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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폐업’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좇다 

<회사가 사라졌다>를 쓴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인터뷰



1999년 만들어진 성진씨에스는 코오롱 계열사인 직물 제조업체 코오롱세이렌(이후 현 코오롱글로텍으로 병합)의 사내하도급 업체로 시작했다. 초창기만 해도 550%였던 상여금은 점점 줄어 어느 해부터 사라졌고 복지와 수당도 하나 둘 없어졌다. 사장은 “내가 당신들 일할 곳 없을까 봐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고 2018년엔 한끼 삼천 원쯤 되는 식대마저 사라질 상황에 닥쳤다. 이곳에서 10년, 20년 다니며 자신이 쌓아온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두 달이 되지 않아 코오롱에서 주문이 끊겼다. 2018년 3월 노동자들은 물량 부족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위원회의 중재로 해고 통보는 철회되지만, 5월에 회사가 폐업을 했다. 사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힘들어지면 언제든 회사를 접을 것”이라는 말을 행동에 옮겼고, 사라진 회사와 싸우겠다고 스무 명 남짓의 노동자가 남았다. 그 중 한 명이 강이순 씨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이 처음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강이순 씨는 “옛날 안 좋은 일은 다 묻어두는 거”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하지만 한번 자신의 ‘고생담’을 털어놓을 기회가 생기자, 이순 씨는 맛깔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투쟁하면서 연대하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닌 경험을 “출세”라고 표현하는 강이순 씨의 말을 듣고, 지난 삶의 경험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된 모습을 본 또록 팀. 이들은 강이순 씨의 투쟁 여정에 대해 “그저 ‘고생했구나’라고 지나친 세월을 ‘갑질’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게 되었다”며 “‘다 늘그막’일지라도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말을 얻어서 좋았다”라고 해석했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이 쓴 책 <회사가 사라졌다 - 폐업 해고에 맞선 여성노동>(파시클, 2020) 홍보물


2018년 4월 폐업한 성진씨에스, 그 해 12월 청산(폐업)을 예고한 신영프레시젼, 2019년 4월 포장부 직원을 모두 해고한 레이테크코리아를 대상으로 투쟁을 이어간 여성 노동자들. ‘상실’을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정리된 글자로 옮겨낸 책 <회사가 사라졌다>가 나왔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이 쓴 <회사가 사라졌다>는 정말 무엇이 회사를 사라지게 했는지 추적하고, 한국에서 너무 쉬운 기업의 폐업 행위를 통해 본 노동시장의 문제점과, 그 안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 노동자의 위치를 밝혀낸 책이다. 중장년 여성 노동자를 바라보고 이들의 이야기를 ‘언어화’한 또록의 작업엔 페미니스트의 시선이 녹아있다.


사라지는 것의 흔적을 붙잡고 자신들의 시선으로 해석해낸 또록(림보, 시야, 하은, 희정)을 온라인을 통해 만났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이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네요. 2019년 봄에 뭉쳤다고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네 분이 만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하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면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하는 푸코 세미나를 듣다가 희정 님이랑 만나게 되었어요. 세미나 이후에 ‘르포 같이 읽기’ 모임도 했는데, 희정 님한테 같이 폐업 투쟁하는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나는 글 못 쓰는데 어떻게 하지’ 싶었지만, 나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바로 오케이 했는데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웃음)


희정: 어떤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성진씨에스(이하 성진), 신영프레시젼(이하 신영), 레이테크코리아(이하 레이테크) 여성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이들의 싸움을 기록할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어요. 저 혼자 작업하긴 힘들 것 같았고, 여러 명이 함께하면 좋겠다 싶었죠..


림보: 희정님에게 처음 제안을 받은 (2019년) 연초만 해도, 기존에 하던 일을 줄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만 좀 하려고 했던 지라 바쁘지 않았어요. 근데 2019년에 현장실습 희생자 유가족 모임이 생겼고, 지금의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 만들어지면서, 제가 참여할 일이 많아졌어요. 또록 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제가 10살 어린이와 함께 살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번 기록 작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기록 경험이 많은 희정 님이랑 같이 한다면 제 삶이나 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함께했어요.


시야: 저는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투쟁을 하는 성주 주민으로 살지만,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누구보다 노동자 계급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러려면 자신의 문제로 투쟁을 하게 된 노동자들이 잘 버텨주고, 그 싸움이 임금과 고용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기에 연대의 마음으로 노동자 투쟁 소식을 종종 쓰기도 했어요. 희정 님이 도시에서 책을 보내주면서 글쓰기를 독려해 주었죠. 그런 와중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저로썬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홍보영상 촬영 중인 희정, 하은, 림보, 시야.(왼쪽부터) ©서대문라디오공동체


-기록노동자로 지난 십 년 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담아온 희정 님이 이번 기획의 주축이었군요.


희정: 제가 팀을 꾸린 건 맞지만, ‘폐업’이라는 주제는 팀이 모인 후에 회의를 거치면서 결정된 거예요. 기업의 폐업은 사실 국가정책이나 노동시장 문제랑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선 그런 논의가 부족하고, 주변이나 사회에서도 이 노동자들을 ‘해고된 불쌍한 여자들’ 정도로밖에 보지 않잖아요? 폐업이 여성에게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치는지 접근해 보자는 이야기가 팀에서 나오면서, 우리의 주제가 ‘폐업 그리고 여성’이 되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노동자로 살아왔음에도 한국 노동시장을 잘 몰랐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나라에 비해 폐업이 이렇게 쉬운 줄도 몰랐고요. ‘폐업이 쉽다’는 걸 지적하면서 폐업은 ‘책임’의 문제라고 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지금 한국 사회는 개개인에겐 ‘스스로 책임지는, 자조의 삶’을 요구하면서도 그 대상이 기업이 되는 순간 왜 얘기가 달라지는 걸까?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국가가 기업에 엄청난 돈을 지원하면서도 문 닫겠다 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림보: 자본이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재벌이 성장한 역사랑 같이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업의 이익이 최우선 되는 방식으로 정책이 결정되어 왔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월급을 받아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은 ‘정말 내가 국민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시야: 사실 근로기준법은 잘 만들어진 법이거든요. 하지만 1970년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분신한 후 50년이 지나도록 근로기준법이 지켜지기는커녕 점점 개악되고 있죠. 파견 직종과 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이 만들어졌고요. 노동자 관련 법들이 오히려 개악되고 있으니 우리는 ‘국가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죠.


희정: 전 해고에 대항하는 투쟁과 해결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속이 터졌던 게 뭐냐면, 기업의 책임이 ‘고용’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400일, 500일 투쟁해서 간신히 복직이 되면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부정, 사람을 강제로 해고시킨 역사가 그냥 묻히는 거죠. 복직시켜주면 그걸로 사회적 합의가 다 된 걸로 하는 거에요. ‘왜 기업의 책임은 늘 고용에만 머무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폐업 사업장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어요. 고용은 ‘해 주는 것’이라는 걸요. 사실 안 해줘도 상관 없고, 기업주 개인의 선택이나 사정의 문제인 거에요. 그리고 국가는 계속해서 기업이 고용을 해 줄 수 있도록 기업을 보호하겠다고 하고 있고요.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그나마 사측에 고용의 책임을 묻는 건 남성, 생계부양자로 여겨지는 가장을 해고했을 때죠. 생계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 청소년 등을 해고할 땐 그에 대한 책임조차 없어지는 것 같아요.


성진씨에스 노동자들이 폐업 해고에 맞서 원청인 코오롱글로텍 본사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내가 조금 더 배웠으면 안 힘들게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제 또 한편으로 내가 좀 더 배워서 다른 사람보다 직급이 높거나 관리자가 되었다면, 나 역시도 노동자를 착취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성진씨에스 임은옥 인터뷰 중)


"누구든 그 위치에 가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다랐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회사의 폐업조차도 얼마든지 더 모으고 쌓으려는 방편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무엇을 잃고, 얼마나 고통받을지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폐업을 겪으며 은옥 씨는 개인이 출세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강함을 알게 되었다." (하은 기록 중)


-성진, 신영, 레이테크 노동자 인터뷰를 읽을 때 정말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너무 소중했어요. 그 이야기 속엔 중년/여성/노동자의 경험과 통찰력이 묻어나 있었고요. 그걸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는 또록 팀에게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죠. 여성노동자들의 말을 해석해내는 방식도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이가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따로 논의한 게 있나요?


하은: 제가 글을 많이 써본 적은 없지만, 우리의 작업 방식에 장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한번 인터뷰를 하면, 전혀 정리도 안된 날 것의 녹취록을 서로 다 공유했어요. 그리고 한 인터뷰이를 저만 만난 게 아니었어요. 멤버들이 다 사업장에 가 봤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뵌 적이 있는 분들인 거죠. 또 노조 조합원들과 같이 모여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성진의 임은옥 씨 인터뷰 내용을 회의에 가지고 가면 멤버들이 그 인터뷰에서 어떤 부분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좋을지 논의했어요. 그렇게 회의를 거치면 완전히 날 것이었던 인터뷰가 0에서 10이 되고 또 10이 더해지는 식으로 진척되더라고요.


우리가 작업하면서 신경을 썼던 건, 딱 답을 정해놓고 ‘이런 그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는 내용들을 덜 쳐내는 거였어요. 인터뷰이의 말에서 뭔가 예외가 좀 있으면 ‘우리가 그 예외를 쓰려고 지금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거니까, 예외는 예외대로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자’고 했죠.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신영종합개발사 골프장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열다섯 살부터 일하면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애기를 가지고도 집에서 부업을 하면서 일을 했으니 쉰 적이 없었던 거죠. 여기서는 진짜 쉬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우리 [농성] 투쟁이 10개월 정도였는데, 너무 짧았던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신영프레시젼 김정숙 인터뷰 중)


-‘예외는 예외대로 읽으려고 했다’는 게 책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이런 투쟁에서 노동자는 ‘피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기록자가 그들의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당사자들은 ‘투쟁이 즐겁다’, 심지어 ‘투쟁이 짧아서 아쉽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사람인 거죠.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입체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림보: 청소년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일은 많았지만, 직접 농성장에 가서 거기서 싸우는 분들을 인터뷰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한테도 여성노동자들이 ‘이 싸움, 이 농성 기간이 휴식 같다’고 하는 말들이 너무 신선했어요. 보통 이러한 싸움은 되게 고단하고 힘든 것으로만 생각되는데, 어쩌면 맨날 일에 매여있던 사람들에겐 방학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면적인데 우린 한 면만 보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노동자의 싸움이나 농성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안에 다양한 면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는데 우린 그 중에 한줄기만 뽑아서 이걸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고 읽어왔던 게 아닐까 싶었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려 하지 않고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거침없이 많이 물어보았어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종종 편하게 말씀하신 부분을 저희가 버리지 않고 잘 챙겨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시야: 저는 예전에 장기 투쟁을 한 노동자들을 만나 볼 기회가 좀 있었는데, 그 싸움에서 굉장히 이기고 싶어하더라고요.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버티고 싶다’고 했죠. 사실 노동자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투쟁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인 거에요. 그래서 더 억울한 거죠. 전 그런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었어요. 버틸 수 있는 조건이 안 갖춰져서 힘든 거지 투쟁 자체가 힘든 건 아니라는 거요. ‘(투쟁이) 너무 짧았던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는 말도 누군가에겐 불편한 문장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으로 있는 건 아니니까, 각각의 다른 결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정: 예전에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그러잖아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그랬다고.(웃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정말 즐겁다고 했거든요. 사실 기록을 할 때 기록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 사회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말을 빼기가 쉽잖아요. 투쟁이 하나도 안 즐거워 보이는데 즐겁다 그러면 이상하다 싶죠. 그런 점에서, 팀으로 작업한 게 다행이었어요. 서로 논의하면서 그 ‘즐겁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한 거죠. 이들이 여성노동자로서 (투쟁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번도 자기 시간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잖아요. 가족한테 치이고 일터에서 치이고 그랬을 텐데. 이들이 투쟁을 통해 갖게 된 시간의 의미에 대해 같이 고민했고, 그랬기 때문에 조금 더 자신 있게 관련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레이테크코리아 포장부에서 일하다 2019년 4월 전원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모습.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책에서 한국 기업문화를 가부장적 경영체제라고 지적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 많은 회사가 ‘아버지-아들’ 경영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가부장제에서 기인한다는 걸 지적한 점이 탁월하더라고요. 기업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강하게 깔려있죠.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이 있고요.


림보: 이런 투쟁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올 때 등장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있잖아요. ‘이 엄마들이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결해줘야 한다’고요. 그런 거 볼 때마다 솔직히 ‘정말 저 분들이 (엄마 노릇 하러) 집에 가고 싶을까?’ 싶었거든요. 가부장제, 가족주의에 대한 걸 질문하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 사실 제가 쓴 글 버전이 되게 많아요.(웃음)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여러 번 고쳐 썼는데, 어떻게든 이런 제 고민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고집이 좀 있었어요.


하은: 저희가 진짜 많이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가, 성진이랑 신영 농성장 밥이 정말 맛있다는 거였어요. 농성장에서 투쟁중인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밥을 하시는데, 밥이 정말 맛있고 김치도 정말 맛있고… 거기서 고민이 시작되는 거죠. 여기서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걸 우린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희정: 여성 작업자들끼리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그 밥을 편안하게 먹은 적이 없거든요. 밥 먹는 순간부터 설거지 눈치 싸움이 시작되곤 했어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설거지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자꾸 그분들이 설거지까지 다 하시니까요. 우린 ‘접시가 너무 많은데 저걸 누가 치우지’를 신경 쓰는데, 남성 활동가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밥 먹고 있는 걸 보면 속 터질 것 같고.(웃음)


림보: 정말 밉죠. 꼴보기 싫고.(다같이 웃음)


희정: 그런 부분들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또록에 모였기 때문에, 누가 한마디 하면 그걸 같이 논의하고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지 못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멤버가 해 주기도 했고요. 이런 작업 과정이 저희에게 어떤 관점이나 시각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시야: 전 젠더 감수성이 되게 예민한 편도 아니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했던 적이 없었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최근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 차원에서 故 김용균 씨 추모제를 했는데, 그 영상에서 누군가 ‘용균아~’ 이렇게 발언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별로 신경 안 썼을 텐데. 이젠 ‘김용균씨가 자기 아들도, 지인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계속 ‘엄마’가 호명되는 방식, ‘엄마가 용균이를 만나러 가는 길’ 뭐 이런 이야기도 이젠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책에서 노동조합 내 가족주의를 지적하는 부분도 나오더라고요.


시야: 노동조합 내의 가족주의에 대해선 이전부터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조직적으로 끈끈해지기 위해 가족주의를 이용하는 거잖아요. 그게 조합원을 관리하기 좋은 방식이기도 하고요. 노조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곳도, 안을 들여다 보면 언니·오빠·동생들이 우글우글 한 거죠.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노동조합 안에 분명 자리잡고 있는 문화에요. 근데 노조가 탄압 받는 순간 무너지기 쉽거든요. 그런 때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 서로 원수처럼 되는 경우도 있고요. 가족처럼 믿었는데 배신감이 큰 거죠. 저도 계속 공적인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해요. 제 또래는 그런 학습이나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젊은 세대들이 좀 다른 문화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림보: 청소년 인권에 관심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 후론, 어디 가서 나이 까고 누가 언니고 동생이냐는 호구조사에 응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인간과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으니까요. 나이 서열이든 어떤 서열을 인정한다는 게 그 위계를 수용한다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활동을 하면서 계속 ‘싸가지 없고 불편한 애’로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름다운 관계로만 지내는 게 아니라 상처 받고 흉터처럼 계속 남아서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있고 싶다는 마음이요. 기꺼이 쌍년이 되겠다.(웃음) 사실 인터뷰를 할 때도 ‘언니, 힘드셨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노곤노곤한 관계가 될 수 있는데, ‘조합원님’이라 부르면서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물론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지만요. 서먹서먹하고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걸 지키려고 했어요. 근데 한편으로,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 분들을 살갑게 대하는 다른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희정: 책 기록자로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관계 맺기가 되게 애매해요. 사실 여성사업장일수록 들어갈 때 나이 까고, 결혼유무 까고, 자녀유무 까야 되거든요.(웃음) 그런 신상이 파악이 되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가 않으니까요. 한 명의 시민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런 것들을 지양하려고 노력하지만, 또 기록 작업하러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날 땐 그런 걸 해야 하고. 그래서 제 안에서도 충돌이 일어나는 거죠. 늘 과제로 가지고 있어요.


책 <회사가 사라지다> 원고 교정 회의 중인 또록.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농성 현장에 가서 노동자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또 팀으로도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하은: 신영 원청인 LG에 항의하러 엘지트윈타워도 가고, 성진 원청인 코오롱 본사에도 갔는데요. 집회하는 노동자 분들은 건물 화장실을 못 썼어요. 못 쓰게 하더라고요. 노동자들이 매번 화장실을 돌아서 가야 한다고, 치사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저 보고 한번 가보라고, 건물 안에서 우리 소리 잘 들리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화장실 쓰고 나오고 했는데, 그 화장실이 기억에 남아요. 향이 너무 좋았거든요. 핸드워시도 파란색 봉비누가 아니라, 진짜 향이 너무 좋은 거에요. 기분이 묘했어요. 누가 이렇게 깨끗하게 화장실을 치웠을까 싶기도 했고, 노동자 분들이 집회할 때 ‘이 건물 지을 때 우리도 같이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는데 정작 그 분들은 못 들어가니까요.


희정: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분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했잖아요. 거기 이 책을 가져다 드렸거든요. 1년 사이로 신영 노동자들이 건물 밖에서, 또 청소노동자들이 건물 안 로비에서 파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저 높은 건물은 누구의 노동으로 세워지는가 싶어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또록은 ‘폐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는 곧 한국의 노동시장과 고용 문제에 대한 논의로, 국가의 기업 관련 정책의 문제로, 기업 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가부장제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또록은 그동안 사회가 보지 않으려고 했던 여성노동자들의 경험과 위치를 새롭게 해석해내고자 했다.


“우리의 노동을 뜨겁게 생각하지 않는” 회사와 “여자 해고는 해고도 아니라는” 사회에 맞선 ‘싸우는 여자들’을 만나게 해 준 또록의 네 멤버에게 다음 계획을 묻자, “일단 <회사가 사라졌다>가 2쇄를 찍으면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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