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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은 찬성하는데 페미니즘은 반대한다?

[이제는 페미니즘] 새롭게 열자, 페미니즘 교육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청이 증대하고 있는 시대, 페미니즘 교육의 개념, 의제, 실천의 역사와 현재성을 탐색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한다. “이제는 페미니즘” 연재 필진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들이다. 이제IGE는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학 연구자 집단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청년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경향


학교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궤적과 병행하여 ‘성평등’ 의제를 교육 과정과 운영 전반에 반영해왔다. 성차별적인 교육 내용을 개선하고, 성평등 교육을 확대해왔으며, 교원 연수를 통해 구성원의 인식 개선을 도모해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가 과거보다 민주적 공간이 되었으며, 성평등 의식을 함양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상은 이런 예측과는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초·중등 교육을 받은 여성과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한 수용도’에서 심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20·30대 남성의 경우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서, 안티페미니스트임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실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천관율・정한울, 2019) ‘여성혐오’가 또래문화의 단순한 유희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수준에서 실시한 성평등 의식 실태조사를 따를 때, 청년 세대의 성평등 의식은 과거 세대에 비해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남자는 의사, 판사, 소방관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남성이 훨씬 많아졌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남성 청년 세대는 ‘성평등’의 이름으로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을 하고 있다. 여성도 의사, 판사, 소방관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성차별을 말하고 여성이 권리를 주창하는 페미니즘은 ‘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식이다.


7월 10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정기집담회 <우리 시대 ‘성평등’은 왜 페미니즘과 반목하는가?>에서 “공교육의 시장화와 성평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엄혜진 소장. (출처: 이제IGE)


성평등 교육은 어떻게 ‘나답게’ 교육이 되었나


학교 교육에서 성평등은 양성평등교육, 성교육, 젠더폭력 예방교육에서 주요하게 다뤄져 왔다. 많은 교육자와 학습자들이 지적해왔듯이 각각의 문제점은 여러모로 존재한다. 그런데 크게 주목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 교육 모두가 성차와 성평등을 사회정치적인 의제가 아니라 개인적 의제로 삼아, 능동적 자기관리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가정 등 관련 교과 단원에서 다뤄지는 양성평등교육은 성차별과 성불평등의 역사적 구조를 성별 고정관념이란 개념으로 축소해 다루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태도 변화와 노력을 강조한다. 


성교육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극단적으로 대립시킨 지식으로 구성하는 한편, 특히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으로 표상한다.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성폭력은 약물・음주・흡연 등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행동 지침에 따라 개인이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사안으로 다뤄진다. 교육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과 같은 황당한 성폭력 예방지침이 통용되는 현실은 이를 잘 표현한다.


이러한 발상은 우연적이거나 성평등 교육에 대한 철학적 공백 탓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개인을 이상적 시민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이념과 정확히 일관되어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교육 체제는 수월성과 효율성을 강조하고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 합리성에 의탁해 왔다. 여기서 경쟁력 있는 개인이란 모든 삶의 영역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또한 경쟁장에서의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규칙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주체로서, 차별 현상과 구조를 개인화할 것을 독려받는다.


이런 교육 체제에서 성차는 스스로 관리해야 할 개인의 타고난 특질로 환원되고, 성차별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집합적 경험에 주목하는 행위 자체가 되며, 성평등은 권력이 소실된 자리에서 이미 달성된 과제가 된다. 청년 남성 세대가 성별 고정관념의 해체는 지지하면서, 성별 고정관념을 생성하는 권력 관계에 정초한 페미니즘에 저항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서들이 나와 타자의 관계를 숙고하게 하기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찾으라고 독려하는 바와 같이, 시장화된 공교육 체제에 안주한 성평등 교육은 근원적으로 ‘나답게’를 격려하는 교육이 되었다. 성적 차이와 그 경험을 개인화하는 교육은 차이를 가진 타자를 이해하고 공존의 윤리를 탐색하는 페미니즘 교육의 지향점과 가장 거리가 멀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나답게’ 살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해야 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교육이다.


페미니즘 교육, 반지성주의를 넘어서


제도 안팎에서 페미니즘 지식 및 교육 담론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페미니즘 교양서들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페미니즘 대중 강좌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개인과 자생적으로 형성된 그룹들에 의해 재기발랄한 페미니즘 교육 콘텐츠들이 생산되고 있다. 제도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반지성주의다. 호프스태터(2017)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지성과 지식인을 경시하는 관념 및 태도를 말한다. 집단 지성과 지식의 민주화에 대한 열광 이면에 지적 탐구와 지식인의 권위를 비하하는 문화로 불거져, 탈진실 정치에 의해 파급력을 높이고 있다. 페미니즘 역시 이와 거리를 두기 어렵다는 게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페미니즘 지식을 단편적으로 섭식하고, 심지어 왜곡하거나 이를 정치운동으로 정당화하는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페미니즘의 모법답안이 이미 주어진 것처럼 전제하고, 이에 대한 정서적 공감에 치중하는 모습이 교육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나타난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젠더를 사유의 도구로 삼아 세계를 지적으로 해석하고 또한 실천적으로 조직하는 역량을 일컫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를 그저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태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페미니즘 교육방법론에서 중요하게 제기해 온 ‘여성의 경험 말하기’는 지식을 발견하고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 사건의 ‘폭로’나 주관적 감정의 발산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실 여성 억압에 대한 당위적 강조, 여성의 경험 그 자체를 지식으로 바라보는 태도, 젠더 개념에 대한 몰역사적 인식 등은 페미니즘 교육의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적 현상이라고 페미니즘 연구는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지식을 구성하는 학문이며, 젠더를 비롯한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들은 여전히 토론되는 개념임에 틀림없지만, 여성의 경험 자체가 곧 지식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젠더에 관한 이론적 지평을 마련해왔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개인화된 실천이나 정서적 태도 변화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 사고, 이론적 개념, 논리적 언어 등 지적 역량의 요소들과 통합할 수 있는 이정표를 마련해왔다.


페미니즘 지식을 통해 세계를 통찰하라


벨 훅스(2010)는 지적으로 발달할 권리와 혜택이 남성에게 주어져 왔다는 점을 제기하면서 이론에만 경도되는 주지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경험에만 가치를 두는 반지성주의 역시 특정 여성의 경험을 착취하는데 공모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바 있다. 페미니즘 교육은 페미니즘의 지적 권위를 바로 세우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오늘날 안티페미니즘이야말로 반지성주의를 가장 적극적인 양분으로 삼고 있다. 2016년 경 <나무위키>에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해괴한 ‘주작’이 등장하고, 날조임이 드러난 이후에도 현실과 정치 공간에서 세력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파급력을 갖게 된 과정은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경험과 지식, 사유와 실천을 분리하면서 민주주의, 평등, 시민성 등의 가치를 지성과 대립하려는 충동에서 양자는 수렴하고 있다.


이에 맞설 가장 유용한 지적 자산을 다름 아닌 페미니즘이 갖고 있다. 지식의 역사적 구성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이론적 개념을 제안해 온 학문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교육이야말로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외면하고 있는 행동과 실천의 지적 작용을 강조해온 철학이자 방법론이다.


페미니즘이 개발한 지식을 통해 삶과 세계를 통찰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전망할 수 있는 지식을 또한 새롭게 생성하는 장, 그곳이 페미니즘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본 글은 필자의 관련 논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참고문헌

곽삼근(2008), 『여성주의 교육학: 학습 리더십의 출현과 그 의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송현주(2002),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Andragogy Today, 제5권 3호, 1-28쪽

호프스태터, 리처드(2017), 『미국의 반지성주의』, 유강은(역), 교유서가(Hofstadter, Richard,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New York: Vintage Books, 1963)

훅스, 벨(2010),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윤은직(역), 모티브북(Hooks, Bell,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1984)

천관율·정한울(2019), 『20대 남자: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참언론시사IN북


*필자: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이다. 논문으로는 “페미니즘 교육은 (불)가능한가?”, “공교육의 시장화와 성평등: 가해자/피해자, 정상군/관심군, 그리고 수컷/암컷 이분법에 기반한 시민성 개발” 등이 있으며, 공동 저서로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개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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