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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수업에서 왜 페미니즘 교육을 하세요?”

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공교육에_페미니즘을

 

 

당황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수업에서 여성에 대한 외모 차별과 혐오 발언이 담긴 영상자료를 틀자마자 학생들 몇 명이 “쿵쾅쿵쾅”이라 수군거리며 킥킥거렸다. 교실에 비웃음이 퍼지자 인권침해적 상황이 바로 희화화되어버렸다. 나는 수업이 가진 본래의 목적을 되찾기 위해 영상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왜 “쿵쾅쿵쾅”이라 했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갑자기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 말을 처음 뱉은 당사자는 나 못지않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말’의 의미에 대해 답해주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쿵쾅쿵쾅’은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말이라고 알고 있어요. 왜 페미니스트를 조롱할까요? 그리고 조롱하기 위해 왜 하필 ‘쿵쾅쿵쾅’이라는 말을 쓸까요?”

 

긴장감이 흐르는 교실은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은어가 비단 남학생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날은 여학교 수업이었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고, 모든 성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요. ‘쿵쾅쿵쾅’은 뚱뚱한 사람이 걸을 때 큰 소리가 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페미니스트들은 못생기고 뚱뚱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적인 은어입니다. 우리가 오늘 공부하는 성폭력 문제의 원인도 결국엔 성차별에 있어요. 차별이 없다면 폭력도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특히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외모로 평가당하거나 차별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금 관련 영상을 보여드렸어요. 페미니스트에게 ‘쿵쾅쿵쾅’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외모를 깎아내림으로써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아마 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당연히 나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에게 ‘쿵쾅쿵쾅’이라고 말하는 건 괜찮을까요?”

 

젠더에 관한 수업을 맡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전달하려 했지만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수업은 마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한 고등학교에 페미니즘 수업을 하러 갔다가 누군가 벽에 붙인 포스트잇을 보았다. 스쿨미투가 활발하던 시기 트위터를 중심으로 '#청소년페미가_겪는_학교폭력' 해시태그 운동도 함께 벌어지며 학교 내 페미니즘 혐오문화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졌다. (사진: 달리)

 

쉬는 시간이 되자 담당교사가 나를 불렀다.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두 시간 더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성교육 하라니까 왜 페미니즘… 외모 얘기를 하셨어요?”

 

담당교사는 학생들 몇 명이 자신을 찾아와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전혀 다른 주제의 수업을 했다는 불만을 제기했다며 난감해했다. 나는 수업에서 다룬 내용이 성폭력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그런 내용이 필요한지 선생님에게 설명했다.

 

“저희가 요청한 건 성폭력 예방교육이지, 성인지 교육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맥이 탁 풀리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성인지적 관점 없이 어떻게 성폭력을 예방하죠? 성폭력 예방교육과 성인지 교육은 그렇게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분리할 수도 없어요.”

 

“그건 저희가 생각한 수업이 아니에요. 그리고 왜 성교육 표준안 사용 안 하세요? 선생님이 표준안 안 쓰시는 걸 미리 알았다면 강사로 섭외하지 않았을 거예요.”

 

5년간 수많은 학교에 성교육과 젠더폭력 예방교육을 나갔지만 어떤 학교에서도 성교육 표준안 사용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칼럼(“섹스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http://ildaro.com/8856)에서도 다뤘듯이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시민사회에서 몇 년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담당교사는 나머지 수업은 맡길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시켰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페미니스트를 혐오하고 조롱하는지) 이해가 돼요.”

 

“그렇군요. 저도 선생님을 뵙고 나니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배우고 자라게 될 것 같아 안타깝네요.”

 

2018년 문화기획달에서 지역 고등학교의 스쿨미투 사건 공론화를 하며 제작한 카드뉴스 중 일부.

 

‘성’과 ‘폭력’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페미니즘

 

사실 이런 학교가 처음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강사가 페미니즘 성교육을 한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수업 중에 몰래 영상 촬영을 했다가 걸리기도 했다. 무단촬영에 항의하며 삭제를 요구하자 그 교사는 “왜 성교육 시간에 페미니즘을 하는지” 의구심을 드러냈다.

 

몇 년 전 스쿨미투가 벌어진 한 고등학교에서도 성교육 시간에 페미니즘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있었다. 한창 입시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이 페미니즘에 물들어 스쿨미투를 한다는 것이었다. ‘미투’(#MeToo)의 원인이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억지에 기가 막혔다. 도대체 페미니즘을 무어라 생각하는 걸까? 사이비 종교나 전염병? 그럼 자신의 자식이나 제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주체적인 사유와 자율적 실천을 못하는 인형 같은 존재?

 

성교육, 성평등 교육, 성인지 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용어와 주제는 다르지만 성/젠더를 다룬 교육의 근본 취지와 목적은 다르지 않다.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말하는 ‘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실천해야 하는가. 그것을 우리가 성교육 안에서 토론하거나 합의해본 경험이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페미니즘은 성을 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더불어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관념 바깥의 성을 상상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정상’은 보편이나 평범함이 아니다. ‘정상’이 무엇인가는 그 사회의 권력이 정의한다. 페미니즘이 ‘정상성’에 도전하는 것은 권력의 구조와 바탕을 근본에서부터 깨기 위해서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관계 맺고자 하는 희망이 페미니즘 안에 있고, 페미니스트는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성차별은 보이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정상’에 가깝게 살거나, 삶의 주요 목표가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양육자들은 스쿨미투를 한 자식에게 “‘미투’하고 싶으면 대학 가서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상’이 권력이자 명예가 된 사회에 페미니즘이 부재할 때 자식의 일일지라도 인권은 부차적인 것이며, 성폭력은 사소한 것이 된다.

 

‘정상성’에 의문을 품지 않는 성교육은 그래서 위험하다. 나는 성폭력이나 성착취, 임신과 낙태, 가정폭력을 경험한 10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들었다. 이들이 자신을 ‘비정상’이라 여기는 이유는 폭력 피해가 없는 상태만을 ‘정상’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신체 중심의 성교육, 피해 ‘예방’교육의 틀 속에서 ‘정상성’이란 아무런 성적 이슈도 겪지 않는 ‘진공’의 상태를 내포한다. 페미니즘 관점의 성교육이 도입된다면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에 책임을 묻는 문화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2019년 문화기획달이 제작한 자료집 <변방의 목소리, 지방의 스쿨미투를 기록하다> 중 스쿨미투 고발자들의 인터뷰.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미 이에 대한 요청이 올라왔다.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동의한 시민이 20만 명이 넘자 청와대에서는 “페미니즘과 인권 교육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성교육 표준안은 여전히 개편되지 않았고, 교육부 양성평등 정책담당관은 얼마 전까지 주요 부처 중 유일하게 수 개월간 공석이었다. 성비위 교사의 절반가량은 학교로 돌아간 것으로 밝혀졌다.(2020년 10월 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발표) 대통령의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선언이 무색하게도 이 정부 들어 페미니즘과 ‘(양)성평등’ 그 무엇에서도 의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10대가 주요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로 등장하며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는 연일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10대에게 주어진 현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가르치면서 연애만 해도 눈치를 주는 어른들, 성폭력이나 성경험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지역사회 문화, 스쿨미투 고발자를 ‘메갈’이라며 욕하는 학교와 친구들 속에서 아이들은 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 

 

#공교육에_페미니즘을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교사가_필요합니다

 

글쓴이: 달리. 페미니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배우는 사람이었지 가르치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지방/소도시/농촌 지역의 여성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청소년 젠더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주제로 전국적인 강의 활동을 하는 중이다. 1년에 1시간짜리 강의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인생에 1분이라도 성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100명 중 1명이라도 눈 마주치며 들으면 대성공이라는 낮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수업에 나간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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