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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연결되어 달라”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 단장 무토 루이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10년은 ‘피폭 후의 세계’를 살아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스스로의 인생 단계도 변하였고, 사고가 없었다면 있었을 시간을 잃어버린 채 다른 시간을 살아왔어요. 많은 원전 피해자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 단장인 무토 루이코(武藤類子) 씨다.

 

루이코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사고 반 년 후인 2011년 9월 19일, 도쿄에서 열린 <원전, 안녕히 집회>에서의 연설로 기억된다. 6만 명의 집회 참가자를 앞에 두고 ‘그 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이 떠안게 된 슬픔, 불안, 갈등, 분담에 대해 말하며 “우리는 지금, 조용히 분노를 불태우는 죽은 동북인들의 영혼입니다”, “우리와 연결되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듣고 있는 모두의 마음을 퍼담아 빛을 비춰주는 듯한 루이코 씨의 말에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 2011년 3월,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의 모습. ©페민


원전 사고 이후 10년…“피폭 후의 세계”

 

무토 루이코 씨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5킬로미터 떨어진 후쿠시마현 미하루마치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를 계기로 ‘여성들이 주도하는 탈원전 운동’에 가담해왔다.

 

2003년에는 사토야마에 ‘키라라’라는 작은 찻집을 열었고 인근 산에서 도토리와 산나물, 약초를 캐서 직접 만든 요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3.11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자연에서 나는 것은 입에 대지 않아요. 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답지만, 이전과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찻집은 2013년에 폐업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10년. 루이코 씨는 후쿠시마 주민들과 피난민의 인권과 건강을 지키고자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 도쿄전력과 수많은 협상과 항의 집회에 참가했다. 2012년부터는 도쿄전력 간부들을 형사 고소한 후쿠시마현 원전 고소단 단장으로 활약했다. 2015년에는 ‘원전 사고 피해자 단체 연락회’ 창립에도 관여했으며, 현재 ‘3.11 갑상선 어린이 기금’ 부대표이사로 있다.

 

그리고 올해 2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자신의 발언과 기록을 모아 책 『10년 후의 후쿠시마로부터 당신에게』를 출간했다.

 

‘부흥’ 내세우며 피해를 비가시화하는 일본 정부

 

“인생이 크게 달라진 피해자들이 있어요. 그럼 사회도 달라졌겠지 생각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부분도 많죠.” 루이코 씨는 지적한다.

 

“이렇게 큰 원전 사고를 경험했음에도, 현재 재검토되고 있는 에너지 기본계획의 전원 구성에 원자력발전이 들어가 있습니다. 서쪽 지역부터 원전 재가동도 시작되어, 지금은 오나가와, 도카이 제2원전,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까지 재가동을 위한 원자력 정책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이나 원자력 관련 기업은 피해 지역에서 자연에너지 발전으로 권리를 얻기 시작했고요.”

 

그렇다면, 우리 일반 소비자는? “사고 직후에는 ‘원전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분이 많았지만, ‘자립사회가 아닌 소비사회’라는 점도, 전력을 둘러싼 인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도쿄전력 간부들을 형사 고소한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 단장 무토 루이코(武藤類子) 씨.   ©촬영: Sato Maya

 

지난 10년간 국가도, 현도 원전 사고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피해를 비가시화하고, 피해자를 잘라내고, 방사선 방호를 대폭으로 축소하고는 ‘부흥’ ‘귀환’을 밀어붙여 왔다. 무토 루이코 씨는 새 책 『10년 후의 후쿠시마로부터 당신에게』에서 후쿠시마의 상황에 대해 “복잡하고 보이기 어렵게 된 현실”이라고 적었다.

 

“후쿠시마현은 원전이 ‘폐로’되었으니,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추진하며 태양광, 풍력발전 외에 목재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다섯 군데 정도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목재를 태우기로 되어 있죠. 또 고농도 오염지역인 이다테무라에서는 ‘삼림 제염(방사능 오염 제거)도 겸해서’라고 떠듭니다.”

 

“후쿠시마의 ‘부흥 가속화 프로젝트’ 안에 ‘이노베이션 코스트 구상’이 있는데, 이번엔 후쿠시마에 ‘국제교육 연구거점’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폐로나 제염에 관한 대학과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하고 민관 산학협력으로 피해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것인데요, 그 모델이 미국 워싱턴주의 핸포드(Hanford) 지역이에요. 그곳은 나가사키 원자폭탄 재료인 플루토늄이 정제되고, 냉전 하의 핵개발 과정에서 실험 삼아 주민에게 의도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확산시키거나 지하매설 방사성 폐액 누출 사고를 일으키는 등, 미국에서도 가장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입니다. 그곳이 민관 산학 연계를 통해 다양한 연구기관을 모이게 하여 발전했다는 거죠.”

 

루이코 씨는 국가가 “부흥이나 새로운 꿈, 희망을 제시하면서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식할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거기에는 피해자가 정말 원했던 부흥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원래의 마을로 되돌리고 싶다는 것이 시작이었으니까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처리수’라고 부름)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방침 역시, 해당 지역사회나 일본의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일다≫ 후쿠시마 10년…‘피해’를 지워나가는 국가에 맞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10년은 ‘피폭 후의 세계’를 살아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스스로의 인생 단계도 변하였고, 사고가 없었다면 있었을 시간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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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지구의 존속을 위해 세계시민으로서 연대해야

 

원전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와 도쿄전력에 있다. 하지만 루이코 씨는 “어린이들과 미래세대, 인류 이외에 무수한 생명체에 대한 가해 책임은 원전을 존속시켜온 우리에게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고선량 지역의 ‘부흥’에 어린이들이 동원되고 있다. “저는 일본이 아이들과 청년들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라고, 지난 10년간 계속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우리보다 현명하니까 올바른 정보가 있다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껏 싸우는 이유는? “저는 몇 번이고 반복해 제가 ‘원전 사고의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하고자 합니다. 한 명 한 명이 입은 피해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앞으로는 지구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는 많은 생명체의 거처이니, 어떻게 지구의 존속을 지키면서 에너지와 먹거리를 얻을까, 기후변화로 전 세계적으로 청년들이 연대하고 있듯이 세계시민의 차원에서 세계와 연결되어 다 같이 고민해나갔으면 합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이시다 키미에 님이 정리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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