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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던지고 싶다, 그 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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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다. 하루하루 나도 모르게 내려앉은 먼지처럼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느덧 그렇게 쌓여 있다.

 

<일다>에 실은 글들은 내가 경험했던 끔찍한 폭력이 어떻게 내 삶을 관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성폭력의 경험이 말해지기 어려운 사회에서, 강간을 당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관련 기사: 성폭력 피해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https://ildaro.com/6252)라는 고민에 대해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기사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이 이름을 얻었고, 또 적어도 성폭력 트라우마의 고통이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일다≫ 성폭력 피해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 연재의 마지막 기사입니다. 고통을 이야기하고, 듣고, 공감하는 쉽지 않은 여정을 함께해준 필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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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부족한 글이었지만, 독자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다른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함께 울며 회복의 여정을 나누었다. 성폭력을 겪은 많은 여성들이 위로가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올 때, 나는 행복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는 그 10년의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들을 기록하고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적어도 난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회복의 길을 걸었으며, 그 결과 나의 삶은 장밋빛 인생은 아니더라도 일상을 잘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기록하여 <꽃을 던지고 싶다 그 이후> 정도의 책은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한 문장 정도는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소박하게 학자금 대출을 상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성폭력 피해자인 나는 이렇게 회복했고, 지금 이렇게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나를 지지해준 당신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하고 싶었다.

 

▲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너울 저, 르네상스, 2013) 표지와 책 이미지

 

비록 그 바람이 나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못했지만, 나의 삶을 지지해주었던 많은 독자분들 그리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던 사람들... 또 지금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많은 분들께 10년 후의 어느 날 여전히 견뎌내며 나는 ’살아있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도 또 그렇게 몇 달을 견뎌내었다.

 

무엇을 전해야 할 것인가? 나에게 어떤 문장이 남았을까? 어떤 말을 전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다른 피해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성폭력 피해를 먼저 경험하고 먼저 기록했던 내가 지금의 피해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지금도 그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어려운 물음표들이 남아있었다. 스스로에게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이 질문들은 10년 전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보다 더 어려운 숙제 같았다.

 

적어도 10년 전 글을 쓸 때, 10년 후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나보다 평온한 세상에서 살아내길 원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글을 쓰는 것도, 나 살아있어요 인사하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은 시기이기에, 나의 문장이 어찌 다가갈지 고민의 시간은 무거웠다. 무엇보다 지금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난 이젠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오만하거나, 라떼는 말이야 하는 꼰대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여전히 때때로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성폭력의 고통은 끝이 나지 않는다는 무서운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어떠한 말을 한다고 한들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진솔하게 그리고 짧게, 나는 살아있음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칼럼을 연재하고 동명의 책을 낸 후, 처음 몇 년간 나는 생존자로서 말하고,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백여 번의 강연을 했다. 피해자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또 모든 피해자가 고통 속에 살아가지는 않지만, 어떤 피해자는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 어떤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는 폭력적인 사회 문화와 관계에서 만들어짐을 이야기했다.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는 ’지지받지 못하고, 지지받을 수 없는 경험에서 비롯됨‘을 이야기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에게 어느 순간 뒤죽박죽했던 시간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어제 일 같이 생생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아주 옛날 우리가 동무들의 얼굴과 이름이 흐려지듯, 그 당시의 소중하다 여기던 추억이 명확하지 않듯, 학창시절 울고불고하게 만들었던 시험성적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듯, 그렇게 나의 기억들과 고통들이 흐려지는 시간을 만나면서 나는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과거의 시간을 견뎌내는 생존자들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줘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현재의 내 삶,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저 하루를 또 맞이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게 여겨졌다. 그 이후 10년을 기록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여러 고민들을 자연스레 떠나보내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성폭력을 기록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내가 원하고 필요해서가 아니라 굳이 애써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오롯한 나로 남겨지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 일어난 모든 고난과 시련이 성폭력 피해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음을, 나에게도 살아오면서 조금씩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사 지금의 나에게 또다시 성폭력 피해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전처럼 내 삶을 빼앗기거나 그 사건이 나를 온전히 고통 속에 놓이게 하지 못할 것임을 느낀다. 그 이후 살아온 십 년 간에도 한국 사회에서 숱한 성희롱과 추행을 겪었지만, ‘미친 XX’라고 욕지거리를 하고 툴툴 털어낼 힘이 나에게 있음을 믿는다.

 

▲ 태어난 날이 저주스러운 날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축하받는 날이 되었다. ©너울

 

그럼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누군가를 나에게 물을 것이다. 글쎄 인생은 백팔 번뇌라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억을해, 억울해 가슴 치며 우는 밤들은 사라졌지만.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가난이 나에게 더 상실감을 주지만. 그래도 더 이상 내가 살아있을 느끼기 위해 나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나를 놓이게 하지도 않는다.

 

하루하루 여전히 애쓰며 살아가지만,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나에게 쉽지만은 않지만, 길가에 피는 꽃이 그 자리에 머물며 누가 몰라줘도 애써 꽃을 피우고 꽃이 지는 순간을 맞이하듯 나는 삶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지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내가 성폭력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순간도 그저 보통의 나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회복의 과정을 경험하고 나의 삶이 거창해지지는 않았지만,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아침이면 일어나 직장생활을 하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이 삶이 결코 초라하거나 시시한 삶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렇게 나이를 먹고 과거의 피해경험보다 지금의 고통에 더 반응하며 나의 우주를 만들어가려고 살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갖고 싶었던 문장, 그리고 쓰고자 하는 문장은 사라졌지만 온전한 맘으로 당신께 전하고 싶다. 나의 마지막 문장을 전한다.

 

‘그렇게 애쓰고 애쓰며 달려온 끝엔 결국엔 그 동안 스스로에게 부정당하고 외면당했던, 여전히 꽃을 좋아하고 소주와 커피를 사랑하는(작가 소개글에 등장하는) 온전한 내가 있을 뿐이다.’

 

성폭력 피해 이전, 성폭력 피해 이후 그리고 회복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나였을 뿐이다. 그러니 당신, 당신의 우주가 전부임을 잊지 말자. 우리 그렇게 빛나게 견뎌내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훌륭하고 이유가 있기에, 당신이 어떠한 상황이든 당신은 틀리지 않다.

 

*덧붙여, 처음 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던 시간에도, 글을 쓰던 순간에도, 더 이상 성폭력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라고 선언하는 순간에도 한결같이 나를 지탱해주는 벗 다위와 자주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에 지면을 허락한 <일다>와 무엇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감사합니다.

 

 

남은 인생은요?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저자 성sung의 첫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아동기에 한국을 떠난 저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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