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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페미니즘] 성적 차이를 지닌 존재로서 ‘주체’되기

 

‘페미니즘 교육’의 개념과 의제, 실천의 역사와 현재성을 탐색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해본 “이제는 페미니즘” 연재 마지막 글입니다. 이 연재의 필진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들로, 이제IGE는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연구와 활동을 펴고 있는 여성학 연구자 집단입니다. <편집자 주>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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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은 “전쟁터”…억압과 저항이 맞물린 장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미국의 1세대 페미니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Babara Kruger)는 “여성의 몸은 전쟁터”라고 선언했다. 여성의 몸이 전쟁터라는 것은 억압과 저항이 맞물려 일어나는 곳이라는 의미다. 여성의 몸은, 여성을 남성의 타자인 ‘제2의 성’에 묶어두는 갖가지 억압이 새겨지는 장소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에 의해 체험된 몸은 성차별적 구조와 불평등한 젠더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저항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성의 몸은 전쟁터”라는 명제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낙태죄’에서 젠더 폭력에 이르기까지 성불평등에서 촉발된 일련의 페미니즘 논쟁들은 근본적으로 성적인 인간 존재들의 ‘몸’, 특히 여성이 입고 있는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이다.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여성의 몸은 더욱 격화된 전쟁터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중요시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귀결시키며, ‘루저’가 되지 않으려면 철저히 자기계발을 하는 시민이 되라고 요구한다. 자기계발 담론에서 몸은 자아실현의 징표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외모는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개개인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원이자 인생의 스펙이 된다.

 

▲ 바바라 크루거,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1989년작, 브로드박물관

 

특히 성평등 교육의 현실과 관련해서, 필자는 여전한 ‘전쟁터’로서 여성의 몸을 적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현상이자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드러내고 정체화하는 방식으로서 최근 10대 여성들에게서 급부상한 두 대극적 현상에 주목한다. 하나는 ‘프로아나’(Pro-Anorexia)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탈코’(Escape the Corset) 현상이다.

 

‘프로아나’ vs. ‘탈코’ 두 대극적 현상이 보여주는 것

 

오늘날 소비의 주체가 된 1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다. 소위 ‘노는 애들’이 하는 일탈로 치부되었던 과거와 달리, 화장은 또래집단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맨얼굴이 아닌, 화장한 얼굴을 기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 화장은 꼭 해야 하고, 화장품에 양보할 용돈이 없으면 틴트 대신 형광펜을 바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아이돌 걸그룹을 보며 성장한 10대 여성들은 예쁜 얼굴과 마른 몸매를 가진 연예인에 대한 선망 속에서 성형 열풍, 다이어트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이고 “여자가 살찌는 것은 여자이기를 포기한 행위”이며 “못생긴 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여자는 용서가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마른 몸에 대한 10대 여성들의 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 깡마른 몸을 동경하며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프로아나’(Pro-Anorexia, 거식증에 찬성한다는 뜻) 현상이 10대 여성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출처: pixabay)


10대 여성들 사이에서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놀이처럼 빠르게 번지면서 또래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프로아나’ 현상은 비현실적으로 마른 몸에 대한 이들의 강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거식증(anorexia)에 찬성한다(pro)는 의미의 신조어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프로아나’는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깡마른 몸을 동경하면서 체중감량을 위해 음식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행위다.

 

“#프로아나”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스스로를 “프로아나족(族)”이라 부르는 여성들은 “살이 찌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키에서 각각 120, 125를 뺀 만큼의 체중을 갖는 “개말라 인간”, “뼈말라 인간”이 되기를 열망한다. 이들은 SNS상에서 “같이 조일”(함께 살을 뺄) 사람을 찾고, “프로아나 8계명”에 따라 무작정 굶기, 먹토(먹고 토하기)나 씹뱉(씹고 뱉기)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기, 혀 피어싱 하기, 변비약·이뇨제 복용 등과 같이 위험한 방식의 살빼기 비법을 공유한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몸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프로아나처럼 음식을 거부하는 행위를 통해, 마른 몸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서는 크게 두 가지 욕구가 발견된다. 하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다운 나’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다. 그러나 “개말라 인간”, “뼈말라 인간”의 깡마른 몸은 사실상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는 몸이 아니라, 여성성이 지워진 탈성화된 몸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 조절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욕구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통해 몸을 통제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처럼 보여도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는 여성성 규범을 내면화한 결과이고, 통제력을 얻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은 그러한 규범을 철저히 따른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자기만족이 될 수 없다.

 

한편, 10대 여성들에게 뚜렷하게 관찰되는 또 다른 현상인 ‘탈코’ 즉 탈코르셋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여성의 몸과 일률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 자기 결정권을 되찾기 위해 각자의 몸을 도구 삼아 저항을 실천하는 행위다. 탈코는 여성성을 열등한 것으로 폄훼하면서 여성을 타자화하는 구조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외모를 꾸밀 선택의 자유가 실제로는 규범적 여성성을 수행하는 한에서만 부여되고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통제를 거부하고 자기결정권을 되찾기 위해, 여성들은 ‘탈코르셋’을 통해 자신의 몸을 저항의 장소로 삼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려는 10대 여성들에게 탈코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탈코인(人)”들은 SNS에서 “#탈코(르셋)_인증”, “#탈코르셋은해방입니다”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화장, 긴머리, 하이힐, 치마, 다이어트 등 사회에서 강요된 억압적 여성성을 벗겨낸 모습의 사진과 글을 올리고 공유하는데 적극 동참한다.

 

‘탈코’가 갖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 가운데 하나는 여자로서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새로운 여성/여성성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느냐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탈코르셋에 참여하려면 머리를 짧게 깎고, 화장을 하지 않고, 셔츠와 바지 차림을 해야 한다”는 예에서 보듯, 탈코르셋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의 시선에 의해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된 것들을 다 떼어내려다 보니 모든 여성성을 삭제해버리고 탈성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로아나’와 ‘탈코’는 대극적인 현상이지만, 탈성화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서 여성이 ‘성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정체화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하며 새로운 여성/여성성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자아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성적 차이를 가진 존재로서 여성의 정체성 역시 성적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오래도록 ‘남성’이 탈성화된 존재인 개인으로, ‘남성성’이 개인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사회에서, 여성성을 삭제해버리는 여성의 탈성화는 은연 중에 여성/남성, 여성성/남성성을 위계화하는 젠더 질서에 기댈 우려가 있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 차이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서열화하는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자다운 나’를 강요하는 규범적 여성성에서 벗어나고자 여성적인 것을 삭제하는 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즉, 여성과 남성 사이에 실재하는 성차를 관계 속에서 성찰하고 변주할 수 있게 하는 성평등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성평등 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성적 차이를 가진 존재로서 주체되기

 

지금 교육 현장은 젠더 갈등이 표출하는 장이 되고 있다. #스쿨미투 운동은 학교가 젠더화된 공간임을 널리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양성평등정책연구원의 「또래문화를 통해 본 청소년의 성평등 의식과 태도연구Ⅰ」(2020)에 따르면,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평등 의식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 청소년들은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높아지고 있으며, 교실에서는 또래문화로 자리잡은 성차별과 성희롱, 여성혐오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지만, 현장에선 학생들에게 성평등 수업이 ‘노는 시간’ 정도로 인식된다.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평등 교육은 “나다움에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여자답게/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살 것을 독려하는 중이다.

 

성평등 교육의 핵심적인 기획으로서 ‘여자답게/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를 강조하는 전략은 애초의 의도대로 성별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서 규범적 여성성/남성성을 격파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나아가 개인적 의제를 넘어 일상에서의 정치적 실천을 추동할 수 있는 잠재력도 분명 지니고 있다.

 

문제는 “저마다의 특성과 개성을 그대로 발현하는 나다움”이 자칫 여성적인/남성적인 ‘모든’ 것을 떨쳐내야 할 성별고정관념으로 쓸어담고, 정작 현실태로 존재하는 성차를 무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자답지 않은 여자인 나’로서, ‘남자답지 않은 남자인 나’로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2019 양성평등 작품 공모전」 청소년부 은상 수상작. 이서연 “우리의 내면은”


성적 차이가 무화된 성평등 교육의 담론 안에서 ‘나다운 인간’이 되라는 호소는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이 곧 여자인/남자인 내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성적 차이를 가진 인간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가려버린다.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연결된 인간관계 안에서 각각의 ‘나’는 주체인 동시에 서로에게 ‘타자’이다. 인간관계의 역설은 우리가 나와 다른 타자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한에서만 나 자신을 개별적 주체로 볼 수 있고, 나를 타자와 구별하는 한에서만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차 역시 관계 안에서 자아와 타자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성차가 무화된 ‘나답게’ 담론에는 성적 차이를 가진 타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그 관계 맺기의 출발점이 되는 성차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성찰하기가 사실상 매우 어려워진다.

 

성평등 교육에서 성차가 무화될 때, ‘여자답게/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의 나는 단지 탈성화된 주체이기보다 남성화된 주체로 수렴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더욱 우려스럽다. 여전히 남성이 디폴트 인간으로 간주되는 성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나’가 아닌 ‘너’로 타자화되고 있고, 열등한 것으로 버려져야 할 속성의 대부분은 여성적인 것이지 남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답게 살고자 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이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탈코’, ‘프로아나’ 현상에서처럼 남성의 대상 또는 탈성화된 주체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은 결국 타자의 지위에 머물게 되고, 여자인 동시에 인간인 나의 주체 되기는 불가능한 상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여성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 분리될 때, 남성 또한 오롯이 나다운 나로서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는 인간관계 안에서만 나를 주체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성평등 교육의 현실 앞에 놓인 과제는 성별고정관념에 속박되지 않는 내가 되라고 독려하는 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모두가 성적 존재로서 각각의 주체성을 발휘하면서 ‘우리’로 공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계 속에서 성차를 재/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답게’를 넘어 ‘관계’ 속에서 성차를 재사유하는 교육으로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 출발해 성평등의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페미니즘의 정치학에서 ‘차이’는 여러 층위의 개념적 긴장을 돌파해온 핵심적인 의제다. 차이를 이론화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사상적 여정 속에서 ‘성차’는 성적인 존재들이 관계 안에서 새로운 젠더 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하는 역량으로, 그 개념적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성차는 존재론적 차이로서 인간의 주체성이 생성되고 규정되는 많은 차이들의 근간이다. 성적 차이는 나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체현된다. 우리는 관계들 속에서 이미 성적인 존재들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 성적 차이 역시 타자와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체현되는 것이다. 상호연결된 관계성 속에서 성차와 주체성을 이해하고 성평등을 모색해가야 한다. (출처: pixabay)

 

우리는 취약한 인간으로서 ‘상호의존’을 존재 조건의 기반으로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내가 타자에게 해를 가하면 그 해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망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각은 타자에 대한 존중이 곧 나에 대한 존중이며, 공존이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며 서로를 돌볼 책임이 있다는 인식,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인식을 일깨워준다.

 

상호연결된 관계성 속에서 ‘성차’는 본질적인 것도 보편적인 것도 고정된 것도 아니다. 특정한 상황들 속에서 구체적인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생산하는 위계적 이분법의 정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성평등한 관계 맺기’는 우리가 주체이자 타자로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민주적 관계는 성차를 존중하는 상호주체성, 그리고 성차로 인한 상호타자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 포괄적 성교육 도입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공교육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성평등 교육 또한 ‘나답게’를 넘어 성차를 긍정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안타깝게도 그 실천적 방안을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현행 교육체계에서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성불평등한 사회에서 자기 자신, 타자,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성차’를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긍정적인 역량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교육 컨텐츠를 계발하는 것은 앞으로의 성평등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그 첫 단계는 성평등의 궁극적 목표를, ‘학생 시민’을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적 삶을 긍정하며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적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은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이고, 성평등의 실현 또한 인간관계를 통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이진희.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이다. 대학에서 여성학과 섹슈얼리티를 가르쳤고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권력의 정신적 삶, 성적 주체성의 형성 과정과 저항적 행위성의 발현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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