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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의 퀴어한 진화, 퀴어페스
<2020퀴어돌로지>④ 퀴어팬덤의 케이팝 서사놀이
케이팝 아이돌이 세대를 거치며 변화한 모습을 드러내고 ‘퀴어함’(Queerness)을 차용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면, 팬덤 역시 변화를 거쳐오고 있다. 팬픽도 마찬가지다. 단지 동성애 서사를 다루는 RPS(Real Person Slash, 알페스)가 아니라, 더 많은 다양한 퀴어함을 다루는 ‘퀴어페스’가 등장한 거다.
팬픽과 알페스(RPS) 모두 아이돌 멤버들을 엮는 ‘커플링’을 기반으로 한 연성이 기본이다. 팬픽이 소설 형식을 띈다면 알페스는 ‘썰’이라 불리는 짧은 글부터 긴 글, 그림, 영상, 소설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즘은 알페스가 통용적으로 쓰인다.
퀴어들의 서사 놀이, 퀴어페스
<2020 퀴어돌로지> 두 번째 세미나에서 퀴어페스 팬픽들을 소개한 윤소희 서울퀴어세제션 객원멤버는 “퀴어페스와 알페스의 차이는 모호하기도 하고, 명확하기도 하다”고 했다.
“등장인물이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묘사가 등장하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는데, 특히 중요한 부분은 인물이 자신이 ‘정상성’ 바깥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러니까 퀴어페스는 ‘정상성’과 떨어진 “부치텀 서사, 젠더퀴어 서사와 무성애자의 로맨스 서사 혹은 로맨스가 배제된 무성애 서사, 그리고 퀴어 대안가족 이야기 등”을 포함한다.
발제 중인 윤소희 서울퀴어세제션 객원멤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기자
이는 넓은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성별 정체성 혹은 성적지향을 찾고자 하는 퀴어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퀴어페스 서사의 등장은 퀴어 스펙트럼에 대한 논의가 다양해진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린다.” 윤소희 씨는 “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퀴어함을 찾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퀴어페스가 나오게 됐다는 거다.
알페스를 하는 팬덤에서 주로 하는 놀이는 “실제 아이돌 멤버가 하는 행동(2차 창작의 기반이 된다는 의미에서 ‘1차’라고 불리기도 한다)에서 생겨나는 특정 행동과 발언 등으로, 관계성이 드러나는 일명 ‘떡밥’을 가지고 추가적인 상상력을 덧붙이는 떡밥놀이”다.
“이런 놀이가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라면서 윤소희 씨는 “그룹 내 멤버들 간의 연대감, 실제로 그 관계를 증명하는 서사 등의 1차 떡밥과,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되고 덧붙여진 이야기인 2차 떡밥”을 들었다. 이것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1차와 2차의 관계 속에서 소비러(소비하는 사람)와 연성러(창작물을 만드는 사람), 주접러(연성러의 창작물을 가지고 노는 사람) 3요소가 얼마나 모이는지에 따라 알페스 팬덤의 규모가 결정된다.”
서울퀴어세제션 객원 멤버 윤소희의 발제 자료 중. ‘무성애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퀴어페스 서사 ©윤소희
퀴어팬덤의 이러한 서사 놀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윤 씨는 “놀이는 영유아의 발달에 있어서도 없어서 안될 필수적인 요소다. 놀이는 세상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세계,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통로 등으로 표현된다”는 말로 설명했다. 즉, “퀴어가 퀴어로 정체화하는 과정, 그러니까 자신의 삶과 구성 요소가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대중문화’로 여겨지기에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케이팝 아이돌 팬덤에서 알페스 놀이는 “타인들과 퀴어 커뮤니티에 대해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용이한 창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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