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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성의 노동 기록, 세상을 ‘소란’하게 만들길

[기록을 읽다] 청년 여성들의 노동 기록 프로젝트팀 <소란>과의 만남


“...게임 속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다. 그때서야 ‘아, 타이쿤 게임은 ‘경영’ 게임이었지’하고 생각했다. 나는 게임 속 사장님이 아니라 아이템처럼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돈 잡아먹는 알바생이었구나.” 

<소란> 글 중 ‘현실은 타이쿤이 아니다’(작성자: 문우)


‘알바생’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10년쯤 됐다. 혜리가 알바몬 광고에서 최저시급 준수를 외친 것도 6년 전이다. (그때 사장님들이 알바몬 광고 불매운동을 했다.알바 노동의 현실은 언론 기사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알바는 다루기 좋은 소재니까. 악덕, 갑질, 최저임금과 같은 단어는 자극적이나, 언론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다. 맥도날드나 PC방 알바 실태를 고발한다고 해서 대기업 광고가 끊길 리 없다. ‘청년 노동’은 더 자주 소비되는 소재다. 잊을만하면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그런 이유로 청년-알바 이야기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SNS(페이스북)에 야심찬 글 하나가 올라왔을 때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20대 여성’이라는 말이 눈을 붙잡았다. 20대 여성들이 ‘20대 여성 노동’을 기록한다고 했다.


<소란>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팀이다. 이후 페이스북에 소란의 기록 글이 하나둘 올라왔다. 당사자가 직접 쓴 글도 있고, 소란이 한 인터뷰도 있었다.


  <당일배송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 접어>(쿠팡 배송)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드럭스토어 판매)

  <만 원에 직원 뽕 뽑는 방법> (뷔페 음식점)

  <나는 만들어진 소비자다> (바이럴 마케팅)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노동자입니다> (대학원생 노동)


17번째 글이 올라오던 날, 소란 운영진에게 연락을 했다.


청년 여성들의 노동 기록 프로젝트 <소란>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oursoran20s


세상이 지우고 있는 ‘2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약속 장소에 나온 태린과 현정, 그리고 나는 서로 눈만 껌벅였다. 이 둘이 <소란> 프로젝트의 멤버다. 두 사람이 인터뷰도 하고 글도 쓴다.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할까. 여성 알바 경험이나 사례를 듣고 싶어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록자였고, 그렇기에 이들이 청년 노동을 기록하며 부딪히는 문제의식에 관해 듣고 싶었다. 소란의 탄생부터 물었다.


두 사람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20대다. 다수의 대학생이 그렇듯, 자신들 주변에 알바를 하지 않는 친구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노동자라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는 당사자도,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 일을 시키는 사장도 그랬다. 많이 양보해서 ‘여자 알바생’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자신들을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새벽, 현정과 태린은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급작스러운 결심 하나를 하게 된다. 자신들의 노동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스스로 알리기로 한 것이다. 며칠 후 sns에 글 하나를 올렸다.


사회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20대 여성의 노동에 속하지 않는 이야기는 아예 지우려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 잘 몰랐던, 어쩌면 놀랍고 약간은 불편한 이야기, 바로 ‘20대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 이야기'를 모아 생생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20대 여성 당사자로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우리가 만든 ‘소란’이 세상을 더욱 소란하게 만들길 기대합니다.  <소란> 소개글 중 https://facebook.com/oursoran20s


내가 본 야심찬 글이 이것이다.


젊은 여성의 노동이 소비될 때


“우리가 노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우리 일하는 걸 말하면 신기해해요.”(태린)


신기해한다. 그나마 20대 여성의 일이라고 떠올리는 것은 방긋 웃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직이다. 젊은 외모를 ‘밑천’으로 한다고 여겨지는 일.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젊음일지도 모르겠다. 일터에서 겪는 성희롱, 외모 평가 같은 이야기에 더 귀가 열린다. 이 사회에서 ‘젊은 여성’은 소비되기 좋은 존재라, 노동에 ‘여성’이란 이름이 붙으면 그 또한 좋은 소비재가 된다. 그러다 보면 여성 노동자가 겪는 일은 부록 취급당하게 마련이다. 소란은 의아해했다. 왜 자신의 노동이 쪼개져 이야기되는 걸까.


“여성 노동은 (성희롱, 외모 평가 등) 부분 부분으로 나눠 이야기되는데. 최저임금, 주휴수당 문제를 나도 겪었고, 내 친구도 겪었고. 같은 사업장에서 외모 평가를 당하면서 동시에 부당하게 임금을 받고 그러는 거잖아요.”(현정)


청년 여성들의 노동 기록 프로젝트팀 <소란>(태린, 현정)을 만나다. (촬영: 희정/기록노동자)


‘여자 알바’ 이야기는 피해 사례 묶음 정도로 말해질 때가 많았다. 알바 현장에 성추행이 많더라, 외모 평가가 잦더라 하는 주장의 근거로 이들의 경험이 쓰인다. 그 사례는 자신들 노동의 주요한 일부이나, 자기 자신은 아니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여자애로만 있는 게 아니라, 사장한테 따지기도 하고 노동청에 신고하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거예요. 하나의 노동하는 사람으로 다뤄지진 않으니까. 그런 여성 이야기를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현정)


하나의 사람이자 노동자로, 자신들을 입체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일하는 당사자이자 동시에 기록자인 <소란>이 등장한 배경이다.


소란이 하는 질문


하지만 머릿속 상상처럼 쉬이 그려지는 그림은 없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현정과 태린은 인터뷰 자리에서 상대의 더 어렵고 힘든 경험에 관심을 가지는 자신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힘든 이야기를 쓰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알바를 하면 힘든 것도 많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불행을 착즙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질문도 ‘이런 것이 힘들지 않았어요?’가 되고.”(태린)


그런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 글로 만들어 카테고리를 나누다 보면, 여성 노동의 전형처럼 되어버린 단어들만 남는다. 성희롱, 성추행, 꾸밈과 외모 비하. 가감 없이 기록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일터의 고됨과 자극이 드러날수록 또래들에게서 “나는 일하면서 저 정도로 힘들지 않은데. 나는 이야기할 게 없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 보였던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한데. 그걸 보는 사람들이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까. 나는 근로계약서를 썼으니까. 에어컨 있는 곳에서 일하니까. 월급은 제때 받으니까. 우리 이야기가 다시 노동의 위계를 나누게 되는 건 아닐까.”(태린)


자신들 또한 ‘20대 노동’을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한다.


우리도 모르고 살아온, 여성의 노동


걱정에도 불구하고 소란은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려 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이라 불리지 않던 우리의 일을 기록하자고 했는데, 막상 우리가 다루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수도권 대학생 이야기에 한정된 거예요. 이참에 우리도 배울 겸 다른 목소리를 다뤄보자. 우리도 모르고 살아온, 다양한 여성들의 노동을.”(태린)


소란은 20대 여성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세상에 관해 말했지만, 사실 자신들도 모르는 게 있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 계층, 학력을 벗어나면 누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기록은 자신이 모르는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이 일은 쉽게 멈출 수 없다. 타인을 만나는 순간, 나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더는 머물 수 없기에 그러하다. 자신과 다른 이들을 만나 그들의 노동조건 뿐 아니라, 세상이 그들에게 내어주는 (노동의) 자리를 본다. 그 자리를 두고 머무는 사람, 버티는 사람, 벗어나는 사람, 바꾸는 사람을 보게 된다.


현정이 인상 깊은 인터뷰라 꼽은 것이 하나 있다. 대학원생 구구와의 만남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구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노동자입니다.”


<소란> 기록 중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노동자입니다” 인터뷰: 현정-구구 (소란 페이스북 페이지)


알려진 대로 교수 ‘밑’에서 일하는 대학원생 노동자의 삶은 피로하다. 그렇다고 고단한 노동이 끝나는 곳이 강단 위도 아니다. 교수가 될 가능성은 없다. 교수가 되어 무엇을 바꾸고 싶냐는 소란의 질문에 구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이 회사 회장 되어서 다 바꿀 거야”와 같은 소리라 했다. 비용 절감 논리로 무장한 대학은 정(규직)교수를 채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대학원에 왜 갔냐고 물을 텐데, 뭐랄까 정말 학문이 좋아서 연구하러 온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노동자입니다> 인터뷰: 현정-구구) https://facebook.com/oursoran20s


그는 대학원에서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한 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돈 못 버는 고학력 비정규직 비혼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대학원에 와서 많이 보았고,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비정상이 아니구나. 사회가 그리는 어떤 상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같은 글) 


소란은 이 말이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그런데 나는 이 인터뷰를 읽으며 조금 당혹스러웠다. 고학력 여성마저 자신의 삶을 ‘비정상’이라 느낀다. 세상의 ‘정상’ 자리가 이렇게나 비좁다니. 그가 자신을 ‘정상’이라 여기지 않았던 이유는 오직 하나. ‘평범한’ 사람들의 지향과 다른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이들, ‘정상’을 의문하다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을 버는 직업을 통해 안정을 누리는 삶. 그 삶을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 세상이 말하는 ‘정상’이다. 노동의 권리조차 ‘정상’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된 세상은, 여기에 벗어난 이들에게 권리가 부재한 일터를 감내하라 했다. 권리가 부재한 일터에 임시로 있으면 알바가 되고, 오래 머물면 불안정 임시직 노동자가 된다. 알바와 임시직 노동자가 뒤섞인 쿠팡 등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과 과로사 소식이 들려왔다.


“수개월째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거리’를 메우는 것은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다. 총알배송과 새벽배송이라는 편리한 서비스 뒤에는 몇 배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당일 배송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 있으면 접어>, 인터뷰 현정-봉봉, 월넛)


사람 ‘갈아 넣는’ 일터는 놀라울 것도 없다. 경악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내일 자신이 일하러 갈 곳이다. 단기 알바, 일당 당일 지급. 이런 조건에 끌려 찾게 된다. 내일의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임시 노동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이점으로 둔갑해 사람을 불러 모은다. 다만 의아함은 ‘저 거대 기업의 이윤이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가’이다. ‘정상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다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이윤이 기업으로 빨려 들어간다.


“쿠팡 그러면 큰 기업이잖아요. 이 기업을 유지하는 이들이 ‘정상’이 아닌, ‘정상이라 부르는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들은 왜 정상이 아닐까요?”


일하는 이들의 정상성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나누는 (정상) 구획에 대한 질문이다.


더 우리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시 대학원생 노동자 구구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무도 구구에게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동료집단을 만났을 때,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됐다. 구구가 괜찮음에 대해 20대 여성 기록자들에게 말해주었을 때, 소란은 ‘더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노동이 기록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결국은 내가 내 삶을 기록하면 그게 역사가 되는 거구나. 더 우리 이야기를 해야겠다.”(현정)


<소란> 멤버 현정의 작업 모습. (소란 제공)


처음에는 어떤 ‘정형’에 자신들을 가두고 자꾸만 잊어버리는 세상이 답답해서 기록을 했다. 무작정 시작했으나, 기록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쌓여가며 소란은 삶과 노동을 기록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다. 목소리(서사)가 없어 자기 자신(의 삶)을 의심할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이대로 괜찮냐고 묻는 일이다. 우리의 불안한 노동이 이처럼 계속 기업 깔때기로 빨려 들어가도 되는지를 묻는다.


출퇴근 길의 풍경처럼


소란의 글 중 나는 이 구절이 좋았다. 물류센터 노동자의 이야기다.


“일 자체는 정말 고되지만 하다 보니 좀 재미있기도 하고 … 좀 특이한데, A 물류센터 출퇴근길 셔틀을 탔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출퇴근 길의 풍경을 좋아했어요.”(<당일배송 써본 사람은 접어>, 인터뷰: 현정-봉봉)


우리를 노동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시급 8,590원짜리 노동을 하러 가는 길목,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 기쁨이 되고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기록이라는 노동도 출근길 풍경 같은 것들로 인해 유지된다. 소소한 기쁨이 있다. 


현정과 태린은 지금 하는 일이 좋다고 했다. 소란을 통해 기록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가질 수 있었을까. 기록을 하는 이가 누리는 즐거움이다. 출근길 피로도, 기쁨이 될 창밖 풍경도 노동을 하러 가는 길목에 있다. 기록을 둘러싼 고민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존재한다. (희정/기록노동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https://brunch.co.kr/@oursoran20s (소란 브런치)

https://facebook.com/oursoran20s (소란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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