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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도 ‘나답게’…비혼여성 공동체의 화두는 상호돌봄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비혼들의 비행, 비비

 

 

나는 ‘비혼’(非婚)을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처음 접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결혼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비혼의 삶은 나의 이상이었다. 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앞으로도 나에게 만족스러울 삶이 무엇일지 찾아나가고 싶다. 비혼을 택해 비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사회는 이성애 혼인과 혈연 가족을 ‘정상적 관계’로 보았고, 복지와 제도는 그 ‘정상성’에 부합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졌다. ‘정상성’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제도 바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경쟁에서 각자 ‘잘’ 살아가는 것이 비혼의 이상과도 같이 얘기되곤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더이상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달리기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 지원과 제도의 미비,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가족’의 지원 없이 비혼여성은 어떻게 아프고 늙어갈 수 있을까. 익숙했던 내가 변해가는 것을 무너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노인여성 생활공동체를 준비하는 비혼여성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공간비비에서 열린 2018 비혼여성아카데미 “저기 비혼여성이 오고 있다!” (공간비비 제공)


비혼여성의 독립과 연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화두, ‘돌봄’


비혼은 혼자서 살아내는 ‘단독비행’처럼 얘기될 때가 많지만 동시에 ‘따로 또 같이’ 살아온 비혼공동체가 있다. 결혼하지 않고, 원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이 꼭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관계들을 이뤄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작은 움직임들이었다. 바로 ‘비혼들의 비행’(이하 ‘비비’)이다.


비비는 전주여성의전화의 비혼여성 소모임을 통해 서른 전후의 여성들이 ‘나답게 살기’ 위해 2003년 처음 모였고, 2006년 ‘비혼여성들의 공동체’로 정체화했다. 또 이들은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을 만들어 비혼여성과 지역사회 여성들의 네트워크 공간이자 비혼여성의 삶을 사회에 알리는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간비비는 올해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2020 성평등 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여성노인 공동체 주택 준비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비혼여성 공동체로 돌봄을 고민해온 비비는 돌봄이 필요하게 될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상호의존과 돌봄을 비혼 할머니가 되었을 때에도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사는 것이 비비다운 노년일지 고민하고 있다. 비비의 김란이, 봄봄, 이미정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비혼공동체 비비와 공간비비에 대해 알고 싶어요.


봄봄: 공간비비는 비비 멤버들과 다른 비혼여성들을 포함해 11명의 조합원이 운영하고 있어요. 공간비비를 이용하는 분들은 50여 명의 비혼/기혼여성들고요. 조합원 11명 중에서 저희 세 명이 공간비비에서 상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들의 모습. 왼쪽부터 김란이, 봄봄, 이미정. (촬영: 이지구)


김란이: 공간비비 조합원들의 2/3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1인가구 네트워크지만, 생활공동체를 표방하거든요. 공간비비는 네트워크 공간이에요. 정보나 자원을 연계해준다거나, 모임을 하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서로 나눠요. 조합원들은 이곳에서 직장, 주거, 가족 이런 고민을 나누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고 있어요.


Q. 오랜 시간 함께 해오셨으니 비비 안에서 서로에 대한 돌봄도 이뤄졌을 것 같아요. 비비에게 돌봄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란이: 2003년에 소모임으로 시작해 2006년부터 우리 스스로를 비혼여성 공동체로 소개했을 때부터, 비혼여성 공동체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고민해왔어요. 30대 때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고, 개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필요했어요.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면서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중요해졌죠, 또 우리만 살 수는 없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공간비비를 만들었어요.


관계라는 건, 결국 어떤 방식이든 돌봄을 통해서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공동체도 결국 돌봄이고, 살아가는 것도 결국 돌봄이고, 관계도 돌봄이고.


봄봄: 비비는 늘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화두로 잡아왔는데, 거리감만 다를 뿐 어떤 방식으로든 구성원들이 ‘부모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돌봄이라는 주제는 비혼여성 자신의 노화에 대한 문제이면서, 더불어 부모 돌봄의 문제이기도 해요. 우리는 혼인하지 않고 법적/제도적 틀에서 벗어난 비혼여성들이 노년의 삶에 필요한 돌봄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여성노인 공동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Q. 비혼여성으로서 돌봄에 대한 고민은 부모를 돌보는 것이 한 축이라면,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이 다른 한 축이라는 얘기네요. 비비의 구성원이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때 비비 내에서 돌봄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김란이: 비비는 오랜 시간을 같이하다 보니 서로의 삶에 대해서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고 무엇이 힘든지, 가족 상황은 어떤지를 거의 알고 있거든요. 누가 아프면 우리나라는 일단 가족이 책임지잖아요. 가족돌봄이 안 되면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러지 못하면 더 어려움에 처하는데…. 가족이 돌봐줄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사회 서비스가 아니라 신뢰하는 비비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비비 내에서는 나를 의탁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생기죠.


2019년 “비혼여성, 부모돌봄의 경험을 나누다” 행사에서. (공간비비 제공)


이미정: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만났을 때는 비혼인 게 서로 좋고 즐거웠어요. 근데 그 이상 만나다 보니까 서로가 각자 질환이나 질병으로 아플 때가 생기더라고요. 친한 사람이 장기입원이나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간병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지인들 중에 간단한 수술을 하는 경우에 머리를 감겨준다든지, 식사를 챙겨준다든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준다든지. 혼자 살아가는, 기혼인 분도 한두 분 있었는데,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경우에 도움을 요청하시면 우리가 가서 그 사람의 아픔이라든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돌봄을 함께 나눴어요.


병원 간병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요청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개인은 가족이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하고, 가족이 아닌 친구의 손을 빌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돌봄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보호자가 동반하거나 상주해 개인이 간병에 큰 책임과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희생이나 봉사를 강요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해, 사회 안에서 누구든 간호간병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Q. 비비 구성원들 간의 돌봄은 부모돌봄과는 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김란이: 병의 원인이나 치유가 분명하지 않은 질병을 경험하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의 삶을 공부했어요. 공부하지 않으면 점점 그 친구에게 공감하기 어려웠고, ‘정상’을 자꾸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었죠. 가족은 사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돌보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아니어서 생기는 ‘거리감’ 때문에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공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서운한 게 있으면 말하고, 모르는 주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을 거쳤어요.


또 다른 차이는 수술 동의권이 혈연가족에게만 있다는 점이에요 그 혈연 중에서도 부모 또는 오빠를 찾죠. 제가 옆에 있어도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원가족과) 전화로 연결해줘야 했어요. 성인인데 환자가 직접 서명하면 안 되느냐고 요구했지만, 돈이랑 책임소재 때문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Q. 비비 구성원들은 현재 1인가구로 같은 공공임대주택 안에서 살고 있잖아요? 노인여성 생활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미정: 각자의 삶의 형태와 기호를 따르다 보니, 전주시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우리에게 적합하고 입주하기도 손쉬운 방법이었어요. 지금 20가구 정도가 1인가구로 살고 있는데 느슨하고, 원할 때는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더 나이가 들고, 고령사회에서 고령화된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될 거잖아요, 그렇다면 비혼인 나는 누구랑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1인가구로 따로 살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해진다든지, 질환이 생겨서 혼자 독립적인 삶을 꾸리지 못한다면 노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우리가 노인이 되더라도 수동적으로 갇힌 노인보다는, 나와 우리가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움직여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독립적인 주거, 경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의 책임을 우선하지만, 노인여성 공동체로 살게 될 때는 개인의 영역이 축소되고 불편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보호받는 노인으로서가 아닌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기사는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노년에도 ‘나답게’…비혼여성 공동체의 화두는 상호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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