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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아니면 실패? n개의 질병 서사 복원하기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⑩ 질병 세계의 언어 만들기(2)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기획자와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우리 사회에서 질병은 여전히 과도한 두려움과 비극 속에 갇혀 있다. 생명체로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필연이다. 하지만 질병을 겪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면 질병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비극적 사고도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잘 수용되지 않는다.
생명의 순환인 생로병사 속 일부인 질병을 비극으로만 만들고, 질병을 제대로 겪을 수 없도록 만든 사회. 아픈 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회. 그런 사회를 벗어나 질병권(疾病權)이 보장되는 사회, 잘 아플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차별 없이 아플 수 있도록 평등한 의료 접근권이 보장되고,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상병수당 도입 및 아픈 몸 노동권이 보장됨으로써 생계 및 사회 활동이 보장받으며, 안전하고 평등한 죽음이 보장되는 사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질병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아픈 몸 앞에 ‘회복 혹은 실패’라는 두 가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좀 더 명확해져야 한다.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대로 존중되며, 아픈 몸에 대한 극복과 죽음 사이 N개의 서사가 복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질병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아픈 몸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저항적 질병 서사의 확장은 질병권 운동의 첫걸음인 셈이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중. 수영이 자신의 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다른몸들)
주위 사람들의 ‘질병에 대한 몰이해’도 고통을 준다
이번 글도 지난 주에 이어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시민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저항적 질병 서사를 짚어 보고자 한다.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를 스치듯이 보고 스치듯이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근육병을 가진 수영은 근육병으로 인한 경련 때문에 표정과 움직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컨디션 상태에 따라 어떤 날은 너무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질병의 특성을 모르는 이들은 수영을 오해하거나 부끄러워한다. 무지한 건 그들인데, 그들의 무지 때문에 수영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아픈 몸들은 자주 의구심 앞에 놓인다. 크론병과 살고 있는 대학생 희제 또한 증세로 인해 자주 병결 신청을 하지만, 학교나 동료들은 꾀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학교생활을 위해 희제는 교수는 물론 조교나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 설명은 자주 수용되지 않고 미끄러진다.
희제가 통증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 (출처: 다른몸들)
평생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질병에 대한 몰이해는 그 자체로 고유한 ‘통증’이 된다. 그 통증은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방법은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다양한 질병 서사에 노출되는 것, 그리고 다른 아픈 몸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번 연극이 관객에게는 질병 서사에 접속하는 자리였고, 시민 배우들에게는 다른 아픈 몸들과 연결되는 장이었다. (전체 기사 보기: 회복 아니면 실패? n개의 질병 서사 복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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