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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님에게 보내는 편지

<책과 산책하기> 다시, 『소금꽃 나무』를 읽다


2020년 마지막 날 집어든 책은 『소금꽃 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였다. 2007년 5월에 1판 1쇄가 찍혀서 나온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김진숙 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소금꽃 나무』(김진숙 저, 후마니타스, 2007) 초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고용유지 없는 투기자본 매각을 반대하고, 자신의 복직을 요구하며 2020년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있다.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김진숙 님에게


안녕하세요. 김진숙 님

저는 숲이아 라고 해요. 숲이아는 숲을 좋아해서 지은 별칭이에요.


이 편지는 김진숙 님이 2007년에 쓰신 『소금꽃 나무』에 대한 응답이에요. 


진숙 님이 살아온 궤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1986년 7월 해고 통보를 받기까지.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용접공으로 일을 하며 무사히 퇴근 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퇴근할 땐 오늘도 살아냈구나 안도하는 나날을 보냈고. 일하던 배에서 난 사고를 목격하고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주변에서 노동조합 대의원 후보로 나가보라 해도 뿌리치던 출마 권유를 받아들이고. 출마할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던 대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고. 대의원 대회가 끝나고 기본급이 13만 원 남짓한 시절 10만 원이 들어 있는 돈 봉투를 받았다가 수십 명 조합원의 목숨값인 그 돈을 돌려주고. 어용노조의 비리를 알게 되고. 비리가 폭로되고 부서이동 명령을 받고, 거부하고, 불복종으로 해고되고….


35년 전, 해고통지서를 받기까지 여정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한진중공업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일을 하다가 죽음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노동운동. 그 길에서 마주한 노동자의 죽음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박창수, 김주익, 배달호, 조수원, 김동윤 열사를 보내고 쓰셨던 추모사를 읽으며, 그 이름이 불렸을 추모제가 떠올랐어요. 이 책에 담기지 않은 추모사들이 얼마나 더 많았을지 생각했죠.


1995년 동래봉생병원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 20대 여성조합원들이 병원 관리자들에게 머리채를 잡아 짓밟히는 현장에서 그들을 빼내는 일을 했다가 구속되었을 때. 그때 쓰신 항소이유서를 소리내어 읽었어요. 올곧고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제 삶을 반추해보았어요.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만들고, ‘포크레인’을 만들고, TV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빵을 만들고, 밥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신발을 만들고, 김을 만들고, 우유를 만들고, 시계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술을 만들고, 술깨는 약을 만들고…….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들이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도 그들이다.” -‘책을 내며’ 중에서. p.9


머릿속에선 노동자들의 죽음 행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YH무역에서 일을 하며 노조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김경숙 열사가 떠올랐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과로사로 쓰러져간 택배, 배달 노동자들 생각도 났어요. 이번 겨울에 고국 땅 캄보디아로 돌아가기 3주 전, 한국 땅에서 농장일을 하며 제대로 몸을 누일 집이 없이 살아가다가 한파에 비닐 하우스에서 죽음을 맞이한 속헹 님도 떠올랐어요.


세상을 만들어 온 노동자. 죽음으로 말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이 세상이 이만큼 바뀌어 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진숙 님은 노동자들이 단 하루도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고 하셨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주인이지만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싸우고, 쫒기고, 잡혀가고, 쫒겨나고, 그리고 죽어 가는”(p.9-10)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2020년 10월 13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금속노조 주최로 열린 “해고자 김진숙을 복직시켜라” 기자회견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 모습. (출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 편에서는 이 땅에 단단하게 서서 일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들어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자식들이 커서 뭐가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고, 아들은 “목사가 됐시머 싶어예.” 하지만 “딸아요? 딸아는 생각 안 해봤는데…….”라는 대답을 듣고는 남아선호사상에 대해 볼펜을 딸각 소리나게 끄고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시위를 한 대목. 유머가 녹아있는 부분들에서 웃으면서 글을 읽었죠.


“같이 살아야 된다”는 메시지


『소금꽃 나무』 첫 장인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서는 20년 만에 복직하는 동료들을 보내고 남겨진 한 사람이 되는 경험이 담긴 글, ‘20년 만의 복직’을 시작으로 김진숙 님이 노동자로 살아온 역사가 담겨 있죠. 진숙 님이 안고 있던 부채감은 그 동안 얼마나 해소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내가 곧 그들이라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도 치욕스럽지도 않았다.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 내가 달라져야 그들이 달라진다는 생각.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변화해야 내가 딛고 선 땅은 변화한다는 생각. 눈물은 곧 다짐이 되었고 가슴 벅찬 환희가 되었다.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그 시절의 이력서’ 중에서. p.48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아졌다고 해요. 누군가는 ‘조용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칭했지요.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비정규직, 서비스업, 돌봄노동 분야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더 많이 직장을 잃고 있어요. 전 지구적 기후위기까지 생각하면 정말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나요. 


이런 가운데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지금도 한진중공업에 복직을 요구하는 김진숙 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금꽃 나무』를 읽으며 1월 한 달 동안 제 마음 속에 군불이 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를 좋아해서 다음 생에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죠. 저도 다음 생에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종종 기도해요. 기온이 올라가는 지구에서 나무로 사는 것이 지구에 더 이로울 것 같기 때문이지요.


김진숙 님의 복직을 요구하는 단식에 함께하는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 (출처: 전국여성노조)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몫에 대해 생각해요. 조합원 대부분이 스물을 갓 넘은 여성이었던 동래봉생병원 노조에 연대하고 3자 개입,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후 쓰셨지요, “약자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라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항소이유서’, p.274)이라고요.


위기의 상황에 고통은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먼저 찾아오는 듯이 보여요.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하는 시기이구나. 지금 위기가 닥쳐온 이 시기가 어쩌면 더 단단하게 연대할 수 있는, 더 넓은 연대망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을 하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일을 그만둔 친구, 일을 하던 요가원이 문을 닫아 그만둬진 친구, 주5일 일하는 줄 알고 5일을 꼬박 나간 전 직장에서 계약서엔 주4일로 되어 있는 걸 최근에 확인했던 친구들에게 『소금꽃 나무』를 읽어보라고 추천해야겠어요.


35년 동안 해고노동자로 살아온 관록, 이 책에는 담겨있지 않은 2007년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더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걸어오며 점점들이 모여 선을 만들고 있으시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진숙 님의 희망 뚜벅이를 지켜보고, 지지하고, 동참하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도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같이 살기 위해’, 제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봐요. 파산, 개인회생 위기에 처한 엄마, 아빠와 연대하는 것, 친구들에게 연락해 종종 안부를 묻는 것, 아픈 친구가 생기면 비상연락망을 돌리는 것, 친구들을 불러 밥 한 끼를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런 일들이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월 16일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등의 협력으로 진행된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하는 라이브 [내가 싸우듯이]> 중 (출처: https://youtu.be/z5IZk0-cTIk)


“길은 걷는 만큼 줄어든다.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예전의 우리는 이미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오래된 미래’ 중에서. p.141


나무는 모여 숲을 이루지요.

김진숙 님의 소금꽃 행진에 연대할게요.

함께 숲이 될게요.


존경을 담아, 숲이아 드림

2021년 1월 30일


[필자 소개: 숲이아. 시들지 않는 책의 숲, 책방에서 일을 하다가 얼마 전 그만두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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