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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에 나, 가요!

[극장 앞에서 만나] 랩 멜로디 위의 영화 <위 아 40>, <나가요>

 

영화에 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영화’를 쓰는 일, 즉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여러 번 해보았지만 영화에 ‘관해’ 쓰는 일은 더 낯설고 어렵다. 너무 좋아하니까.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을 많이도 하고 다닌다. 너무 좋아하니까.

▲ 영화 <위 아 40>(The 40-Year-Old Version, 라다 블랭크 감독, 2020) 공식트레일러 중  ©Netflix

무슨 영화부터 얘기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비트 소리와 함께 한 영화가 떠올랐다. <위 아 40>(The 40-Year-Old Version, 2020년) 이 영화는 라다 블랭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 이런 영광스러운 사실 전달이 다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 마디로 재치가 넘친다. 대사도 재밌고, 캐릭터도 재밌고, 시종일관 핸드헬드 기법으로 까불까불 촬영을 하지만 멀미가 나지 않으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다른 화면비의 쇼트들까지 재치의 뷔페다. 물론 그냥 장난만 치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 ‘라다’는 할렘가에 사는 연극 극작가이고, 고등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고 있으며, 40살을 앞두고 있다. 30살에는 세상의 조명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수강생들의 디스(disrespect, 무시)를 받고 있다. 극을 올리려면 ‘유색인종 불행 포르노’를 원하는 백인 연출가 비위를 맞춰야 할 판이다. 라다는 홧김에 그 백인 연출가의 목을 조르고, 상황은 더 엉망이 된다. 나는 왜 이러지 자책하는 중간에 어디선가 비트가 들려온다. 거울 앞으로 가 홀린 듯이 랩을 하는데, 젠장. 완전 잘한다. 나만 놀란 줄 알았는데 본인도 놀란다. 놀라서 카메라까지 본다?

 

라다 블랭크는 사실 주인공이자, 이 영화의 감독이고 배우로서 이 찌질한 상황을 신선하고 영리하게 보여준다. 다른 영화들이 흔히 관객을 앉히지 않는 자리로 감독은 우리를 초대한다. 처음에는 통상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 밖에서 라다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영화상 첫 번째 랩을 멋지게 마치고 나서, ‘너도 봤지?’ 싶은 느낌으로 카메라를 슥 보는데, 이때부터 혼란스럽다. 라다와 내가 은밀한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은 관객을 영화 안으로 쑥 끌어당긴다. 이제 관객은 라다가 랩을 끝장나게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것을 알고, 마치 영화 속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친구처럼 응원하게 된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이 영화는 중간 중간에 할렘가 주민들, 라다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영상이 인터뷰처럼 작은 화면으로 나온다. 인물들의 시선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인터뷰 영상에서처럼 카메라 살짝 위를 보고 있으며, 마치 라다가 이것을 찍고 있는 것처럼 “거봐 안 된다고 했지?” 같은 라다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한다. 심지어 이 영상 속 할렘가 주민 중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영상에서 관객은 그냥 라다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카메라 앞도 아니고 카메라 뒤에 있는 라다가. 근데 실제로 라다는 연출로서 카메라 뒤에 있기도 하니... 라다도 어디에나 있고, 관객도 어디에나 있게 만드는 영화다.

 

그러니까 우리는 라다에 대해서, 할렘가에 대해서, 라다가 목을 졸랐던 백인 연출가처럼 팔짱 끼고 동떨어져서 볼 수가 없다. 잘난 체하면서 이 할렘가 유색인 여성 작가의 삶과 현실 어쩌고 얘기하기에는 우리는 라다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사고도 치고, 백인 남자 엉덩이에 영감을 받아 랩을 쓰기도 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해 힘겨워하며, 학생들에게는 핀잔과 추파를 번갈아 받고, 옛날에는 반짝거렸었는데 그게 진짜 ‘반짝’이었고, 랩을 잘하는 라다.  

▲ 영화 <위 아 40>(The 40-Year-Old Version, 라다 블랭크 감독, 2020) 스틸컷   ©Netflix

라다가 프로듀서 D와 대화하며 엄마의 그림들을 회상할 때 작은 화면비로 엄마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인서트(insert)도 시점샷(p.o.v, point of view)도 아닌 마치 자료화면의 격으로 오직 한 쇼트에 한 그림만이 사진처럼 나온다. 그건 라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라다를 ‘통해서’ 그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그림을 보게 된다. ‘떠난 엄마를 기억하는 딸을 바라보는’ 위치가 아니라 ‘기억하는’ 위치로 관객을 부른다.

 

보통 영화 속 인서트와 시점샷은 영상으로, 시간성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인서트와 시점샷을 이용해 그 그림을 보았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이 없는 그 그림 이미지 자체를 공유한다. 누군가의 과거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이미지 덩어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엄마에 관한 랩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라다 효자네’하고 목걸이를 걸어주는 위치에 갈 수 없다.

 

라다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몽타주 씬에서 종종 라다의 오빠의 음성메시지가 보이스 오버로 들린다. 내용은 떠난 엄마의 짐 정리에 관한 내용이다. 이 역시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출퇴근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라다가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관객이 체험하게 한다.

 

<위 아 40>의 원제는 The Forty year old version이다. 2020년, 코로나를 맞으면서 나의 가장 큰 수입원인 공연이 확연히 줄었다. 올해로 공연 10년 차, 어감이 주는 근사한 경력직 냄새가 무색하게 한 달째 집에만 있다. 음원은 발매해도 늘 적자고, 아니다 아주 차곡차곡 천천히 앨범 위의 먼지처럼 쌓여 7,8년 뒤 쯤이면 흑자가 될 거다. 다만 그 7,8년 동안 내가 밥도 엄청 많이 먹을 거고 샴푸바도 사야 하고 전기세도 내야하고 월세도 내야할 뿐. 그렇다 보니 그 7,8년 뒤가 걱정이다. 7,8년 전에는? 30대를 걱정했던 거 같다. ‘이렇게 모아서 쏟아붓는 식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살면, 입에 풀칠은 어떻게 하지?’ 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40살 버전의 라다를 체험하고 난 후, 그냥 미래 또한 나의 한 버전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고민은 여전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조금 줄어든다. 두려움은 때로는 발전적 사고의 회로를 막고 불안감만 증폭시켜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 라다는 40살 무렵에 비트를 다시 만나 랩을 하게 된다. 상황이 나아진 건 없다. 그냥 랩을 하게 됐을 뿐. 그런데 2시간 내내 흔들리던 카메라가 드디어 고정된다. 그리고 또 다른 화면의 변화는 너무 강한 스포일러여서 꾹 참겠다.

▲ 단편영화 <나가요: ながよ>(차정윤 감독, 2016) 스틸컷  

<위 아 40>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차정윤 감독의 단편영화 <나가요: ながよ>(2016)가 떠오른다. 두드러지는 두 영화의 공통점은 ‘랩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 <나가요>는 노래방에서 성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다현(문혜인 역)의 이야기다. 다현 역시 라다처럼 랩을 좋아하는데 그 모습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대낮의 골목길, 장을 봐 집으로 돌아가는 다현의 뒷모습 쇼트에서 갑자기 다현이 랩을 한다. 그것도 장 본 식재료에 관한 지극히 일상적이고 별 메시지 없는 랩을 말이다. 이 시답잖아 보일 수 있는 모습이 <나가요> 영화 내내 비추던 다현의 모습 중 가장 밝았으며, 희망찼다.

 

다현은 관객을 위해 랩하지 않는다. 그냥 정말 자기가 하고 싶으니까 아무 가사나 툭 내뱉은 랩은 다현의 편안한 복장과도 착 붙어 영화 속 현실 어디에도 없는 자유로움을 선사해 준다. 옷차림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다 다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쏟아지는 일터에서 다현은 결국 랩을 한다.

 

<위 아 40>가 관객을 라다의 내밀한 친구로, 때로는 라다 자체로, 라다의 머릿속 의식과 무의식까지 공유하며 자유자재로 위치시키는 재간을 부리는 반면 <나가요>는 거리둠으로써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는 온전히 <나가요>의 연출 방법이라기보다는 문혜인 배우의 작동에 더 가깝다. 문혜인 배우는 종종 맡은 캐릭터를 관객이 쉽게 좋아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쉽게 짐작하거나 쉽게 연민하지도 못하게 거리를 둔다. 측은지심과 타자화는 어떤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위 아 40> 속 백인 연출가처럼 할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문혜인 배우가 가진 거리둠의 힘은 다른 영화에서도 발한다. <한낮의 우리>의 나레이터 모델 ‘진주’, <에듀케이션>의 ‘성희’,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혜영’ 모두 쉽게 다가갈 수 없다. 관객이 쉽게 이입하고 싶어 하는 ‘착한 주인공’이 아니다. 근데 ‘나쁜 악당’도 아니다. 그냥 골목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한테 나는 쉽게 다가가서 아이고 그랬어요 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럴 수 있겠는가. 다가가려고 하면 밀어낸다. 거기서 보세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거기서. 보고 나면 평가할 수 없다. 원래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 아닌가.

 

<나가요>에서 다현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몽타주로 보이며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쇼트들이 있다. 이 음악은 랩을 좋아하는 다현이 들을 법한 음악은 절대 아니었고,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끌어 올리는, 그래서 다현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슬픈, 안타까운 등의 형용사를 붙이게 만드는 음악이었는데 오히려 그 음악이 적절한 거리두기를 방해하는 듯했다.

▲ 영화 <나가요: ながよ>(차정윤 감독, 2016) 스틸컷

나는 영화가 러닝타임이 끝나고 난 후에 삶에서 상영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영화가 삶을 바꾸고 계속 그 영화와 삶이 다르게 관계 맺는 그 과정에서 나는 영화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가요>를 통해 문혜인 배우는 ‘랩’을 만났고, 이후 비트메이킹에도 흥미를 갖고 작업 중이시다. ‘문혜인 배우전’ 모더레이터를 준비하며 문혜인 배우의 사운드클라우드를 찾아 들었다가 하마터면 라다처럼 랩을 해버릴 뻔했다. 그래 맞아 나 힙합 좋아했었지.

 

나의 10대는 영화와 힙합이라는 두 바퀴 위에 안장을 얹고 위태롭게 달렸다. 그 두 바퀴가 아니었다면 나는 현실로부터 미래로 달려 나올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근데 언젠가부터 힙합이라는 바퀴는 10바퀴를 돌면 9번은 삐걱였고, 나는 그 바퀴를 음악이라는 좀 더 포괄적이고 큰 바퀴로 갈아끼웠다. 그리고 그 음악에는 힙합이 없었다. 힙합을 내 삶에 들여놓으려면 나는 한겨울에 비키니를 입고 비싼 차 앞에서 춤을 추든지, 자식을 키우다가 등골이 빠지는 어머니가 되어 사후약방문 같은 호강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돈 없는 남자 우습게 생각하는 ‘년’이 되어야 하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되기 싫어 무의식적으로 남성의 위치에 나를 놓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삐걱이는 소리는 더 심하게 들렸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고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힙합의 세계를 접하게 됐다. 올블랙, 무표정으로 마치 자객처럼 “할만큼 했다”는 최삼. 무대를 방방 뛰며 생리통에 대해 랩(내꺼야)하는 슬릭. “칼을 숨긴 채 택시”를 탄 “알리바이 없는 여고생”(Alibi) 스월비. 마더퍼커가 없는 힙합 세계를 발견한 순간, 늦었다는 미안함과, 구조를 비트는 쾌감을 번갈아 느끼며 그루브를 탔다. 관객으로서 앉을 자리가 드디어 생긴 기분이었다.

 

사실 힙합은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백인이 원하는 흑인 극을 써야 하는 유색인 여성 극작가 라다, 그리고 성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성혐오에 치이는 다현 옆에서 출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라다는 랩을 하면서 “40살 버전”의 라다로 거듭나고, 다현은 직원들이 다현을 쫓아내도, 심지어 화면이 꺼져도 끝까지 랩을 한다. 그리고 <위 아 40>는 라다를 아주 가깝게, <나가요>는 다현과 적당한 거리를 두게 하면서 이 두 래퍼를 감히 연민할 수 없게 만든다.

 

‘나가요’는 성노동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이다. 헌데 이 글자들 사이에 스페이스 바 한 번만 톡 누르면, 힙합에서 곡을 마무리할 때 래퍼들이 종종 외치는 “I’m out”, ‘나 가요’가 된다. 래퍼들은 종종 저 말을 하고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위 아 40>에서 라다도 그렇게 떨어뜨렸다. 그때 나는 소리 삐익-쿵. 그 소리는 인종차별, 성차별 문화의 심정지 소리와도 같을 것이다. I’m out.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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