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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소노동자 집단해고가 이렇게 쉽나요?

LG트윈타워 80여명의 청소노동자들 “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2020년을 한 달 남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럽게 집단해고 소식이 전해졌다. 트윈타워 건물을 관리하는 LG의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현재 노동자들이 속한 청소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는 거다. 그런데 지수아이앤씨는 LG 구광모 회장의 고모 구미정, 구훤미 씨가 각각 50%씩 100% 지분을 지니고 있는 회사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까지 일해 온 청소노동자들에게, 지수아이앤씨는 말없이 사직서를 내밀었다. 올해 청소 상태가 미흡했고, 따라서 재계약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80여명의 노동자들은 종이 한 장으로 한 순간에 집단해고를 당하게 됐다.


용역업체는 ‘청소 상태 미흡’을 계약 해지 사유로 언급했지만,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이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한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2019년 10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수년 간 ‘갑질’을 일삼아 온 관리자의 행태와 ‘임금 꺾기’, 과도한 초과노동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LG트윈타워에서 노조의 출입을 막는 용역과 대치중인 청소노동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인간답게 일하고 싶어서


“우리가 정말 생각을 하면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어요. 왜냐하면, 청소가 백 프로라는 게 없어요. 하고 나도 자국이 마르면 또 얼룩이 진 게 보이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어디 어디가 잘못됐다고 한 소리 하고. 먼지 하나라도 있으면 ‘기계 끌고 몇 층으로 오세요!’ 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하라고 수도 없이 갑질을 해대고….” (이순예)


청소노동자들은 ‘쥐 죽은 듯이’ 살았다고 했다. 감독의 눈 밖에 나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몇 배의 일감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인격 모독적인 욕설을 들어도, 업무 외적인 지시를 받아도 부당하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


‘임금 꺾기’도 문제였다. ‘임금 꺾기’란, 초과 노동 수당이나 연장 노동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여기는 쉬는 시간을 30분 더 주고 근무시간을 일곱 시간 반으로 잡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간을 꺾어서 토요일날 격주로 일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노조를 하고 보니까. 난 그게 되게 궁금했거든. 내가 계약서 쓸 때, 왜 일곱 시간 반을 주느냐, 우리가 분명히 여덟 시간을 일하는데. 이렇게 물어봤는데 그랬더니 그냥 일곱 시간 반을 준대요. 거기에 더 이상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하는 대로 따라서 했었고…” (최명자)


트윈타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 년간 이어진 감독들의 ‘갑질’과 비정규직 차별에 “더 이상 이렇게 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일터와 일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사랑하는 만큼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의도행 새벽 버스 안에서 탑승자들이 공유한 것


“청소 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출근할 때 시간이 거의 똑같으니까. 여의도 쪽에 사람들은 같은 버스를 주로 타게 돼요. 저기 증권거래소에 우리보다 노조가 먼저 생겼어요. 그러면 버스 타고 출근하면서, 그런 데서 정보를 얻는 거야.”


노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대한 최명자 조합원의 답변을 들으며,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故 노회찬 전 의원의 유명한 연설이 떠올랐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탑승해서 비슷한 곳에서 하차하는 특이한 버스.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5시 반이면 일터에 도착해, ‘없는 듯이’ 일과 시간 내내 일하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지금은 ‘청소노동자들이 주로 타는 출근 버스’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온통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여의도에도,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버스 좌석만 공유하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은 여의도환승센터로 향하는 출근 버스에 나란히 앉아 유대감을 나누었다. 그렇게 몇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2019년 가을 무렵의 일이다.


“아무리 우리가 외쳐도 들어주지도 않고. 나만 바보 같고. 그러던 찰나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놈의 회사는, 이렇게 식구가 많은데 왜 노조를 안 하지?’ 싶었어. 그랬더니 지금은 나간 선배가 ‘여기는 노조를 못 하게 되어 있어’ 하더라고요. 그런 줄 알고 한 8년을 지냈죠. 작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당시 같은 조였던 동료 하나가, 누가 들을까 내 옆으로 붙어서는 ‘진숙 씨, 우리 노조 한 번 만들어 볼까?’ 그러더라고. 얼마나 내가 기다렸던 말인지! (웃음) 그래서 합시다. 했지요. 여기서 이야기하면 들킬까 봐, 저기 국회 앞에 여의도공원까지 가가지고 좌담회를 했지. 용기를 내서 모여서 한 번에 터뜨린 거예요.” (안진숙)


생계가 걸린 일자리를 잃을까, 지금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일하게 될까 하는 우려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마음 속으로 노조 결성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을 설명하는 카드뉴스 중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우리가 참고 참다가, 그래 이판사판이다. 노조 한 번 해보자, 그러면서 자유를 얻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투쟁을 하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우린 더 바라는 것도 없고, ‘갑질’하는 감독 교체해라, 최저임금보다 생활임금으로 조금만 더 올려 달라 그랬더니 60원을 올려 준대요. LG가 어디서는 120억원을 기금으로 냈다고 그러는데. 지금에 와서는 60원이고 뭐고 다 날아가고 없어요.” (이순예)


그나마 회사가 인상하겠다고 하던 60원마저 날아갔다고 하는 이유는, 지난 11월 26일 지수아이앤씨가 전원 계약 해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모아 놓고… 우리가 이렇게 올해 청소가 미흡해서 계약을 못 땄다. 다른 업체로 넘어가게 됐다. 이러면서 개인 면담을 할 것이다. 면담을 하면서 무슨 혜택이 있을 것이다. 은근히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순예)


LG트윈타워를 관리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청소 용역업체를 변경한다고 했고, 그로 인해 청소노동자들의 계약도 해지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상황이 진행된다면 오는 12월 31일 조합원들은 한 번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2011년에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 170명이 용역업체 변경을 핑계로 집단해고 되는 사건이 있었다. 10년 전과 동일하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취약한 간접고용 상황은 노조를 파괴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개인 면담을 하는데,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하셨네 뭐네… 우리 위해주는 척 하면서. 그런데 내가 알기로 위로금이라는 것은, 다 똑같이 줘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게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사무실로 오라는 거야. 나한테는 5백을 준다고 했어요. 우리 순예씨 고생한 거 다 아니까, 이 돈 주는 거 나만 알고 있으니까 도장을 찍으래요. 그래서 나는 절대 못 한다고 그랬더니, 오늘 이 시간에 안 하면 5백 날아간다고. 나 이거 안 받아도 좋아요,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도 절대 안 올 겁니다, 하고 사무실을 나왔지. 그러더니 해고 통지를 하더라고.” (이순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크리스마스 집회. 시민들이 보내준 선물과 함께 진행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조 만들었다고 퇴출? 원청 LG그룹에 책임 묻는다


여성 노동자들은 집단해고에 맞서기 위해 12월 16일부터 무기한 파업과 로비 농성을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밤이면 영하의 온도로 내려가는 차가운 바닥에서 종일 농성을 하고 있다. 투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일이란 나에게 삶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죠. 일을 함으로 인해서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거야. 그게 삶이죠. 살아내는 거예요.” (최명자)


“저 같으면, 이제 3시 반에 일어나서 4시 10분에 첫 차를 타고 출근해요. 여기는 워낙에 일이 바빠서 쉴 시간이 없어요. 쉬는 시간이 한 시간이니까, 밥 먹고 양치질하고 그러면 쉬는 시간이 없지요. 바로 올라가서 또 일하고. 네 시에 퇴근해서 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아파트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요. 요새는 해가 일찍 지니까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럼 저한테 칭찬을 해요. 안진숙이 대단하다. 세 시 반에 일어나서 지금까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이 시간까지 일 하고. 이러고 사는 거 참 대단하다.(웃음)” (안진숙)


청소노동자들은 일이 ‘삶’이라고 했다. 사람답게 살고자 목소리 내는 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하던 소장과 감독들 앞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었던 투쟁의 과정들이 즐겁다고도 했다.


사실 이들의 농성 투쟁은 처음이 아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10월부터 트윈타워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청업체인 LG는 임금 인상도, 처우 개선 약속이 아닌 ‘해고 통보’라는 답을 내놓았다. 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나는 이제 내년이 65세니까, 한 해만 더 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65세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 해고를 한다니까 벙벙해진 거야.” (이순예)


“그냥 몸이 붕 뜬 느낌이에요. 어리둥절하더라고요. 여기 동료들하고 1년이래도 같이 여기서 일하고 싶고. 그런데 하루아침에… 얼굴도 안 보면 잊어지지. 멀어지잖아요. 그런 게 너무 서운하고 그렇더라고요. 우리 남편이 ‘자네, 몇 살까지 거기 다닐 건가?’ 해요. 새벽에 출근하는 거 보면 마음이 안 좋다고. 이번에 해고통지서 받았다고 하니까 잘됐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노조를 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까, ‘우리 노조 해서 정년 70살까지 끌어낼 거야.’ 그랬죠. 주말에 집에 들어가니까, ‘이왕에 시작한 거니까 열심히 해.’ 그러더라고. 우리 딸도 ‘엄마, 오늘은 이기고 와야 해’ 하고. 식구들도 기를 주니까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안진숙)


원청 LG에서 청소노동자 집단해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점심 시간, 직원들 대상으로 로비 선전전을 벌이는 청소노동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투쟁은 1년을 훌쩍 넘겼고, 로비 농성도 3주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눈빛에는 힘이 있다. 맡은 일을 성실히 마치고 귀가하는 길, 스스로에게 던지는 칭찬의 한 마디. 투쟁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지지하겠다는 가족들의 한 마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기겠다는 다짐의 한 마디. 이 한 마디들이 모여 트윈타워 노동자들은 ‘삶’을 이어간다.


파업 농성에 시민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약칭 LG트윈타워 공대위)에는 69개 단위가 참여하고 있다. 16일부터 시작한 ‘집단해고 철회 서명운동’은 1만5천여명이 넘게 참여했다.


28일 현재, LG는 더 강하게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사옥 출입문을 봉쇄하고, 문마다 용역들을 배치하여 노조 조합원과 산별 간부의 출입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집단 해고를 예고한 12월 31일이 눈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해고에 대해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LG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많은 목소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이들의 투쟁은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겠다는 여성 노동자들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의 림보 님과, 청년여성노동 기록 프로젝트 ‘소란’의 태린 님이 함께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태린님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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