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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윤리, 젠더감수성은 필수적으로 배워야 해요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을 만드는 사람들



장애인혐오, 여성혐오 표현으로 지속적으로 비판 받아 온 웹툰작가 기안84가, 거센 하차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또 MBC <나 혼자 산다>에 돌아왔다. 혐오표현 반복을 ‘실수’로 덮어주고 그를 ‘아픈손가락’으로 표현하며 보호막 역할을 자처한 <나 혼자 산다> 팀. 그들은 비판의 요지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듯 ‘기안84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올테니 기대해 달라’는 비겁한 공지만 내놨다.


기안84의 혐오표현을 그대로 실었던 네이버웹툰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작가들에게 환기하겠다’고 했지만, 그 다양한 사안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가들에게 환기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 허용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만능 치트키인가?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하고 포용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모든 창작자들이 나몰라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동시대를 살며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과 더 나은 창작 환경을 모색하고 ‘재현의 윤리’를 고민하는 예술인들이 있다.


‘전국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을 진행 중인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김보은 배우와 강윤지 연출 ©일다(박주연 기자)


‘2020 연극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극인들이 모여 9월 13일부터 ‘젠더감수성 워크숍 - 연극X젠더감수성, 대체 뭔데?’를 진행 중이다. “지속가능한 연극생태계를 위한 오늘의 과제이자, 현 시대 관객이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젠더감수성’을 꼽으며, “연극 안의 젠더감수성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고, 토론하고, 직접 글을 쓰는 과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2020 연극의 해 <전국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 - 연극 x 젠더감수성, 대체 뭔데?>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청 링크 https://url.kr/9tqVf3


안산, 전주, 광주, 대구, 부산, 춘천, 대전 등 각지에서 ‘전국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니, 그것도 ‘2020 연극의 해’ 사업으로 진행 중이라니, 내용 못지않게 그 배경이 궁금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강윤지 연출, 김보은 배우, 홍예원 연출을 만났다. (홍예원 연출은 서면 인터뷰로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MeToo) 이후, 문화예술계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도 변화를 요구 받고 있습니다. 연극계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활동을 통해 증명되고 있죠. ‘전국 연극인 젠더감수성 워크숍’도 그 중 하나로 보이는데요. 특히 이 워크숍이 ‘2020 연극의 해’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싶어요.


홍예원 연출(이하 예원): ‘2020 연극의 해’는 작년에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되고 처음 연극인들을 만나는 자리를 다룬 기사에서 최초로 언급됐어요. 장관이 된 후 첫 만남인 만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하거나 야당 후보를 지지한 문화예술인의 명단을 작성하고 지원금 심사 등에서 배제한 일)와 미투 운동 이야기를 당연히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장관이 만난 사람들이 연극계 협회·단체장들,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기득권 연극인이었다는 점이에요. 그 식사 자리에서 블랙리스트, 미투를 ‘아픔’ 등의 단어와 연결해 거론하며 ‘연극의 해’ 지정 얘기를 했고, 바로 기사로 나왔죠.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투쟁해왔던 연극인, 미투 운동을 해 온 연극인들은 황당함을 느꼈고 분노했어요.


김보은 배우(이하 보은): ‘2020 연극의 해’ 사업을 한국연극협회가 문화체육부에서 지원받아서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연극인들의 반발이 컸어요. 협회가 곧 연극계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사실 협회는 연극하는 사람들 중 일부만 활동하는 곳이에요. 그럼에도 보통 이런 사업 있을 때, 정부에선 연극인이 거의 프리랜서라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까 일일이 찾아서 뭘 해주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협회한테 지원금을 주곤 했죠. 그런데 2020년에도 또 이렇게 ‘연극의 해’라는 이름의 사업이 협회 중심으로 진행된다니까, 문제가 제기된거죠.


강윤지 연출(이하 윤지): 블랙리스트가 터졌을 때 한국연극협회 내에 문제가 있었고(2017년 당시 연극인들은 한국연극협회를 불신임하고 ‘연극인 연대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이후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 연석회의’를 만들었다), 협회원이 아니면 연극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지역의 젊은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특정 협회의 사업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연극인을 포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표 아래 ‘연극의 해 준비모임’이 꾸려졌어요.


대구 워크숍부턴 문자통역도 제공되고 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제공) *워크숍 신청은 https://url.kr/9tqVf3


-그래서 젊은 연극인들이 함께 참여해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2020 연극의 해’ 사업을 준비하기 된 거군요. 미투 이후, 꾸준히 대안을 모색해 온 ‘성폭력반대 연극인행동’도 참여하게 된 거고요.


예원: 준비모임에서 제가 주장한 건 첫째, 협회·단체 중심이 아니라 협회·단체와 민간단체, 그리고 개인연극인들이 상하구조 없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 둘째, 소수자, 그러니까 여성/장애/청년/퀴어 연극인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 셋째, 축제 중심이 아니라 진짜 안전한 창작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안전한 창작환경’이라는 말 안에 계약서 문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애인과 노약자도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성인지 감수성, 공연장 안전 문제 등이 다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2020 연극의 해 준비모임에서는 다원화된 연극 현장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들에서 집행위원 추천을 받아, 그 집행위원들이 사업을 평등하게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퀴어, 장애, 청년, 페미니즘, 지역, 이 다섯 가지가 주요한 키워드였는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은 페미니즘 키워드에 부합하는 단체였죠. 성반연에서는 강윤지 연출가가 다수의 추천을 받아 집행위원이 되었어요. 젠더감수성 워크숍 사업은 윤지님의 아이디어였죠.”


-2020 연극의 해 사업으로 ‘연극X젠더감수성’ 워크숍을 기획한 이유는 뭔가요?


윤지: ‘연극의 해’ 연구 용역 결과 요약본을 보면, 2020년을 연극의 해로 지정할 필요성에 대해 ‘블랙리스트, 미투 운동 등 과거의 상처 치유, 침체된 연극계 분위기 쇄신 등의 상징성’이 기재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전처럼 똑같이 연극제를 열고, 다른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죠. 성반연의 추천으로 집행위원이 된 극단Y 연출가 강윤지가 연극의 해 집행위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너무 명확했어요. 페미니즘이죠.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에 ‘페미니즘 연극’이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단순히 단어만 차용하거나, 여성혐오가 뭔지 잘 모르면서 공연을 만든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반감도 거셌죠. 전 페미니즘은 공부해야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린 여성혐오에 너무 물들어있어서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창작자들에게 말 걸고 싶었어요. ‘요즘 페미니즘, 젠더감수성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데 뭔지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안전한 창작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같이 얘기해보면 어때?’라고요.


연극인이라면 ‘공연’과 ‘대본’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페미니즘 관련 강의는 많은데, 연극이라는 영역 안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나 워크숍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대본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서 젠더감수성에 대해 논하고, 실제로 우리의 창작 환경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한거죠. 


젠더감수성 워크숍 진행을 준비 중인 강윤지 연출, 김보은 배우, 홍예원 연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워크숍 구성을 보면 첫 시간은 강의, 그리고 두 번의 모둠 토론으로 되어 있는데요. 저도 워크숍에 참관하면서 강의를 들었는데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더라고요. 동료 연극인들에게 특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요?


보은: 문화예술계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 전문강사 교육을 받았고, 이후 관련 강의도 하고 있어요. 사실 전 흔히 말하는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이 아니라 안전한 창작 환경, 창작자가 젠더감수성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걸 하겠다고 하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관객으로 본, 소위 ‘빻은’ 연극 작품에 대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요.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해 짚고 싶었고요. 한번은 지인들이랑 제가 본 ‘빻은’ 연극에 대해서 열심히 얘기했는데, 한 분이 ‘그게 빻은 거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냐?’ 물으시더라고요. 좀 놀랐어요.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럼 그걸 어디서 배울 수 있나? 물론 관심 있으면 찾아서 배울 수 있지만, 아직 쉽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강의를 만들게 된 거죠.


강의를 통해서 어떤 길을 제시해 드리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잘못된 길이 뭔지 알려드리려고 하죠. 젠더감수성을 가지고 작품을 보면 이런이런 점이 불평등하고 문제가 있다는 걸. 저도 페미니즘을 몰랐을 땐 그런 걸 몰랐어요. 그래서 ‘니 작품엔 왜 젠더감수성이 없어?’라고 비판 받는 창작자들이 당혹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울 수 있다는 거죠. 종종 ‘여성주의 관점을 가진 작품은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 이 시대의 창작자들이 그걸 고민하며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함께 하면 된다’고 답해요.


윤지: 분명 ‘페미니즘 연극’이 늘어나고 있고 좋은 공연도 많아요. 그런데 좀 당황스러운 공연도 있거든요. 그럴 땐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저 창작자도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창작 과정에서의 젠더감수성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사실 개인의 창작 영역에 개입한다는 건 쉽진 않은 일이지만, 창자자 본인들도 뭐가 문제인지 궁금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 기사는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창작자의 윤리, 젠더감수성은 필수적으로 배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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