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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교육에 ‘응급 매뉴얼’ 기대하지 마세요

<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양육자를 위한 교육


글쓴이: 달리. 페미니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지방/소도시/농촌 지역 여성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청소년 젠더교육에 관심갖게 되었고, 다양한 주제로 전국적인 강의 활동을 하는 중이다. 1년에 1시간 강의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인생에 1분이라도 성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100명 중 1명이라도 눈 마주치며 들으면 대성공이라는 낮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수업에 나간다.


민망함과 부끄러움…가족 안의 암묵적인 금기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TV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들의 키스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애정표현을 할 때부터 내 안에서 간질간질하고 살랑거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키스를 하자 부모님을 의식하던 내 몸이 뻣뻣하게 굳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며, 그런 내 모습을 옆에 있는 부모님에게 들킬까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그 장면을 불편해하는 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 화면에 한창 몰입하던 엄마는 내가 간질간질함을 느낀 순간부터 시선을 딴 데로 돌렸고, 아빠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채널 딴 데로 돌려라!”


다음 장면이 궁금했지만, 그 숨 막히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나는 얼른 뉴스 채널로 돌렸다.


왠지 가족끼리는 ‘그런’ 장면을 같이 보거나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면 안 된다고 ‘느끼’며 자란 것 같다.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 가르쳤거나 우리 가족 안에서 그런 규칙을 정한 적도 없는데 그것은 암묵적인 규범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 나도 모르게 ‘간질간질하고 살랑거리는’ 느낌이 든 이유가 무엇인지 부모님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니 내가 그런 걸 ‘느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실까 봐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순간들에 느낀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성에 대한 나의 인식과 태도를 아주 오랫동안 지배했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의 저자 김서화는 아이, 자식을 대하는 양육자의 시선과 태도부터 성찰해볼 것을 제안한다.


성교육 ‘A to Z’를 찾아서 


시대가 변해서일까. 최근에 아이들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양육자들을 많이 만난다. 특히 스쿨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n번방’ 사건과 같은 아동․청소년 성폭력과 성착취 문제가 사회적 ‘위기’ 상태임이 알려지면서,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성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의무화되었고, 가정은 더 이상 ‘성’을 회피하는 곳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성교육의 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온/오프라인 전반에서 성교육 관련 자료가 쏟아지고 있고, 교육열이 높은 집단에서는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과외수업처럼 시키기도 한다.


성교육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양육자들은 본인이 성교육 강의를 신청해 듣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이들보다 양육자 정체성을 가진 성인 대상 교육이 더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양육자 수강생들이 바라는 성교육의 방향은 결국 이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애가 이렇게 물을 땐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실제로 많은 성교육 관련 도서나 컨텐츠들이 위 물음을 토대로 하여 여러 공통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응급 매뉴얼’처럼 말이다.


“아기가 어떻게 생기냐고 물을 땐 뭐라고 답해야 되나요?”

“섹스에 대해 어디까지 설명해야 되죠?”

“우리 딸이 자위를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아들이 몰래 음란물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하죠?” 


양육자 대상 성교육 강의 현장에서도 위와 유사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 몇 살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써야 맞는지, 성적인 정보에 대해 어디부터 어디까지 공개/비공개를 결정해야 하는지, 아이가 자신의 몸이나 타인의 성에 갖는 관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이 모든 개별질문에 가장 완벽한 ‘정답’을 얻고자 성교육에 참여하는 양육자들은 ‘전문가’의 일방적인 설명과 명확한 지시를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양육자 대상 성교육을 하며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해 불만을 듣기도 했다.


“저희는 답을 들으려고 왔는데 선생님은 왜 자꾸 저희한테 질문을 하세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누군가 ‘일 더하기 일’이나 ‘이 더하기 삼’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답을 가르쳐주려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산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각 수식이나 공식에 따른 답만 외우고 산수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은 채 타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가능한가?


많은 양육자들이 아이의 성과 관련해 맞닥뜨리는 질문과 상황들에 난감함을 느낀다고 한다. 급한 불을 끄듯 난감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성‘교육’을 하고 싶다면, ‘정답’을 던져주기 전에 본인이 느끼는 ‘난감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식이 성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성적 표현을 했을 때 양육자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그가 성에 대해 가지는 가치관, 관점, 경험, 태도 등 많은 것을 함축하고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넘어설 때 양육자로서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


책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김서화 지음)에 실린 삽화. 많은 양육자들이 자녀의 성과 관련한 질문이나 상황을 맞닥뜨리면 난감해한다. 그 난감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두나


게다가 성교육은 ‘일 더하기 일’이나 ‘이 더하기 삼’에서 끝나지 않을뿐더러 산수처럼 어떤 오차도 없이 똑 떨어지는 정답만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다.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을 비롯해 인권과 젠더, 철학과 윤리까지 아우르며 몸과 세계를 연결해 바라보아야 하는 인식체계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성교육 매뉴얼’은 ‘부모시험’을 통과하는 ‘만능족보’가 될 수 없다. 양육자가 스스로 사유하지 않은 채 매뉴얼에만 의존해 성교육을 시도한다면, 아이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난감함은 반복될 것이다.


아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하기


드라마에서 키스 장면이 나왔을 때 시선을 돌리고 채널을 바꾸라고 했던 나의 부모님 역시 다른 많은 양육자들처럼 ‘난감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난감함의 정체는 사실 양육자가 가진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며, ‘아이’ 또는 ‘자식’이라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책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에서 저자 김서화는 “성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위계 설정 자체에 대한 질문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위계적인 틀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엄마이자 어른인 내가 아들, 자식, 아이,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를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나의 아이가 나와 똑같이 ‘성적 욕구와 권리를 가진 존재’, 그러니까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동등한 시민임을 상상하거나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은 늘 보호와 통제의 영역 밖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이 성적 욕구를 가질까 봐, 성적 행동을 실천할까 봐 두려워하는 부모를 자주 본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 난감함, 당황스러움, 두려움 등 성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과 태도 모두가 아이로부터 온 게 아니라 양육자 자신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 감정을 아이에게 투사해 바라보기에,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정답’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일부 수강생들의 불만에도 내가 양육자들에게 자꾸 질문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야 성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 감정과 태도의 역사를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난감한’ 질문에도 우리는 솔직하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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