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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의 절망을 알고 싶지 않았다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⑦ 연극이 끝나고 난 후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자주 울음이 터졌다. 서로의 질병 서사를 이야기할 때, 연습하면서,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리고 공연 때도. 자꾸 울컥하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크론병을 모른다. 동료 아니(안희제)가 처음 크론병을 말한 날, 나는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창에 크론병을 입력했다.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 설명을 읽어도 어떤 병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레아(홍수영)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은 날, 역시 나는 레아가 앓고 있다는 근육병을 검색했다. 마찬가지로 지식백과가 알려주는 정의를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현병에 관해서도 환청이 들린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암 환자의 삶, ‘수술과 재활을 반복’해야 했던 삶에 관해서도.
연습을 하면서 자주 울음이 터졌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연극 연습 모습 ⓒ다른몸들
우리의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여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배우들은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여러 인물로 등장한다. 첫 번째 레아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의 병을 부담스러워하는 지인 역할을 맡았다. 대사를 처음 읽고, ‘어떻게 아픈 사람에게 이럴 수 있지, 너무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그 대사를 읊고 나니, 처음에는 무정하다고 여겼던 그 사람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을 눈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 나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었을까? 나는 아픈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나는 병가 내는 동료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화상으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난소에 혹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발등의 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난소에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혹을 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일을 겪었더라도, 나와 다른 질병이 있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고, 아픔의 종류, 세기, 위치도 모두 다르다. 내가 이해하는 건 내 아픔뿐. 세상이 겪는 고통을 고통이라는 말 안에 모두 넣을 수 없는 것처럼, 무수한 아픔을 아픔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레아에게 지인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대신 어떤 말과 행동을 했으면 좋았겠냐고 물었다. 나 자신을 위한 질문이었다. 눈앞에서 누군가 아픔을 드러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 질문에 대한 답,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은 레아의 마지막 대사가 되었고, 나는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법을 하나 배웠다.
아픈 사람이 왜 일을 하려고 하는지 못마땅하게 여기는 역할도 맡았다. 마찬가지로 처음 이 역을 연습할 때는 혼란스러웠다. 현실에서 나는 결코 저런 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픈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할까? 병원에 간다고 자주 휴가를 내는 동료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방암 4기 생존자인 쟤는 암보다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호소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의 절박함을, 나는 이 연극이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아픈 몸들을 몰랐다.
동료 배우 쟤와 함께 ‘아픈 사람이 왜 일을 하냐’고 못마땅해하는 장면을 연습하는 모습 ⓒ다른몸들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좋아하지만, 늘 같은 구절에서 멈칫하곤 한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다른 사람의 절망, 고통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고통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다른 이를 어떻게 위로한단 말인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웅크린 채로 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의 아무도 되고 싶지 않았다.
무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
우리는 전문 배우가 아니다. 나는 배우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 연기는 처음이다. 내 안의 날 것을 꺼내는 작업은 흥미롭고 즐겁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컸다. 연습은 버거웠고, 컨디션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열정을 다해 연습하는 배우들을 보며 울컥했다. 배를 움켜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그, 더위에 수건으로 이마를 쓸며 힘겨워하는 그, 잠깐 쉴 때마다 누워서 이마에 손을 얹은 채로 숨을 고르는 그, 잠 못 이루며 긴 대사를 외운 그.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되고 싶었다.
연습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주 ‘괜찮으냐’고 물었다. 공연을 2주 정도 앞두고는 더더욱 서로의 몸 상태를 살폈다. 연출자는 우리에게 언제든 앉고 싶을 때 앉고, 쉬고 싶을 때 쉬라고 했다. 나는 그 말대로 연습 중에도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잠시 숨을 골랐다. 무엇이든 과제를 하듯 성실하게 임하는 편인 내가 단체 작업에서 혼자 다른 흐름을 타는 건 예전에는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오가느라 힘들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말을 편하게 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살뜰히 챙겼고, 따뜻하게 바라봤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첫 공연을 마친 날 밤, 몸은 엄청 피곤한데도 잠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서야 왜 무대에 서려고 하는지, 무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에게 물었다. 물론 내 의지로 연극에 참여했지만, 기획자에 대한 신뢰가 더 큰 동기였다. 사회, 관객과의 소통에 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맡은 소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던 내게,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극 중 배경으로 등장한 대한민국 출산지도와 필자 다리아의 모습. ⓒ다른몸들
무대에서 배우들은 생동감 넘쳤고, 살아 있었다. 최선을 다해 아픈 몸을 세상에 던지는 그들을 보니 공연 중에도 울음이 터졌고, 그치려고 무던히 애썼다. 무대는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구나. 마지막 공연에선 나도 무대에서 살아 있고 싶었다. 해서, 정말 내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골랐다. 대본을 쓸 때는 생각지 못했지만 평소에 하던 생각. “주변에 무참히 버려지고 쓰러지고 짓밟히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왜 새 생명만을 원하나요?”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 대신 주변에 있는 생명을 돌보라고 무대에서 외치고 나니, 기분이 훨훨 날았다. 나에게도 세상에 던지고 싶은 말이, 꺼내지 않은 울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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