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왜곡되고 부정적인 트랜스젠더 이미지의 출처는?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가 폭로하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의 포스터. 디스클로저(Disclosure)는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 혹은 비밀을 밝히는 폭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Netflix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취소’ 재심 요청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인으로서 소명에 충실하고자 한 변 하사의 의지가 다시금 좌절된 건 물론이거니와, 한국은 여전히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차별사회임을 보여주는 슬픈 역사의 장면이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2020년은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그런데 실제 2020년은 차별금지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높은 세상이다.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 서명이 20만명을 넘길 정도로,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가 가득하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의 공간에 침입하는 자로 간주하며, 트랜스젠더 남성은 없는 존재로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사실 많은 사람이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마주해 본 적도,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을 거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된 트랜스젠더 이미지’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Disclosure, 샘 페더 감독, 2020년)는 그게 미디어의 영향이라고 ‘폭로’한다. 오랜 시간 미국의 영화/TV 스크린에서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문제적으로’ 다뤄왔는지 추적하고, 그것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주변인 그리고 미국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가 스크린에서 재현되어 온 방식을 설명하는 배우들. 그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설명한다. ©Netflix


누가 ‘변태’,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로 묘사되는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 1990년대의 대표적 스릴러 <양들의 침묵>(조나단 드미, 1991년)엔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이 나온다. 그는 ‘여성’이 되고 싶어서, 여성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죽을 이용하는 사이코패스 트랜스젠더로 묘사된다.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싸이코>(알프레드 히치콕, 1960년)에도 연쇄살인범 노먼이 여장을 하고서 여성을 죽이는 공포스런 장면이 등장한다. 히치콕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1984년)에서도 ‘여장남자’가 여성을 죽인다.


이렇듯 할리우드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같은 공포스러운 캐릭터로 그리는 방식은 오래 계속되어 왔다.


트래스젠더 배우 젠 리처즈는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버팔로 빌처럼 되겠다고?’라고 들었던 걸 잊지 못했다. 재능있고 똑똑하며 교육도 잘 받았고 세상 물정 밝았던 사람조차 트랜스젠더에 대해선 굉장히 제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아예 찾아보기 힘든 트랜스남성


미디어가 트랜스여성을 ‘사이코패스 여장남자’로 묘사했다면 트랜스남성은 오랫동안 아예 등장시키지 않았다.


미국에서 트랜스남성이 고정적인 배역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난 건 <엘 워드>(the L word, Showtime 2004~2009년 방영)에서다. 엘워드를 처음 봤을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데, 시즌1의 1화부터 과감한 섹스 씬이 나왔다는 것 외에도 LA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레즈비언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TV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성애자/성소수자는 불행하다’는 기저가 깔린 이야기를 주로 접했던지라 <엘 워드>의 등장인물과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디스클로저>는 레즈비언 드라마 <엘 워드>가 트랜스남성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Netflix


그렇게 기념비적 콘텐츠인 <엘 워드> 시즌3부터 트랜스남성 맥스가 등장한다. 그는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암시장에서 테스트론을 구해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시작한다. 그리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고, 여성을 좋아하던 성적지향도 남성을 좋아하는 걸로 변한다. 물론 그의 성적지향이 애초에 바이섹슈얼이나 판섹슈얼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이 이입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들쑥날쑥 했고, 트랜스남성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거다.


이렇게 맥스가 트랜스남성 캐릭터로 TV에 나오고 있을 때 실제 트랜지션을 하고 있었던 배우 브라이언 마이클 스미스는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문제적이었다고 말한다. 주변에 참고할 만한 트랜스남성이 없을 때, 미디어에 등장한 유일한 트랜스남성이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다.


거기다 <엘 워드>는 트랜스남성이 ‘된’ 맥스를 배신자로 그린다. 작가 지크 스미스는 <엘 워드>가 트랜스남성을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버리고 페미니즘에도 반하는 존재로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계속됩니다) 

 

이어진 전체 기사 전체보기: 트랜스젠더 미디어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김서화 지음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미디어일다

 

일다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서 보세요!  일다 뉴스편집판 구독 신청!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