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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발언한 이후, 내가 겪은 집단적 괴롭힘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SNS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학교폭력’ 문제가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학교라는 장소에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청소년이 있는 곳이니, 당연하게도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도 있고, 그중에 페미니스트 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책을 읽거나 저널을 살펴보는 식으로 ‘성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일상 속에서 느껴온 ‘불편함’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모든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대부분 학생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묵인하고 생활한다. 자신의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이를 토로한 학생들에게 다가온 일들은, 썩 기꺼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겪은 일들이 그러했다.
‘페미니스트 학생’에 대한 남학생들의 집단적인 폭력
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한 학교폭력을 겪었다.
이 폭력의 이유에는 실체가 없었다. 아무도 왜 페미니스트가 나쁜지, 내가 페미니즘 발언을 한 것이 왜 괴롭힘의 마땅한 대상이 될 일인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했다. 폭력의 가해자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욕했기 때문에 그들도 페미니스트를 괴롭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은 고스란히 페미니스트 학생인 내가 받게 되었다.
나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 일은 내가 중학교 때 겪은, 3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학교폭력에 대해서 원만하게 대처할 자신이 없다.
나는 당시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많은 학생들이 사용하던 여성혐오 유행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 시작은 8명 정도 되는 남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큰소리로 욕설과 폭언을 한 것이었다. 이때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쓰러져서 우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 3개월간, 같은 학년의 거의 모든 남학생들이 나를 지나칠 때마다 욕설을 뱉었다. 학교 수업 중에 반 남학생들이 단체로 나를 향해 욕설을 한 적도 있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지나가는 남학생이 나를 바라보며 욕을 한 적도 있다. 복도를 지나가던 나의 등을 한 남학생이 발로 차서 내 교복에 발자국이 생긴 적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 여성혐오 발언에 문제 제기를 한 이후로 남학생들에게 집단적인 괴롭힘을 겪었지만, 학교는 나에게 참고 가만히 있으라 했다. (이미지: pixabay) |
학교는 피해학생에게 ‘가만히 있으라’ 했다
내가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3개월 동안, 교사와 다른 친구들은 내게 참으라고 했다. 내가 반응을 하니까 남학생들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말대로 했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나를 발로 차고 갈 때조차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음에도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담임교사에게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3번째 요청했을 때에야 학폭위가 열렸다. 담임교사는 내게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지금까지 일어났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날짜/시간/사람을 포함하여 적으라고 했다.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에 그렇게 상세한 내용을 적을 만큼의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하도 겪은 일들이 많아 종이 절반을 넘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학폭위는 방학 중에 열렸다. 친권자와 함께 방문한 학교는 덥고 조용했다. 꽤 큰 타원형 탁자가 방의 대부분을 채웠고 거기에 몇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질문 몇 가지를 던졌고 나는 그 질문에 최대한 똑바로 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내가 울면서 대답했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결과는 악몽과도 같았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고, 충분히 반성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런 처분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해자들은 내게 어떠한 사과의 말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일말의 반성하는 태도를 본 적이 없었다.
학폭위가 끝난 후, 내가 겪은 모든 폭력은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남은 반년 동안의 시간을 지난 3개월과 똑같이 보내야 했다. 남학생들은 여전히 복도를 걷는 나를 지나가며 욕설을 뱉었고, 나는 그들을 최선을 다해 무시하려 노력했다.
3년 전,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겪는 학교폭력에 대해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나는 내 피해 경험담을 SNS에 올렸고, 그 이야기가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나의 학교폭력 이야기가 기사화되고 난 후, 해당 지역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가해자들을 무시하고,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학폭위까지 열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해봤자 나만 더 실망하고 상처받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가진 생각(페미니즘)이 문제다?
내가 겪은 학교폭력이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겪는 학교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되었을 당시에도 많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이 겪은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중엔 언어폭력이나 간접적인 괴롭힘 말고도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례 중 공통점은, 피해자들이 들은 폭언에는 모두 페미니즘에 관한 혐오적인 표현이 많았다는 것이다.
과연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에 기반한 학교폭력을 겪은 페미니스트 학생들 중에서, 몇 명이나 알맞은 구제 조치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수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학교폭력의 경우, 피해자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 ‘다수’가 학교폭력의 원인이 피해자 때문이고,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며, 피해자가 변하기를 종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는 보호자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미 학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으로 인해 폭언을 당했으니, 보호자 또한 자신의 생각을 싫어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피해자는 최악의 경우 학교폭력과 함께 가정폭력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교사나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도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고, 결국 보호자에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는 도움을 요청하고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 자신에게 놓아진 상황을 견디는 것을 택하게 된다. 학교는 아직도 학교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학교는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 양성기관인가
사람은 계속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괴롭힘과 압박을 받았을 때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주변에서 ‘너의 생각’이 괴롭힘의 원인이라고 말한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생각을 탓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안 좋은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주 작은 괴롭힘과 험담조차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내가 그렇다. 나는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에 관련된 의제를 접하는 것이 껄끄럽다.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또 다시 비슷한 폭력을 접하게 될까 봐 지레 겁먹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페미니스트만이 겪는 문제만도 아닐 것이다. 페미니스트 뿐만 아니라 비건, 노동권, 퀴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청소년들이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지속적인 괴롭힘은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 탓하게 만들어서 결국 남들과 다른 의견을 꺼내기 힘든 사회를 만든다.
12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고, 학교폭력을 겪고, 수많은 다른 학교폭력 사례를 보며 느낀 것은 학교는 사람이 성장하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현재의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사용하면서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을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라면, 학교는 이대로 바뀌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것이 사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는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이것 하나는 모두에게 청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안에서 학교폭력을 겪는 학생의 고통을 무시하지 말고, 학생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학교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 학교 밖에 있어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긴 어렵다 한들 피해자의 경험 하나에, 관련된 기사나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다수의 횡포가 정당화되지 않고,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겪는 학교폭력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연속기고글 중에서, 이솔하 님이 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를 보완, 수정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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