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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함께 싸운 동료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피해자의 ‘조력자’를 만나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의 ‘조력자’였던 경윤 씨(가명)를 만났다. 그에게 직장에서 어떻게 용기를 내 피해자와 연대했는지, 연대 경험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현재는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는지 물었다. 직장에서 성폭력을 당하거나 혹은 지켜봤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의 입을 빌려 듣고자 했다.
직장 내 성폭력 조력자인 경윤 씨를 만났다. (권제인/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자단)
부장의 성추행 문제 제기한 다섯 동료들은 그 이후?
경윤 씨는 두 직장에서 연달아 성폭력을 마주했다. 모두 입사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부장이 회식에서 벌인 성추행이었다. 부장은 옆자리에 앉은 직원의 몸을 만졌다. 경윤 씨는 회식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날에 피해자가 직접 말해주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피해자와 경윤 씨를 포함한 다섯 명의 동료는 고민 끝에 부장의 행동을 문제 삼기로 했다.
경윤 씨는 많은 이들처럼 월급이 주된 소득이었다. 갚아야 할 빚도 있었다. 만약 회사에서 해고된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게 뻔했다.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었는지 그 동기를 물었다.
“가해자가 ‘요즘 여성 문제가 무섭다, 페미니즘이 엄청 대두됐다’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그렇게 말해 놓고선 성폭력을 저지르는 걸 보니 ‘성폭력을 우습게 보는구나, 이렇게 해도 여태껏 문제가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어요. 그 부장이 이미 여러 번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동기가 됐죠. 문제 제기하려니까 상사들이 저희를 말리면서 전에도 성폭력이 있었다고 그러더라고요. 피해를 입었던 선배들이 부장이 비슷한 행동을 했었다고 말해줬어요.”
“잘릴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그 문제를 같이 논의했어요. ‘우리 절대 잘리거나 제 발로 나가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개별행동은 하지 않기로 계획도 세웠죠. 팀이 다 다르니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업무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거로 생각했거든요. 우리 입장은 같으니까 분리되지 말고 공동행동만 하기로 했죠.”
회사의 반응은 불길한 예감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경윤 씨와 동료들이 ‘가해자와의 공간 분리’를 요구하자 회사는 가해자 대신 피해자의 자리를 옮기려 했다.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이상한 조치였다. 한 달 뒤, 조력자였던 경윤 씨는 업무 평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다른 동료도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든다며 해고됐다. 다른 세 사람은 몇 달 뒤 제 발로 회사를 나왔다.
“일이 많은 팀에서는 그런 불이익이 없었는데, 저한테는 일을 아예 안 줬어요. 한 달 뒤엔 업무 평가가 안 좋다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일이 없는데, 일을 못 한다고요. 저랑 같이 잘린 다른 분은 분위기를 안 좋게 한다고 잘렸고요. 왜 분위기가 안 좋다고 그러겠어요. 우리가 자꾸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남녀고용평등법 14조 6항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노동자 및 피해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같은 법 37조에 따라 사업주에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동료 조력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그러나 회사는 경윤 씨와 동료를 해고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조력자’에게 남은 것
문제를 해결해보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라는 위치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상사는 피해자에게 “너와 같이 문제 제기한 동료를 자르겠다”는 말로 협박했다. 업무시간에도, 야근 후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피해자에게 압박이 가해졌다. 회사가 부장의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장담했던 피해자는 결국 입장을 바꿨다. 경윤 씨와 동료가 해고될 때도 피해자는 가해자와 회사를 고소하지 못했다. 피해자 역시 조용히 나가는 길을 택했다.
“업무도 많은데 동료를 해고하겠다고 압박하니까 피해자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았어요. 그쪽 팀은 일도 많은데 근무 시간에도 계속 불러내서 얘기했어요. ‘너는 이런 애가 아닌데 누구 때문에 그러는 거지’ 이런 식으로 달래기도 하고, ‘너 때문에 걔네 다 잘린다’라고 협박하기도 하고요.”
피해자의 태도가 바뀌자 경윤 씨는 부당해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됐다. 부당해고를 증명하려면 성폭력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다. 피해자가 성폭력 사실을 증언해주지 않으면 자신이 되려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무고죄로 고소당할 가능성도 높았다. 경윤 씨는 문제 제기에 따른 불이익을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경윤 씨가 두 회사에서 사용한 업무수첩을 보여주었다. (권제인)
이때의 경험은 그다음에 벌어진 직장 내 성폭력에 대처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해고된 뒤 곧바로 들어간 회사에서도 성폭력이 일어났다. 경윤 씨는 그 자리에 없었고 피해자가 바로 말해준 것도 아니었지만 금세 성추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사들이 공공연히 “그 여자가 이상하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퇴사를 택했고 머지않아 경윤 씨도 회사를 떠났다.
두 직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회사를 떠나서도 걸림돌이 됐다. 반복되는 직장 내 성폭력에 경윤 씨는 구직 의욕을 잃었다. ‘회사에 다니면 이런 일이 또 생긴다’는 감각이 경윤 씨 속에 자리 잡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겪으며 이 감각은 더 강해졌다.
“첫 번째 사건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탈모가 오고,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그랬어요. 잠을 잘 자지 못하니까 살도 빠지고요. 그런데 다음 회사에서도 성추행이 벌어지고, 또 제대로 처리가 안 되니까 질리더라고요. 성폭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회사는 들어본 적도 없고,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도 드물어요. 주변에서 같이 해결하려 하지도 않고요. 취직하면 또 그런 일이 있겠구나 싶죠. 최근에 다시 일을 구하고 있었는데 박원순 사건이 터졌어요. 그러니까 구직 사이트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고 싫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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