도 모든 시도 하나 하나가 중요해요.

3) 미얀마 시민운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이슈의 인지도를 높이는 겁니다.

4) 미얀마 군부에 물자를 공급하는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적극 항의하고 불매운동을 벌여주세요.

5) 미얀마에 도움이 되는 경제적,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마련해주세요. 미얀마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에 기부할 수도 있고, 미얀마 내외에 활동가 피난처를 제공해주실 수도 있겠죠.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는 특히 지원이 늘 부족해요.

6) 폭력과 상실로 고통을 겪는 미얀마 사람들의 정신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도 필요합니다.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은 워크숍이나 자료 등을 제공해주세요. 미얀마어로 번역이 되면 좋겠죠.

 

얼마 전에 제 상담사가 조언하기를, 애도(grieving)는 단지 옆에 있던 타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연관되어 있던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잃는 과정이기도 하대요. 그게 지금 미얀마 사람들이 겪는 현실이에요. 몇 달 간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고, 일자리도 관계도 잃어왔어요. 한 때 교사, 엔지니어 혹은 언니, 딸, 아들, 남편이었던 우리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이기도 한 거에요.

 

▲ 난다는 미얀마 페미니즘 단체 ‘퍼플 페미니스트 그룹’(Purple Feminist Group)을 설립해 월경권, 임신중단권, 반성폭력 운동 등을 펼쳐왔다.  ©출처: purplefeminist.org


군부가 이대로 장기간 나라를 장악하면, 국제사회와 미얀마 사람들 간에 다양한 연결이 끊길 거예요. 세계로 통해있던 문 하나가 닫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쿠데타를 막아내는데 성공하면, 그건 미얀마 시민들의 승리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의미 있는 성공이 됩니다.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도록, 각자 가능한 방식으로 연대해주세요!

 

‘침묵은 누구도 구하지 못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트라예요. 불의에 침묵하면 나도 그 문제의 일부가 됩니다. 내가 속한 사회에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는 이상, 그건 곧 나의 책임이기도 해요. 가족, 동료, 이웃, 친구들과, 학교와 직장에서 계속 계속 듣고 말해야 됩니다. 그 목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하나의 선언이니까요. 쿠데타와 독재와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선언. 당신이 있는 곳에서라도 바로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난다(Nandar) 인터뷰 영상(8분) 보기: https://youtu.be/ZZ4d52Mn5cQ

 

[필자 소개] 하리타: 독일과 한국, 그 밖에도 매일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페미니스트 작가. haritamoonrider@gmail.com “인터뷰 팟캐스트 [탈조선, 다음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해외 거주 여성들을 만나 우리들의 일, 사랑, 놀이, 연대 그리고 정체성 투쟁에 대해 다정하게 듣고 말하는 방송으로, 한국여성재단이 후원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해주세요!” linktr.ee/Talda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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