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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사진 촬영도 피했던 내가 관객 앞에 섰다!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④ 아픈 사람의 책임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아픈 사람들의 책임은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붉은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별표를 그렸다. 2년 전쯤 읽었던 <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 씀, 메이 번역, 봄날의 책, 2017)를 다시 펼쳤는데 ‘아픈 사람의 책임’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박혔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고 건강을 돌보는 절대적인 책임 외에 다른 책임에서 자연스럽게 면제된다. 그래서 다른 책임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오랜 시간의 질병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책임감은 마음에 균열을 냈고, 주저하던 내 등을 떠밀었다.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그동안 썼던 글들을 뒤적였다. 그중 두 개의 글을 고르고 [아픈 몸들의 질병 사사로 만들어지는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연극연습 중, 세번째 수술 후 근육경련이 일어났던 기억속으로 들어가자 눈물이 쏟아졌다. (사진: 다른몸들)


모자를 벗고,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내가 낭독극 지원을 주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대에 서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나는 무엇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방송반 활동을 하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책상다리에 걸려 넘어져 턱을 다쳐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스물여섯에 재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손상된 턱관절에 염증이 심해지면서 턱뼈가 녹아내렸다. 아래턱뼈는 뒤로 밀려들어갔고, 위턱뼈는 위로 들렸다. 턱뼈에 연결된 치아는 교합이 완전히 어긋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어졌다. 모자를 눌러써서 내 얼굴과 시야를 가렸다.


세번째 수술을 받아서 회복되던 중에 갑자기 전신의 근육경련과 경직이 시작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고 단단한 끈처럼 연결된 근육이 사방에서 잡아당겼다. 조금씩 회복되던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몸이 굳어지면서 얼굴에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의 정도와 방향에 따라 얼굴 근육은 급격히 수축되고 변형되었다.


수술 후 잠시 벗었던 모자를 다시 눌러 썼다. 이후 오랜 기간 재활에 몰두했지만, 자궁과 난소의 질환까지 겹쳐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노력만큼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육체의 아픔만큼 마음의 벽도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신청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낭독극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문자와 메일을 받은 순간에도, 귀찮음과 두려움의 감정이 설레임을 압도했다. 내 몸이 언제 통증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데 매주 연습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얼굴 근육이 갑자기 수축되면 숨쉬기도 힘들어지는데 괜히 시작한 일이 아닐까? 이십 년 가까이 사진 찍는 것도 피했는데, 모자를 벗고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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