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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지난해 11월 3일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거가 조작되었다’, ‘우편선거는 사기’라는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트럼트 전 대통령은 계속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다 SNS 영구 정지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그 음모론을 믿은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약 2주 남겨둔 1월 6일, 폭력을 휘두르며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총을 들고 국회의사당을 헤집고 다니며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벌인 이 폭동은, 결국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 일로 퇴임 일주일 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반란 선동의 책임을 묻는 이 탄핵안은 하원에서 찬성 232표, 반대 197표로 통과되었고, 상원에서도 찬성 57표, 반대 43표로 찬성이 높았지만, 67표(3분의2)를 채우지 못해 통과되지는 못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리즈 가버스 & 리사 코르테스 감독, 2020) 포스터   ©Amazon Prime

 

여전히 많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그리고 이전의 선거)가 민주당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왜 찰떡같이 이렇게 믿는 걸까? 아니,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 지도자들은 왜 이런 주장을 펼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걸까?

 

미국의 역사 속에서 흑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어떻게 투표권을 얻었고 또 어떻게 제한, 억압 받기 시작했는지 다루며 미국의 투표 시스템 문제점을 짚은 다큐멘터리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ALL IN: The Fight For Democracy 리즈 가버스 & 리사 코르테스 감독, 2020년)에 그 실마리가 있다.

 

다큐를 보고 나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세력의 선동이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하여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을 조장하고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탄압하려는 계략이라는 게 드러난다.

 

‘유권자 억압’ 비판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의 양보 연설

 

다큐멘터리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는 2018년 미국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약 5만표 차이(득표율 50.2% 대 48.8%)로 아쉽게 당선되지 못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Stacey Abrams)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조지아 주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의 선거 유세 모습  ©Amazon Prime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미국 남부에 위치한 조지아 주, 그러니까 ‘레드 스테이트’로 분류되는 공화당 우세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가 당선된다면 최초의 흑인 여성 조지아 주지사가 되는 만큼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의 출마는 화제였다. 그는 백인 중년 남성인 공화당 브라이언 켐프 후보를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영화 초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낙선된 후보자가 하는 양보(패배 인정) 연설(concession speech)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 양보 연설에서 하는 ‘아름다운 패배’에 관한 이야기들과 달리, 그는 “투표권/유권자 억압”을 거론하며 뼈있는 말을 남긴다. 이 연설은 “패배 인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못 박은 뒤, “양보는 어떤 행동이 옳고 진실하고 타당함을 인정하는 의미다. 양심과 믿음을 가진 여성으로서, 그렇게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주지사 후보로 선거를 뛰면서도 주 국무장관으로서 유권자 등록(미국에선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사전에 유권자 등록이 진행되어야 함) 명단을 관리하고 140만명의 유권자를 명단에서 삭제하도록 감독한 브라이언 켐프의 문제점과, 미국 사회의 투표권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왜 이렇게 날카로운 말들을 던졌을까? 그 맥락을 알아내기 위해 영화는 “투표권/유권자 억압 전략”의 역사를 짚어 올라간다.

 

군주제와 왕을 없애고 공화국을 만든 미국의 건국자들이 만든 헌법엔 ‘우리 국민’(We the people)이라는 말이 반복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우리 국민’의 국민은 지극히 한정적인 사람만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부동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이다. 그들만이 참정권을 가지고 공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투표도 할 수 있었다. 노예, 여성, 원주민, 청년에겐 그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투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고작 6%였다. 그들이 ‘국민’을 대표해 정무를 수행할 대통령 및 공직자를 선출했던 거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중 서프러제트 운동(여성참정권 운동) 장면   ©Amazon Prime


이후 재건 시대로 접어든 후, 1870년 수정헌법15조를 통해 “인종, 피부색, 이전의 상황과 관계없이” 흑인 및 비백인 남성이 참정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20년에야,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서프러제트 운동(여성 참정권 운동)의 결과로 여성도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정헌법 19조가 만들어졌다.

 

동등한 투표권에 대한 반발, 장벽 쌓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고, 흑인 남성도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모두가 반긴 건 아니다. 오히려 반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우리 국민’(We the people)이었던 사람이자 권력을 쥐고 있던 백인 중년 남성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너무 차별인 게 티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노예제로부터 해방된 지 오래 되지 않아 가난하고 정보에 취약한 흑인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은, 투표를 하려면 세금을 내라고 하거나 문해력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하거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의 투표권을 영구 박탈하는 등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 효과는 매우 강력했다. 67% 정도였던 흑인 유권자 등록율은 남부 지역에서 3%대로 뚝 떨어졌다. 선출되는 흑인 정치인의 수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시민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참정권에 대한 백인 남성들의 경계는 끔찍한 정도였다. ‘흑인은 투표를 할 수 없다’, ‘투표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공포정치도 더 심해졌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참전 군인이자 흑인이었던 메이시오 스나입스는 1946년 조지아 테일러 카운티에서 투표한 유일한 흑인이었다.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하면 험한 꼴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투표를 행사했다. 그리고 며칠 뒤, KKK단의 백인 남성이 메이시오 스나입스의 집을 찾아왔고 총을 쏴 살해했다. 흑인들에게 투표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그렇다고 흑인 시민 사회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시민권을 보장받기 위해,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냈다. 그 중 하나가 1965년 앨러배마 주의 셀마에서 일어났던 비폭력 행진 시위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주축으로 이뤄진 이 행진은 당시 셀마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짐 클라크 보안관이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을 막는 것에 대한 대항이자, 계속되어 온 투표권 투쟁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시위였다. 이들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무력으로 탄압을 시작했고 이 폭력적인 장면은 당시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중 1965년 흑인 유권자 억압에 저항해 비폭력 시위를 벌인 ‘셀마 행진’  ©Amazon Prime


이 일을 계기로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모든 미국 시민은 동등한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며 투표에서의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투표권법’에 서명한다.

 

흑인이 대통령까지 됐으니, 보호법은 필요 없다?

 

많은 흑인들의 피와 땀, 눈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투표권법’은 2013년 대법원 판결(지방행정구역인 카운티나 주정부가 투표 방법을 바꾸기 전, 연방정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 투표권법의 일부분을 위헌으로 판결함)로 무력화된다. 2013년은 무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재임 시절이었다. 유권자 억압을 위해 장벽을 세우던 이들은 흑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이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그걸 보호하는) 투표권법은 필요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 결과가 대법원 판결이다. 성차별과 ‘낙태죄’ 등에 반대하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했으며, 작년에 사망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9명의 대법관 중 ‘투표권법’ 무력화에 반대하는 4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판결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법이) 차별적인 투표 방법 변경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 사전승인제를 버리는 건, 비바람이 부는데 우산을 내던지는 것과 같다. ‘자신은 젖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에 차별이 분명히 있음에도, 자신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에 대한 보호가 없어도 된다고 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사실은 전체 대법관 9명 중 여성이었던 3명의 대법관이 모두 반대의견을 냈다는 거다.

 

법이 무력화되자, 일부 보수적인 주들은 재빨리 투표 방법을 바꾸고 장벽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유권자 ID법 등은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보호구역에 살아서 주소지가 명확하지 않은 원주민들 및 여러 이유로 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식ID를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서류가 있는 사람들의 유권자 등록을 가로막았다. 주소가 자주 바뀌는 가난한 사람들 또한 유권자 등록 응답을 회신하지 않았다거나, 이전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권자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 진보적 성향인 대학생 투표율을 높이지 않게, 대학 내 투표소를 없애거나 유권자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도 유권자 탄압 중 하나다.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중  ©Amazon Prime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주지사 선거를 통해, 이런 유권자 억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직접 체험했다. 그렇기에 그는 선거 이후 유권자 운동에 힘을 쏟았다. 조직을 꾸려 지역 주민들에게 투표의 중요성을 알렸고, 어떻게 유권자 등록을 하고 이후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알렸다. 그는 투표가 민주주의 핵심이고 미래라는 걸 강조한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영화가 공개되고 난 뒤의 일이라 이 다큐에 담겨있진 않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조지아 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조지아 주는 접전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승리는 중요한 의미였다. 그 뿐만 아니다. 대선이 끝난 후 치러진 조지아 주 상원의원 선거 결선투표에서 2명 모두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전엔 2명 모두 공화당이었던 만큼 크나큰 성과였다. 또한 이로써 민주당은 하원뿐만 아니라 상원에서도 과반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하는 결과를 얻어, 바이든 정부가 무리 없이 항해를 시작하는데 큰 발판이 되었다.

 

이 승리의 힘이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와, 그와 함께 유권자 운동을 한 많은 활동가들에게 있다는 것엔 이견이 없을 정도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의 유권자 운동은 주목을 받았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이제 또 어떤 도전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유권자 운동을 통해 유권자 억압에 맞서는 이들에 대해 오히려 ‘사기 선거’라고 선동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후에도 계속 그런 주장을 펼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투표권을 둘러싼 투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서 조 바이든의 대선 승리와 민주당의 상원의원 선거 승리를 이끈 주역으로 꼽히는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중.   ©Amazon Prime


한국 시민들이 보기엔 유권자 운동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미국 선거제도 너무 구리네’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국 사회는 소수자를 배제, 차별하지 않는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을까? 투표장까지 가기 어렵거나 투표장에서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과 환자들의 참정권은? 정보 접근권이 낮은 이주민의 참정권은? 투표소 부족으로 우편투표, 전자투표를 요구하고 있는 재외국민 참정권은? 자신의 현재 ‘신분’을 증명할 수 없거나 그 과정이 어렵고 불편한 트랜스젠더, 홈리스 등의 참정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정치인은 누구일까?

 

영화에서 특히 기억이 남는 장면이 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지역의 교회부터 퀴어퍼레이드, 락페스티벌, 코믹콘까지 찾아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다. 유권자 운동을 위해 직접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고 내용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들은 아는 사람만 찾아가요. 그건 지역사회의 변화하는 요구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선거철이 되면 매번 큰 교회에 찾아가서 인사하고 큰 집단과 세력들의 말만 따라 하는 정치인, 시장에 찾아가서 어묵 먹는 ‘서민’ 퍼포먼스나 하는 정치인 말고, 지역사회의 변화하는 요구에 적응하는 정치인, 그동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을 찾아가고 이야기를 듣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부산과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관람을 권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아마존 프라임에서 볼 수 있다. (박주연)

 

※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에이바 듀버네이 감독, 2016): 왜 많은 흑인들이 범죄자가 되고 감옥에 갇히는지, 그것이 인종차별과 어떻게 엮어있는지 추적한다.

 

극영화 <셀마>(에이바 두버네이 감독, 2014): 셀마의 비폭력 시위와 투표권 투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극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미미 레더 감독, 2018):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젊은 시절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고 이후 어떤 일을 했으며, 미국의 성차별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룬다.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벳시 웨스트, 줄리 코헨 감독, 2019):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많은 여성들이 롤모델로 꼽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지난 삶과 현재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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