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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됨과 작가됨은 양립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 16인의 에세이 『분노와 애정』



『분노와 애정』은 캐나다 사진작가 모이라 데이비(1958~현재)가 첫 아이를 출산한 후, 개인적인 동기 부여를 위해 찾아 읽은 16인의 여성·작가·페미니스트·엄마(1인 제외)들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여성들의 몸, 그중에서 특히 ‘엄마됨’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정체성으로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세상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에서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시인이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운동가 에이드리언 리치,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르 귄 등이 등장하여 서로를 인용하고, 수용 또는 비판하면서 그물처럼 엮이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열여섯 명의 여성 작가들은 분노와 애정이라는 배타적 감정, 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한 몸과 한 생애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한다. 독자들은 이들의 글쓰기가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함께 역사의 어떤 변곡점을 만들어왔는지도 엿볼 수 있다.


『분노와 애정』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시대의 창, 2019


수전 그리핀(1943~현재): 페미니즘과 엄마됨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훼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불쾌하지 않았다. 그 평화롭고, 주름 없는, 젊은 마돈나의 얼굴이 영영 사라지기를, 아니면 적어도 금이라도 가기를 어느 정도 바랐다. 그렇게 그녀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흔적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필자가 지금 엄마의 위치였다면, 수전 그리핀의 저 짤막하고 ‘불경스러운’ 글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았을지 모른다. 그런 가정을 하고 보니, 그녀가 표출하는 내밀한 감정, 예컨대 양육에 따르는 분노, 그 감정에 따르는 죄책감, 피곤함과 귀찮음에 모두 적잖이 공감이 간다.


『분노와 애정』을 엮은 모이라 데이비는 수전 그리핀이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애쓰지 않으며” 용기 있게 “자기 아이에 대해 적나라한 발언을 지면에” 실었다고 그녀를 소개한다.


수전 그리핀은 사회가 주는 억압, 사회의 기대와 현실이 주는 간극에서 오는 모순을 경험하며 엄마됨을 사유한다. 그녀에게 엄마란 자신이 사라지고, 희생해야 하는, 아이를 삶의 중심으로 두고, 아이를 통해 살아가야 하는, 그래서 아이의 자아와 일치되지만, 아이가 떠날 때는 자신을 전부 잃게 되는 상실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캘리포니아의 법이 바뀌기 전이었던 스무 살 때 나는 낙태를 했다. 의사는 수술을 빨리 마쳐야 했기에 마취를 하지 않았다. 적발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 4개월이었고 수술은 45분 동안 이어졌다. (중략) 수술이 끝난 후 내 모습에 깊이 감명 받은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진짜 여자가 되었군요.”


모성에 대한 그녀의 사유는 그녀의 몸과 몸이 맞닿은 수술대처럼 차가운 현실에서 시작된다. 《분노와 애정》에 실린 이 글은 수전 그리핀이 1974년, 싱글맘들을 위한 신문, 《모마 Momma》에 기고한 것으로, 이혼 6년 후 홀로 딸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는 작가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자신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모든 책임과 불평을 엄마에게 떠넘기는 사회 구조에 불만을 제기한다. 자녀 양육 전문가들의 엄마와 여성에 대한 몰이해와 아이 중심적 사고가 엄마들을 “제한된 분노, 제한된 섹슈얼리티, 제한된 이동성”으로 억압하고 있다고도 일갈한다.


아이를 돌보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남자는 아이 돌보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여성은 힘이 없다. (중략) 엄마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는다. 엄마들은 이상화된다. 엄마들은 미움 받는다.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여자들은 미쳐간다. 우리는 위험한 삶의 질서를 살아간다.


이 글에서 작가는 당시의 인습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거듭 던진다. 그전까지 엄마들이 ‘감히’ 던지지 못했던 의문들로 글을 도배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엄마의 입장이 되어 본 적 없는 필자로서는 ‘감히’ 던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역시나, 수전 그리핀도 이 모든 부정의(不正義)에 대한 인식이 “여자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여자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때부터 여성이 겪는 그 모든 고난이 불합리해 보이기 시작했다.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 분노와 애정


하지만 분명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욕구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꼈고 그 욕구를 난폭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잦았기 때문이다. (중략) 그 시절에 나 자신을 소모했던 것이 슬프고,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훼손되고 조작되는 것에 분노한다.


여기 또 한 명의 분노하는 여성이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와 고통이 시작된 지점을 집요하게 탐구하다가, 그 “고통이 사랑의 막대함과 필연성에서 생겨”난 것임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모성(애)이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부정한다. 이러한 성찰 끝에 그녀는 엄마됨이 “인간의 조건이 아니다”는 결론에 이른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선과 악, 생식력과 불임, 순수와 불결”로 양극화 하였으며, 이것이 여성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밝힌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 글, <분노와 애정>에서 양가감정의 모성을 비롯하여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모성 신화, 가부장제, 부불 노동, 제도화된 엄마됨, 강요된 이성애, 동성애(와 교차 페미니즘) 등 소위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화두와 3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서막을 예고하는 담론을 자기 몸 위에서 거침없이 던진다. 이 모든 것은 “진정한 신체와 진정한 정신에서 철저히 소외”된 자기 몸을 부단히 써가면서(writing the body) 밝혀낸 것으로, 페미니즘에서 자기 탐구가 얼마나 중요한 이론과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지 필자에게 상기시켜주었다. 


결국 내가 열중한 것은 여성 개인이 할 수 있는 한, 다른 여성과 손잡고 최선을 다해서 정신과 신체의 분리를 없애겠다는 결심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다시는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나는 점차 “나의”엄마됨 경험에 있었던 모순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발견하고, 엄마라는 위치에서 느끼는 양가감정(분노와 애정) 즉 모순이 비정상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기까지, 자기 내면을 거침없이 탐구하였고, 자신과 세상과의 괴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혼 후 남편이 자살을 한 것은 평생 그녀의 십자가였겠지만, 결국 자기 몸의 족쇄에서는 해방된다.  (기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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