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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영향은 계속돼…‘검은 비’ 소송서 피폭자 완전 승소

원폭 터뜨린 미국이 부인했던 내부피폭, 잔류 방사능 인정한 판결


 

올해 7월 29일, 일본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원폭 피폭자 건강수첩 교부를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던 ‘검은 비’ 소송의 판결이 내려졌다. 원고 측이 완전 승소. 이 소송은 원폭 투하 후에 내린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강하물(소위 ‘검은 비’)에 의해 건강 피해를 입었지만, 피폭자 건강수첩 교부를 거부당한 피폭자가 히로시마 지방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원폭 피해자 중에는 당시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인들도 수만 명이나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오랜 기간 무심했고 그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 ‘검은 비’ 소송 판결과 관련하여, 원폭 피폭자를 연구해온 다카하시 히로코(高橋博子) 씨의 글을 싣는다.


히로시마 지방법원의 판결일에 법원 앞 모습. (제공; 다카하시 히로코)


※‘검은 비’ 소송이란: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 투하 직후에 방사성 강하물을 포함한 ‘검은 비’가 내렸다. 국가는 ‘검은 비’를 맞은 사람들에게 피폭자 건강수첩을 지급하고 지원, 보호했다. 하지만 같은 비를 맞았음에도 히로시마현과 히로시마시에 의해 피폭자 건강수첩 교부 신청을 거부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히로시마현 연락협의회를 결성하고 37년에 걸쳐 ‘검은 비’ 강우 지역 지정 확대를 국가에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이들은 강우 지역 지정 확대와 피폭자 건강수첩 교부를 요구하며 2015년 11월 4일에 히로시마 지방법원에 기소했다.


미국이 부정해온 방사능 잔류와 내부피폭 인정


‘검은 비’ 강우 지역의 주민은, 히로시마 관할 기상대의 기상연구사 우다 미치다카 등의 조사에 근거한 ‘우다 강우 지역’의 호우 지역의 피폭자들만 건강수첩을 지급받고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검은 비’는 그 지역 외 주민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에는 기상학자인 마스다 요시노부(増田善信)가 이를 조사(마스다 강우 지역)하였고, 2008년부터는 히로시마시·히로시마현의 원폭 피해자 실태 설문조사에 근거하여 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 오타키 메구(大瀧慈) 씨가 조사(오타키 강우 지역)를 실시했다. 그 결과, ‘검은 비’의 강우 지역이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된다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이번 히로시마 지방법원 판결은 “‘마스다 강우 지역’은 ‘검은 비’의 강우 지역을 추정할 때의 유력한 자료 중 하나”라고 인정하였으며 “‘오타키 강우 지역’도 그에 상응하게 참작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또한, 원고의 진술은 “피고 등 대리인의 반대 심문을 거쳐도 그 핵심 부분을 신용하지 못할 이유는 찾아볼 수 없고, 법정에서 진술하지 않은 원고(原告) 등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서 등의 내용에 부자연스럽거나 불합리한 점은 없는 점 등으로 보면, 원고 등은 모두 ‘검은 비’에 노출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원고의 진술과 진술서를 신뢰했다.


더불어 “방사성 미립자를 포함한 ‘검은 비’가 흘러 섞인 우물물 등을 음용하거나, ‘검은 비’가 뭍은 식물을 섭취하는 등의 내부피폭을 상정할 수 있다”고 보고, “내부피폭의 가능성이 없는가 하는 관점을 더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검은 비’가 내부피폭에 미친 영향을 고려했다.


그리고 히로시마현과 히로시마시 측에 83명의 원고 전원에게 피폭자 건강수첩을 교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원고 측의 증언과 진술서의 신빙성, ‘마스다 강우 지역’과 ‘오타키 강우 지역’, 그리고 내부피폭의 가능성을 중시하며,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는 부정해온 방사성 강하물과 내부피폭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가해국인 미국도, 피해국인 일본도 피폭자의 호소 무시해


원폭 사용 시 ‘검은 비’의 영향을 포함한 방사성 강하물, 잔류 방사선과 내부피폭은 미국의 공식적 의견 안에서는 부인되거나 경시되어 왔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 방사선 없음’이라고 보도한 1945년 9월 13일자 뉴욕타임즈.


1945년 9월 13일자 [뉴욕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 방사선 없음. 육군 원폭사절단장 토마스 파렐(Thomas Francis Farrell) 준장은 폭격을 당한 히로시마를 조사한 후, 오늘 보고했다. 히로시마: 비밀병기의 파괴적인 힘은 조사자가 예상한 것보다 컸지만, 폐허의 거리에 위험한 방사선 잔류와 폭발시의 독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전면 부인.”


이처럼 원폭을 투하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 방사능은 이미 사라져 없어졌다는 취지의 설명이 이루어졌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이 폭발한 후 폭풍, 열사, 방사선이 발생했는데, 1분 이내에 발생하는 방사선을 ‘초기 방사선’이라고 하고, 1분이 지난 후에 발생하는 방사선을 ‘잔류 방사선’이라고 한다. 땅에 도달한 방사선에 의해 야기되는, 지면에 있는 물질의 유도 방사화와 방사성 물질을 포함해 비나 먼지에 붙어 방사성 강하물로서 내리는 것도 잔류 방사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물이나 식재료 등을 통해 체내에 들어와 방사선을 계속 분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피폭을 ‘내부피폭’이라고 한다.


맨하튼 계획에서는 ‘방사성 물질 독성 소위원회’를 설치해 잔류 방사선과 내부피폭의 영향을 조사했고, 전후에도 계속해서 미군 특수병기 계획의 일환으로 조사한 바 있다. 미국 과학아카데미 소장의 미군 특수병기 계획과 관련된 문서에 대해 [마이니치 신문]의 요시무라 슈헤이 씨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부터 4년 반이 지난 1950년 3월, 미군이 두 피폭지의 ‘검은 비’ 강하지역에서의 잔류 방사능을 극비리에 조사하고”, 담당했던 과학자가 토양 조사 결과 등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방사능이 잔류한 것을 증명했다”고 보도했다.(마이니치 신문, 2015년 8월 5일자)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은 방사성 강하물, 잔류 방사선, 내부피폭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한편, 극비리에 군에 의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재난 상황을 계속적, 포괄적으로 조사하고 원폭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추궁하기는커녕, 미국의 핵우산과 핵 억지론에 의존하며 미국의 이 공식발표에 부응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한 가운데 ‘검은 비’ 등 핵 피해자에 의한 피폭자의 호소 그 자체가 감춰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원폭 피폭자를 연구해 온 다카하시 히로코 나라대학 문학부 사학과 교수. 전공은 미국사이며, 저서로 [핵의 전후 역사](소겐샤)와 [증보판 봉인된 히로시마·나가사키](공저, 가이푸샤)가 있다. (페민 제공)


핵에 의한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돼


히로시마 지방법원의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경시되어온 ‘검은 비’의 내부피폭과 잔류 방사선의 영향이 사법의 장에서 마침내 인정되었다. 하지만 히로시마시, 히로시마현, 일본 정부는 이러한 판결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과학적 견지’에 근거하지 않았다며 8월 12일에 항소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이 판결을 듣고 “아직 이런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주위에 흘렸다고 한다.(교도통신, 2020년 9월 3일자) 국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측이 건강수첩 배포 신청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인 원고 측이 재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이 상황을 만든 피고 측인 국가가 이러한 ‘부적절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놀랍다.


스가 총리는 지난 11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하쿠신쿤 의원(입헌민주당)에게 원폭에 대한 인식에 관해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답변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로부터 “70년”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는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숫자만 틀린 것이 아니라, 핵병기 금지조약 회의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과학적 견지’에 근거하기는커녕 이러한 모호한 역사 인식에 근거한 정책이야말로 ‘부적절’하다.


‘검은 비’ 피해자들의 호소를 뿌리치는 것은 원폭에 의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일에 가담하는 행위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피폭자의 고통에 응답하고 관련 정책을 하루빨리 재검토해야 한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이며,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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