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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입장하기 전까지 표현의 자유는 없다”
유니브페미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F5’ 프로젝트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지난 4월 7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측에 ‘여성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윤리 규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이후, 본격적으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F5(새로고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0년 4월 7일, 에브리타임의 사업장 주소인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케이스퀘어 앞에서 에브리타임에게 N번방 2차가해·여성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윤리규정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유니브페미
혐오할 자유가 아닌 토론할 자유, 기계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꺼이 상상하고 ‘새로고침’하기 위해 24명이 모였다. 10월 5일, 4개월 동안 기획지원팀, 모니터링팀, 미디어팀, 법률팀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각 팀원들이 ‘X’ 버튼 대신 ‘F5’를 선택하기 위해 매주 연구하고 활동한 기록이자 결과물인 책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 발간을 앞두고 있다.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음란물’ 논란에서 빠진 것
1999년 서울대 ‘스누라이프’, 성균관대 ‘성대사랑’ 등 각 대학의 총학생회나 몇몇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교를 대표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아직도 높은 이용률을 자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2010년대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어플리케이션 형태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편화되었다.
시간표 어플리케이션으로 2010년에 출시된 에브리타임은 익명 커뮤니티, 강의평/시험정보 공유, 학점계산기, 책 중고거래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히며 전국 398개 캠퍼스 452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에브리타임은 2018년 앱스토어에서 무료 전체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앱 사용 빈도에서도 1위에 오를 만큼(“20대가 가장 자주 쓰는 앱은 '에브리타임'?” <한국경제> 2018년 3월 16일자 참조) 대학 생활에 있어 ‘필수 앱’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의 특성과 익명성, 삭제 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인해 그동안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에브리타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초기에는 수강 신청에 유용한 서비스로 소개되다 2015년부터는 줄곧 ‘인기’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대학교 대나무숲이란, 각 대학 재학생 혹은 졸업생이 직접 만드는 것으로 페이스북에 각 대학의 재학생, 졸업생 혹은 타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공간이다. 대체로 인간관계, 연애, 진로, 토론, 연예 관련 글이 게시된다)와 나란히 학내 여론의 장으로 인용되었다. 이때부터 학교 비리, 교수의 막말이나 군사주의적 학과 문화, 여성혐오적 연구기획 등이 논의되며 학내 고발의 장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16년, 게시판 기능 활성화로 어플리케이션 시장의 강자로 주목받게 되면서부터는 여남공학 대학의 커뮤니티 내에서 성관계할 상대를 구하는 ‘프리19’ 게시판 문제가 기사화되었다. 커뮤니티를 경유한 만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원나잇스탠드를 한 상대 여성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는 등 국내 최대 불법촬영물 공유사이트였던 ‘소라넷’과 거의 유사한 행태가 벌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대학생 김정민(가명·24)씨는 “한 모임방을 통해 만난 이성들은 대부분 ‘야톡’이라는 걸 한다”며 “야톡 끝에 한번 만남을 가지고 ‘이건 아니다’ 싶어 연락을 끊으려고 했더니 카카오톡에 ‘야톡’한 내용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야톡’은 성적인 묘사와 나체 사진 등 이미지를 주고받는 채팅을 말한다.
(“‘은밀한’ 시간표 어플 ‘에브리타임’”, 서울경제, 2016년 7월 6일자)
7월 21일,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한 제대로 된 심의 기준을 마련하고 에브리타임과의 차별금지협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제목은 “우리를 삭제하는 대학 내 500가지 혐오표현을 고발합니다”였다. ©유니브페미
에브리타임이 ‘불건전한 만남’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게 되자, 개발진은 커뮤니티 정보공유 기능을 분리해 새 어플 ‘캠퍼스픽’을 출시했다. 그러나 ‘프리19’ 게시판만 없어졌을 뿐 ‘모두의 연애’ 게시판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고, 에브리타임에서도 ‘성인게시판’, ‘만남의 광장’, ‘구인게시판’ 등 학교마다 다른 이름으로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되었다.
2019년 6월에는 ‘심야 시간대 나체 인증사진’이라는 키워드로 한 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 게시물들이 뉴스에 방영되며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커뮤니티 전체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란물’이라는 표현에 담긴 성 보수주의적 함의 안에서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논란이 되었을 뿐, 어떤 차별적 구조하에 누군가의 성적 자유는 보장받아 마땅한 것이 되고 누군가의 성적 자유는 착취의 대상으로 쉽게 전락하고 마는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끊이질 않고 있는 ‘대학 단톡방 성희롱’과, 불법촬영 또는 그루밍(grooming)과 유포 협박을 통한 디지털 성폭력을 대표하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 3개월 전, 변호사를 중개해주는 법률서비스 ‘로톡’ 사이트의 성범죄 분야 상담사례로 올라온 다음의 문의에서, 이것이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확신하게 된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 어플 '에브리타임'에 약 일주일간 여러 차례에 걸쳐 도용 음란 사진(성기 포함)을 올렸습니다. 에브리타임은 익명 커뮤니티 어플이지만 가입할 때 대학 합격증과 본인인증을 하여 해당 대학 재학생만이 이용할 수 있고, 운영진에서 그 정보를 보관합니다. 제가 올린 게시판은 '성인게시판'으로, 다른 게시판에서 말하기 쑥스러운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시판입니다. 당시 분위기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 사진 혹은 도용된 음란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남성이지만 매번 여성을 사칭하여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올릴 때마다 10초씩만 올려두고 바로 글을 지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캡쳐를 통해 며칠간 자료를 수집했고, 이것을 신고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특정한 통보가 아니라 불특정다수에 대한 통보였습니다. 만약 신고가 접수된다면… (<로톡> 성범죄 분야 상담사례 중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혐오표현의 해악
여남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에서 문제가 되는 건 ‘성인게시판’만이 아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자유게시판’에도 같은 학교의 여학생, 타 대학 여학생, 여성 청소년, 여성 연예인, 여성 가족구성원, 길에서 만난 여성 등을 성적 대상화하며 성희롱하는 글이 많았다. 어쩌면 커뮤니티 전반에 깔린 남성중심적 문화가 이처럼 평등하지 못한 ‘구인게시판’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나무숲이나 에브리타임의 주류 문화 역시 사회의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적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은,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러 대학에 여성주의 학회와 모임이 연달아 생기고 활동을 펼쳐가면서부터였다. 학과에서 승인받은 여성주의 기초강연 행사 포스터를 에브리타임 홍보게시판에 절차를 지켜 올리자마자, 신고 누적으로 게시물이 자동으로 삭제되고 포스터를 게시한 계정은 3개월간 이용정지 처분을 받기 일쑤였다.
에브리타임에서의 여성혐오적 게시물과 댓글을 폭로하는 대자보 10장이 모두 무단철거 및 훼손된 현장 사진. 2018년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재건 모임이었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대자보 대거 훼손 사건에 대해 “에브리타임의 혐오 발언보다 고발 자보가 창피하다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새로 작성하고, 형사 고발했다. (출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페이스북 페이지)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직접 에브리타임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하고, 성차별적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설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한편의 사람들이 활발하게 성평등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는 동안, 온라인에서는 또 한편의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론장의 문을 봉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대안적 공간으로 뛰쳐나왔다. 2018년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연남사)’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필두로, 수많은 대학에서 연남사를 패러디한 페이지가 개설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에브리타임에서 통용되는 성차별적 발화들을 에브리타임 밖으로 끄집어내 전시하면서 대항했다. 매번 개선을 약속해놓고도 ‘신고 누적으로 인한 자동 삭제시스템’을 고수해온 에브리타임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자동 삭제시스템이 없는 더 넓은 대안적 공간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상반기, 누적된 단톡방 성희롱 사건들과 전국적인 미투 운동, 그리고 홍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으로 시작된 ‘혜화역 시위’로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 대중화 국면을 맞았을 때, 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도 말 그대로 ‘폭주’했다. 이제 삭제되는 건 커뮤니티에 올린 페미니스트들의 게시물만이 아니라, 중앙대자보판에 고정시킨 대자보였다. 대자보를 찢는 이들의 주장이나 근거는 포털 기사 악성댓글과 유사했지만, 차이점은 에브리타임의 모든 이용자가 학교라는 동일한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자보 다음으로 찢기는 것이 우리가 되지는 않을까’, 학내 여성주의 활동은 위축되고 있었다.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까지 총여학생회가 ‘(남성)역차별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직격탄을 맞았다. 무너지지 않고 맞서는 대학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있었지만, 총여학생회 또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개개인에게 너무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연대 서명에 동참한 학생들의 이름이 대자보판에 수록되는 것이 아니라, 에브리타임으로 옮겨져 평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여를 지키려는 활동가와 연대자에 대한 신상정보 캐기와 억측, 근거 없는 비방, 폭력 예고가 이어지는 동안 누군가는 출석이 불리는 강의실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누군가는 공개 지지를 철회해야 했지만 학교도, 학생회도 신경 쓰지 않았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에게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눈앞에서 말하는 실체가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욕적으로 묘사되는 ‘그분들’ 세 글자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만 ‘역차별’만이 차별로 이해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이 곧 운동으로 인정되었다. 학생 총투표로 총여학생회 폐지가 결정되자 “총여 함락 기념으로 국산 야동 봐야지”, “지금 총여 잔존 세력 경영관 앞에 있는데 진압봉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이겨야 함”, “차례대로 하나씩 몰아내자” 하며 남아있는 학내 여성주의 모임 리스트를 나열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수많은 총여학생회 활동가들이 총여 폐지의 주역으로 에브리타임과 그곳의 여론만을 학생회원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대표자들로 꼽을 만큼 백래시(backlash, 사회의 진보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동)가 심화되고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던 그때, 혐오표현의 수위는 절정에 달했고 에브리타임에는 폐지 찬성론자만이 입장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유니브페미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F5’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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