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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하겠다

2020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 참여 후기


오랜만에 꽃을 샀다. “추모행사에 가는데 어떤 꽃이 좋을까요?” 꽃집 사장님은 하얀색 꽃을 추천해 주셨다. 평소에 하얀색이 가진 이미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순백의’, ‘깨끗한’ 이런 건 왜인지 거리감 있달까. 하지만 이번엔 ‘비어있는’의 의미가 연상됐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존재를 상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에 하얀 꽃다발을 들고 가는 길.  ©일다


그러던 찰나, 꽃집 사장님이 물었다. “혹시 어느 분 추모 행사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친구요.”


‘모르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걸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단지 추모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곁에 있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트랜스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남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DoR, 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은 1999년 미국 트랜스젠더 여성 그웬돌린 앤 스미스(Gwendolyn Ann Smith)가 혐오범죄로 죽어 간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하자며 제안한 기념일이다. 1998년 11월,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리타 헤스터(Rita Hester)가 트랜스포비아에 의해 살해당한 지 1년 후의 일이었다.


이후 매년 11월 20일이 되면 전세계 많은 나라에선 그 해 잃은 트랜스젠더들을 기리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고자 하는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 2019년 11월 20일에 열렸던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 행사  ©일다


한국에서도 11월 20일이 되면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를 주축으로 여러 인권단체들이 함께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작년엔 서울 마포구의 한 전시장에서 사진 전시와 함께 공연과 발언이 어우러지는 행사가 열렸다.


넓지 않은 공간에 의자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일,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을 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날 손바닥에 올렸던 귀여운 꼬마 LED 양초의 불빛까지도.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가 닥친 올해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도 제한된 형식으로 열렸다.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에서 주최한 행사는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삼청동의 한 공간에서 열렸지만 행사장에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10명 이하로 제한되었다. 당사자 발언, 연대 발언, 공연은 모두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행사장엔 조각보와 관련된 자료를 보고 후원도 할 수 있는 테이블, 색종이로 종이꽃을 접을 수 있는 테이블, 조각보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부직포 조각보에 원하는 문구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있었다. 


▲ 2020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에 있던 ‘조각보’   ©일다


조각보에 쓰인 문구 중에 유독 “살아남자”는 말이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다.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들이 거리에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쳤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살아남아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왜 이렇게 별스러운 일이 된 걸까.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들 


1인 공간으로 분리된 곳에 앉아 태블릿PC에 담긴 영상을 보았다. 코로나 시대에 익숙해져야 하는 감각임에도, 사람이 아니라 태블릿PC를 마주하는 건 여전히 어색했다.


당사자 발언 영상은 검은 화면에 흰 자막, 그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엔 그냥 검은 화면인 게 맞나 싶어서 다른 영상도 재생해 보며 버벅거렸지만 이내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들은 각각 주제도 다르고 길이도 달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커밍아웃의 경험, 패싱(passing,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끔 자신의 외양과 행동을 꾸미거나 혹은 감추는 것)에 대한 생각들, 자기 긍정의 과정 등.


가장 흥미로웠던 건 자신이 경험했던 온라인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경험, 그 안에서 있었던 강렬한 만남, 사회에 ‘맞추기’ 위해 살았던 일, 결국 자신 안에 갇힌 나를 끄집어 내고 커뮤니티로 나오게 된 과정까지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생애 일부를 구술하는 목소리를 따라 매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리다 보니, 꽤 길었던 시간이었음에도 끝나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에서 발행하고 있는 <조각보자기> Vol.1부터 3까지. 작년 겨울에 발행된 Vol.3은 ‘건강’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질병으로 삶을 잃을 뻔했던 경험이 두 번째 삶이었고, 지금 트랜스젠더로서 세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이의 이야기엔 확신과 어떤 것과도 견주기 힘든 자기긍정이 녹아있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그 내밀한 경험을 쓰고 정리한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몰입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의 시대에 누군가의 이야기에 이렇게 몰입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제서야 처음에 당연하다는 듯 영상에서 ‘얼굴’을 찾았던 게 민망하게 느껴졌다. 당사자의 이야기에서 자꾸 얼굴을 찾으려고 하는 것, 그래야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렇게 무의미한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당사자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스스로 대면하고 발화하는 데에 필요한 건,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사람의 존재뿐이다. 그 목소리와 함께 할 ‘사람들’이다. 함께 더 큰 조각보를 만들어 줄 사람들.


▲ 2020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 현장  ©일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2020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어땠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과 혐오의 장벽을 마주하고 여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여성과, 강제전역 당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있었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트랜스혐오가 목격되는 2020년에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한 이 때,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아쉬움이 남지만,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내 머리 속에서 당신의 이야기가 그려졌다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도 함께 울고 웃었다고. 당신이 언젠가 나를 친구라 불러줬을 때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겠다고. (박주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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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이주민 '성'의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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