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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장’을 요청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새로운 연결과 장소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4) 


※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신지영(한국근현대문학과 동아시아근현대문학·사상·역사 전공.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송신도, 윤순만, 강덕경, 김복동…겹쳐지는 무수한 그/녀들


재일조선인 여성 1세의 말·글을 읽은 감각을 갖고, 한국에서 출간된 위안부 및 정신대 구술 증언집을 다시 보자.


위안부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시리즈 중에서도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4권은, 증언을 편집하지 않고, 욕설이나 사투리까지 그대로 옮겼다. 또한 증언자와 녹취자의 관계가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의 풍부함을 볼 수 있다.



윤순만은 1941년 13살이던 때 고모와 함께 규슈 하카다의 수용소로 끌려가고 나이가 어려 방직회사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1943년인 15살 때 히로시마 근처 위안소로 가게 된다. 해방 뒤에는 부산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결혼하고 아들딸을 낳지만, 남편 사망 후 정신이상이 되었다가 치유된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2001년. 이하 인용은 (증언-구술자명/쪽)으로 표시.)


김복동은 위안소 생활을 증언하면서 “군인들 안 올 때는, 안 올 때는, 빨래, 양말, 군인들 거, 내복(산 모양을 만들며) 이렇게 갔다 놔요. 대나무 통에다가. 그거 하구, 빨래, 빨래 뭐 이렇게 한 통씩 가져와. 빨래하고, 부대 옆에 부대 옆에만 따라다니잖아. 부대가 이동하면 다 따라가고 그랬는데.”(증언-김복동/245쪽)라고 말해, 위안소에서 강제노동도 이뤄졌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송신도의 삶은 윤순만의 삶으로, 다시 강덕경의 삶으로, 김복동의 삶으로, 그리고 재일조선 여성 1세의 삶으로 또 무수한 그/녀들의 삶으로 포개진다. 여성들이 처해 있는 각 상태의 차이가 있지만, 동시에 선명해지는 것은 삶 전체를 전유당한 존재들의 겹쳐지고 반복된 성적 착취와 노동의 경험이다. 어떻게 하면 이 각 상태의 차이를 무화시키거나 고통의 무게를 비교하지 않으면서, 자기서사 공통장이라는 장소를 발명해 낼 수 있을까?


노래와 환상들, 동물들이 출현하는 ‘자기서사 공통장’


그/녀들이 생존을 위해 속했던 공동체가 그/녀들의 말·글을 단절시켰다면,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그/녀들의 삶이 겹쳐지고 반복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녀들의 말·글을 듣고 쓰고 출판하고 번역하는 관계도 담고 있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는 가와다 후미코와 재일조선인 여성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은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만든 전지구적 여성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도쿄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재일여성 ‘위안부’ 경험자 송신도와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감독, 2009) 중에서.


송신도는 1993년 4월 5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 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유일한 재일여성 ‘위안부’ 경험자이다. 가와다는 「전쟁도 쓰나미도 삶을 빼앗지는 못해」에서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감독, 2009)에 찍힌 고등법원 판결 이후 집회를 언급한다. 청구가 기각된 판결 결과로 모든 사람들이 침통해 있을 때, 갑자기 송신도는 “노래 한 곡 할래”하며 즉흥 노래를 한다. “나는야 에헤- 진 재판 괜찮아 좋아 그렇지만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으니…”


가와다는 송신도의 노래에 맞춰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침울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하면서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믿었음이 분명하다”고 쓴다. 가와다의 해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당사자(송신도)가 지원자에게 기대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당사자가 열어젖힌 공통장에서 위로를 받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본다.


윤순만의 증언을 기록한 경험을 적은 김수진과 양현아의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한 윤순만」에는 증언하는 윤순만의 신체 상태나 언어표현이 자세히 적혀 있다. 윤순만은 “분명하고 장단이 있으며 재미있”게 몸 전체를 움직이면서 말했고, 증언 전체에 “강한 행위성”과 “신비한 힘” 혹은 “설화구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증언-윤순만/237쪽) 특히 이 글의 압권은 윤순만이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거나 흔들리는 지점까지 솔직히 적은 부분이다.


‘정신없이 끌려갔다고 해서 정신대여.’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녀는 ‘팔 이렇게 된 사람은 나 하나뿐’일 뿐 아니라 ‘그런 데(위안소)’를 가지 않았다고도 말씀한다. -중략- 이러한 마음의 동요는 윤순만 할머니 개인의 것만은 아니며, 또한 그것을 단순히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지평을 넘어 할머니와 생애는 할머니만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집합적이지만 개성적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이 증언에 담아내고자 했다. 거기에 우리 면접자의 목소리가 용해되었다면 좋겠다.(증언-윤순만/239쪽)


이 언급은 위안부 증언에 대한 온갖 상식들과 불화한다. 위안부 증언은 법적 증언으로 효력을 가지기 위해 ‘사실’만이어야 한다든가, 일관된 진술이 유지되어야 한다든가, 당사자 구술에 녹취자 의견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사투리와 욕까지 그대로 살린 모순되고 변화하는 윤순만의 증언 뒤에 붙은 이 후기는 ‘증언을 듣는 자의 증언’, 즉 또 하나의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다. 그리고 이 글은 독자들에게 다시금 증언자가 되길 요청하며 자기서사 공통장의 확장을 예감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내부에서 환상과 비인간 존재들이 출몰하며 또 다른 내적 공통장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는, 사실에 기반한 일인칭 말·글이어야 할 ‘자기서사’에 갑자기 끼어드는 ‘환상’이다! 윤순만은 삶이 고달파 못에 빠져 죽으려는 순간,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시커먼 소를 만나 죽음을 면한다.


“실컨 울구서루 빠져 죽을라구, 가서 다리를 이렇게 걸치고 앉아 실컨 퍼대리고 앉아서 울구서루, 이렇게 빠져 죽을라고 들어갈라 카니까, 시커먼 소가, 내 눈에요, 물에요, 시커먼 소가요, 막 뻐-삭 솟아올라요, 꺼먹 소가. 꺼먹 소가 머-삭 솟아올르면서, ‘순만아---.’ 그래요, 꺼먹 소가. 그 꺼먹 소가 뻐썩 솟아올르는데 그러니까 그만 놀래가지고 뒤로 버쩍 자빠졌어. 자빠져 가지고 마-악 자갈밭을 기어가지고 얼마를 도망질을 해가지고 갔어요.”(증언-윤순만/203쪽)


다른 하나는,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에 끼어든 비인간 동물들이다! 송신도는 해변에서 바지락이나 미역을 채집해 팔 때를 회상한다. “갈매기 녀석들이 가가 소리를 내. 내 바구니만 따라다녀. 오늘도 또 왔네 하는 것처럼. 에- 에, 에-에 거리면서. 귀여워, 그 갈매기들. 살아 있는 바지락을 먹어.”(가와다-송신도/248쪽)


2011년 동일본 대지지·쓰나미·원전 사고 당시 동북지방에 거주하던 송신도는 재난을 피해 도망칠 때 애견 마리꼬와 꼭 붙어 있다. 송신자는 대피소에 동물을 데려왔다고 비난하는 남자에게 “동물이지만 심장이 멈추지 않았으면 살아있는 생명이야”라고 대들고, 피난소 밖에 머물러야 하는 마리꼬를 보며 눈물 흘린다.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깊이에서 반짝이는 환상과 비인간을 만나면서, 비로소 ‘공백’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다. 몸과 삶을 거대한 것들에 전유당한 그/녀들의 말·글은, 기존 역사에 기입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한다. 그/녀들의 생애는 해방, 한국전쟁, 재난 등의 거대 역사에 ‘공백’으로 남아 있지만, 그 공백 속에서 자라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죽음의 고통을 걷어차는 환상과 인간종의 폭력을 넘어선 비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역사를 기입하는 다른 말·글을 보여준다. 자살을 막아준 시커먼 소의 압도적인 등장, 살기 위해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들린 에-에, 에-에 하는 갈매기의 소리로 말이다.


다시 김삼순의 말·글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어떤 언어로 쓰여졌을까? 이 책이 일본 로쿠인쇼보에서 출판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이 글의 원본은 한글이다. 따라서 여러 상식들과 불화한다. 재일조선인 문학은 일본어일 것이며, 한국어 텍스트는 한국에서 출판되었을 것이고, 하나의 글이 하나의 언어로만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식 등 말이다.


두 국가어 사이의 교환과정으로 이해되어 버린 ‘번역’은, 한국어도 일본어도 문어도 구어도 환상도 사실도 어쩌면 인간의 언어도 아닌, 그러한 말·글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 공백 사이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이 끼어든다. 일본어 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한글로 된 의성어, 가족을 지칭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리와 형태’로 불려지고 쓰여진다는 점에서 이물감을 담은 외마디 소리 말이다.

玄五生, 「글자를 배우고(字をおぼえて)」 (송혜원 편저, 『재일조선여성작품집: 1945~84. 1』 27쪽) ‘어머니, 아버지’만이 한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자연스레 입술이 움직여진다.


본성으로 회귀하지 않되 공통의 장소를 만드는 것,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이러한 연결과 장소와 표현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우리’의 ‘상식’과 불화하며 출현 중이다. 현실을 구성하는 환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비인간으로, 공동체의 속박을 파열시키는 공통장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는 그/녀들이 도망쳐 나와 갈망하는 또 다른 집이다.


※ 이 글은 「트랜스내셔널 여성문학의 공백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로서의 재일조선여성문학」(<여성문학연구> 48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년, 87-133쪽) 논문의 일부에서 언급한 소재와 주제를 가져와 전체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넣어 구성했다.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의 개념에 대한 보다 심화된 논의는 이 논문에 자세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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