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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침묵과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 공동체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이 가르쳐주는 것


고양이 함푸스가 죽었다. 함푸스가 옆집 지하실에 쓰러져 있었다. 어른들 이야기로는 차에 치인 채 지하실에 들어갔고, 거기서 생을 마감한 것 같다고 했다. 함푸스를 잃은 아이는 심장이 쾅쾅 뛰었다.


슬플 것 같은 도입부 내용이지만, 나는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을 꺼내게 된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은 작은 섬마을에 일어난 고양이 사망 사건의 범인을 찾고, 애도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그뤼 모우르순 글 그림, 한주연 역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원제: Tre Biler Og En Dod Katt) 찰리북, 2017


고양이의 죽음, 범인을 찾아 나선 아이들


사고 이후, 아이와 친구들이 모였다. 올레모튼, 토네, 동생 랏세 앞에서 아이는 슬픔과 당혹감에 고개를 수그리고 있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


맨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이 대사가 주는 생경함과 후련함에 깜짝 놀랐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인식과 외침이라니! 그동안 나는 이런 여자아이 캐릭터를 그림책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어디 캐릭터뿐인가. 나 역시 이런 외침은 감추는 데 익숙하다. 누군가 잘못했더라도 굳이 들추지 말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범인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검열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이 섬에는 자동차가 딱 세 대뿐이니, 세 집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한 것이다. 알록달록한 망토를 두른 아이부터, 자전거 뒷자리에 곰 인형을 태운 막내까지, 아이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바닷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간다. 모두 힘껏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 장면이 어찌나 멋지고 근사한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은 유력한 용의자인 가겟집 아저씨의 찌그러진 차를 살피는 것부터 수색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두고 ‘망할 똥덩어리’라고 고함치는 괴팍한 할아버지네 집을 거쳐, 섬 반대편 택시 기사 아주머니네 집까지 두루 방문한다. 그러다 마침내 범인의 자백을 듣게 되는데….


노르웨이 작가 그뤼 모우르순 그림책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 중에서


고양이 사망 사건을 대하는 마을공동체의 윤리


다음 날, 함푸스의 장례식이 열린다. 엄마와 아빠는 무덤 만드는 걸 도와주었고, 친구들은 금잔화와 데이지꽃을 가져왔다. 앞집 아주머니와, 한때 용의자였던 이웃들도 찾아왔다. 그런데 이 장례식에 올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사고를 낸 사람, “고양이 살해범”은 저 아래 길가에 그냥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여기에 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이 정말로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책임과 반성을 표현하는 것, 이웃들은 이웃대로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를 저기 외따로 두는 불편함을 견디는 것, 이것이 고양이 사망 사건을 책임지는 마을의 윤리 아닐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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