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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다른 이미지’, ‘새로운 서사’를 쓴다는 것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기록노동자 희정 인터뷰


기자단은 7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획을 통해 만났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 속에서 ‘일’하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삭제되는 관점이 무엇인지 묻고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은 그렇게 탄생한 여덟 편의 기사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자단]


기록노동자 희정 님의 페이스북 이미지


SNS에서 스치듯 본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던 것은 어딘지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1년 전 신영프레시젼 여성 노동자들이 골프장으로 항의 방문을 한 날이었다. 신기한 우연이었다. 그날 나도 연대를 위해 그 장소에 있었더랬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진의 구석에 내 모습도 찍혀 있었다.


신영프레시젼은 LG의 1차 하청업체였다. 원청인 LG가 휴대폰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생산라인 아웃소싱을 선택하자 곧 회사를 청산했다. 거기에 희생된 것은 수직적 원하청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사장은 이들의 고용 문제를 방기하고 골프장 사업에 투자했다. 바로 그 골프장으로 항의 방문을 갔을 때의 사진이었다.


투쟁이 끝나고 나에게는 달리 고민이 남지 않았지만, 그 투쟁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생활력’을 포착한 희정 씨의 글로 그때를 돌이켜 보니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긴장되는 항의 방문을 앞두고 인근 밭에서 화기애애 고구마 줄기를 뜯는 조합원들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희정 씨가 일관되게 지니고 있는 문제 의식의 흐름 아래에서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현장을 다르게 포착하는 관점 


처음 희정 씨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여성 노동자 재현의 문제를 다루는 강연을 들으면서였다. ‘기록노동자’로서 희정 씨의 십 년 이상의 경험이 녹아든 강의였다. 그날 강연을 들으며 나는 익숙한 주제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느낌을 받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강의에서는 ‘서사’, ‘관계’, ‘해석’ 같은 말들이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전까지 노동운동의 맥락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단어들이었다.


희정 씨가 그리는 운동과 연대가 무엇인지를 좀 더 선명하게 감각하게 된 것은 희정 씨의 책 『여기, 우리, 함께』를 읽으면서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과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이다.


희정 씨는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섣부른 질문은 경계한다. 기록자는 그곳에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찾아간 사람이 아니다. 희정 씨는 싸우는 이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를 물으며 우리가 지나치고 감내하는 일들을 들춰내는 사람들이다.


책의 2부는 ‘밥차’라는 형태로 연대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연대자란,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던진 그 질문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기약 없는 농성을 이어가는 사람들 중 ‘누가 밥만 해결해줘도 두 배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이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밥 연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협동조합 <밥통>(babtong.kr) 활동가 손지후 씨는 ‘밥은 힘이 있다’고 말한다. 희정 씨는 그 말을, 누군가를 챙기고 돌보는 행위를 동반하는 것이 밥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밥 연대는 무엇보다도 같은 일상을 누리고 서로 관계 맺는 존재로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희정 씨가 연대를 파악하는 관점에 있어 중심에 놓는 것은 ‘관계’임이 드러난다.


희정 씨는 연대를 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은 흩어진 개인만 남아서 개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구조와 유리된 개인이 아니라, 억압적 구조에서의 자기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그 구조를 인식하고 변화를 지향하는 개인이다. 따라서 구조를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지향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감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보자는 말은, 내가 지닌 정체성들의 혼합을 보자는 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계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지향과 방향성 아래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의 문제라고도 생각해요. 싸우고 있는 자리, 피해받고 있는 자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흐름 속에서 어디쯤 존재하는가.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시스템을 극복할 방안과 운동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그 사람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은 무엇을 희망으로 보고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면서 가고 있는가 등을 전반적으로 보아야 해요.”


희정 씨가 저자로 출간한 책들 중에서 『기록되지 않은 노동』(공저, 삶창, 2016) 『노동자, 쓰러지다』(오월의봄, 2014)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봄, 2019) 『여기, 우리, 함께』(갈마바람, 2020) 『회사가 사라졌다』(공저, 파시클, 2020)


기록노동자 희정 씨가 인터뷰를 위해 노동자들과 맺는 관계가 그렇다. 이런 만남 안에서 폐업 해고에 맞선 여성노동을 다룬 『회사가 사라졌다』(공저)가 최근 출간되었고, 이전에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노동자, 쓰러지다』, 성소수자들의 노동을 추적한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비정규직-장애인 노동의 실상을 담은 『기록되지 않은 노동』(공저) 등이 세상에 나왔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불어오면서 


희정 씨에게도 스스로가 서 있는 위치를 인식하고 지향을 발전시켜온 오랜 과정이 있었다. 희정 씨는 그것이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희정 씨가 처음 노동이라는 주제와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의 노학연대 경험을 통해서였다. ‘노동자 계급에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의 주체다’와 같은 말들을 들었지만 막연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구조적 추상이 아닌 구체와 개별로서의 노동자란 누구인가, 무엇인가에 대해 잡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노동을 해나가면서도 ‘수박 겉핥기’같은 그 감각은 계속되었다. 그 막연함은 노동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해소되었다.


“그전까지 5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 쓰면서 일해본 적이 없었어요. 노동조합에 들어가고 정해진 일을 하고 임금을 받으면서, 또 성별과 나이와 지역 등 수많은 위계들을 느끼면서야 비로소 ‘아, 내가 노동자였구나’를 인식하게 되었어요. 어디에서 찾고 난리였을까. 내가 노동자이고 내가 순간순간 나의 노동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노동자인데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여성이라는 위치,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다는 위치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노동이라는 공간으로는 애매모호한 ‘활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노동자성을 어떻게 명명해야 하며, 노동권을 침범받거나 여성에 대한 존엄성을 침범받을 때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부딪혔다.


“그러면서 이전엔 ‘노동이라는 게 뭔지 모른다’, ‘내가 노동자들의 현장과 가까이 있지 못해서 노동을 몰라’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노동하는 자로서의 언어가 날카롭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나의 언어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페미니즘 리부트가 불거지면서 운동의 역동이 저에게 전해져왔던 거죠.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인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노동자인 나를 드러내고 해석해보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다시금 내 안에서 소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요.”


‘언어를 찾는 과정’이란 곧 체험한 일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갖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자기 경험을 깊이 들여다본 이후, 희정 씨는 다른 이의 경험을 들음에 있어서도 그 말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전에도 여성 노동이 힘들다, 또는 여자라서 싸운다, 이런 얘기가 제 책에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이전엔 목구멍에서 훨씬 가볍게 나왔고,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모른 채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저 사람들에게 예전의 나처럼 아직 말로 표현해내지 못한 다른 언어가 숨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그 말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게 되었어요. 내 경험과 저 사람들의 경험을 맞닿아 생각하면서, 저이 말에 숨겨져 있거나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서사와는 다른, 자기식의 해석이 있었던 게 아닐까를 고민하면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기록노동자 희정. 출처: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말들이 쏟아져나올 때 우리는 들어야 하는 책임을 갖게 된다. 희정 씨는 그런 당사자의 말 앞으로 기록이 나설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터지면 뒤를 쫓는 것이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기록이 당사자의 삶과 말을 앞설 수는 없어요. 다만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서사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거기에 덧붙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익숙한 방식의 재현과 해석으로부터 거리 두기


그런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 공간은 희정 씨에게 대안적 서사를 만드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세상이 주입하지 않은 서사들을 같이 찾아나가자는 지향이 있다. 희정 씨에게 듣는 일이란 ‘잘 읽히는 서사’를 의심하는 일이다. 이 사람에게 아직 말로 표현해내지 못한 다른 언어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기존의 익숙한 방식의 재현과 해석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쓴다.


사람들은 쉬운 언어를 더 빨리 흡수해요. 기존 사회가 만들어 낸 서사와 해석이 담겨있는 익숙한 언어가 훨씬 잘 읽히는 거죠. 이런 상황 속에서 기록자들이 사실 일정하게 대안 언론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기록자에게 놓여있어요. 기록자는 다른 서사,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쓰고자 하는 사람이지요. 여자가 싸우고 있으니 눈물을 닦아주자는 서사에 맞서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면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쓰게 돼요.”


‘잘 읽히는 서사’를 거부하고 대안적 서사를 추구하는 것은 진실에 가닿기 위한 노력이다. 2019년부터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투쟁을 함께하며, 희정 씨는 ‘노동조합을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서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노동조합과 여성 노동자가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이 실제로 그러하기만 한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노동자들을 만나다 보면) 일터에서 자기 권리를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해요.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나서 똑똑해졌다, 강해졌다’라고 말하면 그 말 자체가 굉장히 기뻤어요. 그것도 기존의 서사와는 다른 서사죠. 사람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집단 혹은 ‘귀족 노조’라는 식의 노조 혐오 이야기들과 다르니까요. 그래서 거기 만족하고 기뻐했던 적도 있다면, 요즘 하는 고민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나고 달라졌다는 말을 달리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에요. 그런 서사에는 노조와 만나기 전 몇십 년을 살아온 여자를 아무것도 못하고 목소리도 낼 줄 몰랐던 존재로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말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그전의 당신의 삶은 무엇이었어요?’라는 질문으로 되돌린 적이 없었던 거죠.”


기존 서사가 가지는 인력으로부터 벗어나, 그 안에서 충분히 포착되지 않던 삶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집요하게 밀고 가는 힘이 희정 씨의 글에는 있다. 개인의 삶에 스민 구조를 감각하게 하는 그 힘을 성찰성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자기 경험을 해석하는 이의 것이기도, 그것을 듣는 이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더 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희정 씨는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공동체 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해요.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왜 저렇게까지 하냐’는 것은 나와 무관한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죠. 우리는 한 사회에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 데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악한 자가 따로 존재하고 나는 그와 무관한 사람인 게 아닌 것이죠. 공범의식이라고도 하는데, 누군가 내 눈앞에서 절규하고 화내는 사람을 만들어낸 이 사회를 사는 나도 공범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죠. 그것이 기록자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고통받았으니까 그걸 써주겠다’가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일정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의 자세에서 최대한 듣고 그것을 왜곡시키지 않는 것이 제가 가진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신민경 기록)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페미니즘으로 노동을, 노동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성평등 노동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회원모임 <페미워커클럽>을 통해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삶에 박혀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 가입 및 소모임 참여는 kwwa@daum.net 메일로 문의해주세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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