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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피임약 약국 판매’ 주장하는 산부인과 의사

엠미 사키코 인터뷰 “성·재생산 건강 권리 중심의 의료를”



코로나19 사태 속,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폭력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도 가정폭력과 함께 젊은 여성들의 예측하지 못했던 임신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일본에서는 10월 8일, 제5차 남녀공동참획계획안(한국의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해당) 내에 예측하지 못한 임신의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 ‘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하는 것을 검토하는 방침이 담겼다.


이 흐름을 만들고 밀어붙여 온 것이 ‘사후피임약 약국 구매를 실현하는 시민 프로젝트’다. 사후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서명에 동의자가 10만 명을 넘어, 10월 27일에 요청서와 함께 후생노동성에 제출했다. 사후피임약을 구입하려면 의사 처방전을 받아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이다.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프로젝트 공동대표 엠미 사키코. 산부인과 의사이며 [혼자가 아니야]라는 책을 썼다.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응급피임약, 의사 처방전 없이 살 수 있어야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프로젝트(kinkyuhinin.jp)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산부인과 의사 엠미 사키코(遠見才希子, 1984년생) 씨는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응급피임약의 약국 판매를 포함한 접근성을 확실하게 하라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국제산부인과연합은 ‘성·재생산 건강 권리’(SRHR)를 지키는 서비스로서 사후피임은 불가결하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인 지금이야말로, 필요한 모든 여성이 세계 표준의 방법과 가격으로 안심하고 응급피임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후피임약은 콘돔을 사용한 피임의 실패나 성폭력 피해 등 피임이 불충분했던 성교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약으로 피임 성공률은 약 85%다. WHO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안전성이 높고, 의학적 관리하에 놓을 필요가 없으며, 약 90개국에서는 약국에서 싼 가격으로(수백~5천엔)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대면 진료나 온라인진료에 의한 의사의 문진과 처방전이 필요해 심리적, 물리적 장벽이 높은 데다가, 약값이 6천~2만엔(약 22만원)의 고가여서 특히 젊은 여성들이 구하기가 어렵다.


세계보건기구는 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며, 의학적 관리하에 둘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Photo by Sophia Moss with Pixabay)


3년 전에도 일본 정부의 검토 회의에서 약국 판매가 검토되었는데, 의견 공청에서 90%가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결되었다. 이유는 “안이한 사용이 늘어난다”, “여성의 리터러시(문해력, 인지능력)가 부족하다” 등이었다.


이에 대해 엠미 사키코 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의료진은 눈앞에 있는 환자 인생의 일부밖에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에 대해 ‘안이하다’라고 판단할 수 없으며, 약을 차별하여 제공하는 것은 인권침해입니다. 일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과, 밤거리 회식 자리에서 감염된 사람을 구별해서 치료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성의 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차별을 합니다. SRHR(성·재생산 건강 권리,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의 관점이 중시되지 않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 전 엠미 사키코 씨가 중고생이었을 때, 병원에서 기분 좋지 않게 진찰을 받은 기억이 있다.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내 몸인데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잖아요. 젊은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의대생이 되고 우연히 들어간 동아리에서 ‘피어 에듀케이션’(Peer Education, 동료 학습)의 일환으로 중고생들에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호평이었다. 자세하고 리얼한 ‘엠미 짱’의 성교육 강연은 지금까지 700개 이상의 중고교에서 진행되었다.


“저 자신이 10대 때, 학교나 집에서나 마음 둘 곳이 없어 외로웠는데, 그 마음과 마주하지 못한 채 연애로 도피를 했어요. 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요. 더 가볍게 즐겁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성에 대해 생각할 장소가 있었다면 멈춰 설 수 있었을 지도 모르죠. 자기 자신도 상대방도 소중히 하는 ‘인권’을 기반하여 섹스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학습지도 요강의 영향으로 ‘섹스’와 ‘피임’을 가르칠 수 없는 학교도 있어요.


강연 후에 성폭력 피해 경험이나 임신중단 경험을 적은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특유의 붙임성 좋은 말투로 강연을 해 온 지 15년. “지금도 엄청 고민하면서 얘기해요. 서로 다른 배경과 성장환경을 가진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지금 살아 있는 당신은 대단해요! 라고 하면 지금 죽고 싶은 아이는 괴로울지도 모르잖아요… 답이 없어서 어려워요.”


의료진은 여성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격무에 시달리는 나날. “산부인과의 일은 괴로운 일, 행복한 일이 반반씩이에요. 암으로 돌아가시는 환자가 있는 반면, 매일 다 같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출산이 있으니까요.”


인공임신중절도 담당했다. “여성들의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힘들어서 감정을 없앤 채 대했어요. 어느 날, 함께 있던 수련의가 중절한 어린 여자아이에게 ‘울지도 않고 반성도 안 하잖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출산을 하게 되면서 엠미 사키코 씨는 제1선에서 물러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너무 바빠서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저에게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바로 SRHR(성·재생산 건강 권리)의 관점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의료진이 지켜야 할 것은 눈앞에 있는 환자의 건강과 권리죠. 그래서 이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SRHR의 관점, SRHR에 기반한 성교육… 의료진에게도, 어른에게도 필요하죠.”


지금은 현장 일에 조금씩 복귀하면서 대학원에서 임신중단 시술과 성폭력 문제를 연구, 2년 전부터 응급피임약의 접근성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왔다.


“병원 안에만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 게 있어요. 우선 응급피임약(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정부 방침이 진정 당사자의 배경과 심경에 입각하여 운용되도록, 지금이야말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가시와라 도키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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