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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장’을 요청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새로운 연결과 장소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2)
※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신지영(한국근현대문학과 동아시아근현대문학·사상·역사 전공.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뒤늦게’ 도착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
최근 재일조선인 여성의 문해능력 획득 과정과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가 번역되거나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공백은 뒤늦게 도착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 말·글의 장소이다. ‘뒤늦게’ 도착하고 있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재일조선인 문학보다 ‘뒤늦게’ 소개되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계에서 재일조선인 문학, 오키나와 문학 등은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물론 유명한 재일조선인 여성 ‘작가’의 글은 번역되었지만, 무명인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들은 최근에야 번역되고 있다. 그런데 이 텍스트는 작문, 수기, 쪽글, 증언과 구술, 에세이 등 ‘문학’에도 ‘실증자료’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다.
눈에 뜨이는 것으로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민족차별을 ‘넋두리’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잡지 『봉선화』에 실린 글을 묶은 것으로, 국내에 2018년에 번역된 『봉선화, 재일한국인 여성들의 기억』(오문자·조영순 지음, 최순애 옮김, 선인)이 있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야간 중학교에서 문해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과 욕망을 인식하는 과정을 구술을 기반으로 다룬 연구서로서, 2019년에 번역된 『할머니들의 야간 중학교』(서아귀 지음, 유라주 옮김, 오월의 봄)도 있다.
가족사진 한 장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하고, 재일조선인과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베트남 등 이주여성이나 난민여성의 생애사를 연결시킨 것으로 2019년에 번역된 『보통이 아닌 날들』(미리내 지음, 양지연 옮김, 조경희 감수, 사계절)과 무명의 재일조선인 여성의 글쓰기를 포괄한 연구서로 2019년에 번역된 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소명출판)도 꼽을 수 있다.
국내 번역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들.
또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뒤늦게’ 인식되거나 혹은 특수화되었다. 1990년대 탈식민주의 이론과 함께 제3세계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유입되면서 ‘서발턴’(하위주체,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난 계층)의 표현을 둘러싼 논의가 심화되었음에도, 이들 텍스트가 일본에서는 주로 2010년대 초중반에 묶이고, 한국에는 2018년 무렵부터 번역되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공백이다. 더 많은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듣고 싶지만, 이미 그/녀들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이 뒤늦음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녀들의 말·글이 드러나면, 그것은 늘 늦거나 특수한(부분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강제동원이 이야기된 뒤에야 강제동원된 여성이 보이고, 장애가 이야기된 뒤에야 장애여성이 보이며, 난민이 이야기된 뒤에야 난민여성이 보인다. 이처럼 자본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가 얘기될 때, 착취의 핵심에 있음에도 ‘여성’은 후경화된다. 혹은 ‘위안부’라는 특수형태를 부여해서만 전경화된다. 동시에… ‘위안부’인 상태로 했던 강제노동과 성적 착취의 복합성은 다시금 후경화된다. 그리고 각 상태의 여성들은 단절된다.
있었으나 늦게 출현하고, 늦게 인식되었으나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 말·글들이, 이 단절을 벗어나 모든 존재를 향해 증언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래디컬하게), 보다 내밀하게(그러므로 전체를 향해), 왜 그/녀들의 말·글에 이끌리는가?
쓰여지지 않았던 방대한 작품군,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에서 송혜원은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재일여성의 글쓰기를 핵심에 놓고 재구성한다. “글에 접근조차 못한 채 생애를 마친 여성들, 쓸 시간과 장소를 결국 못 찾았던 여성들에 의한 쓰여지지 않았던 방대한 작품군”이 있으며, “그러한 부재한 작품의 존재야말로 재일조선 ‘여성문학’, 그리고 재일조선인 문학의 연원”이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여성문학뿐 아니라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들의 이 말·글은 내밀하면서도 집합적이다. 그/녀들이 살기 위해서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동시에, 일 같지 않은 일들의 중력 속에서 지낸 겹겹의 일상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공통장’에 대한 욕망으로 넘친다.
그/녀들의 말·글이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일라이 클레어(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이자 젠더퀴어이고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 살면서 장애, 페미니즘, 환경, 퀴어, 계급이 맞닿는 현장에 관한 교차성의 정치를 연구한 작가)가 말한 ‘집’을 상기시킨다. “집으로서의 장소, 몸, 정체성, 공동체, 가족” 등 “우리를 품어주고 지탱해준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이자, “도망쳐 왔고” 동시에 “갈망해” 온 “다중쟁점정치”를 꿈꾼다.(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 제이 옮김,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2020년, 35쪽)
그렇다면 그/녀/들의 말·글에 대한 물음은, 비가시화되어 있던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를 가시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밀한 욕망을 풀어놓을 수 있는 ‘갈망하는 집’은 없고, 생존을 위해 속해야 했던 ‘떠나오고 싶은 집’에 의해 단절되고, 떠나오고 싶은 집 속에 꽁꽁 숨겨져 김치처럼 절여지고 있는 말·글이 있다. 이들 텍스트에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commons-place of self-epic)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자. 그/녀들을 속박한 공동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녀들의 ‘자기서사’를 ‘공통장’을 꿈꾸는 과정으로 읽기 위해서. 이렇게 할 때, 현재 소개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자본주의화된 출판시장에서 ‘소비’되는 것을 멈추고, 다른 비가시화된 존재들에게 스스로를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한정은 ‘자기서사’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현재의 시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전적 에세이, 구술채록, 자전적 성격을 띠는 (사)소설 등”을 포함시킨다.(이한정,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한국학연구』 40집, 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 2016년, 138-139쪽)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부각시키지만, 그/녀들이 글을 쓸 수 있게 했고, 구술과 증언을 기록했고, 출판하고 번역하고 있는 공동체와의 관계성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기서사 공통장’이란 말은,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문해교육 및 글쓰기의 욕망/표현/출판/번역을 둘러싼 관계들을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 형성되는 장소로 보려는 것이다.(권범철, 「현대 도시의 공통재와 재생산의 문제」, 『공간과 사회』 60호, 2017년, 133-134쪽)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특정 장르, 문학사, 공동체, 심지어 ‘여성’이라는 특성에 정착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말·글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되는 ‘공통장’으로서 모색하기 위함이다.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 속에서는 정신대, 위안부, 재일조선인 아내, 여공, 함바집 아줌마, 채소장수…. 서로의 연결을 차단당한 그/녀들의 경험이 서로를 배제하며 나타난다. 그/녀들 사이의 이 분열은 서로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킨 권력에 의한 것임을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계속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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