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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두려워하고 금지하는 ‘선생님’들에게 권하는 책

슬로베니아 그림 동화 『첫사랑』


스물여섯이 되는 생일날, 밤기차에 타고 있었다. 겨울 바다를 여행하기로 한 친구들 몇은 먼저 내려갔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S와 만나 뒤늦게 출발했다. 자정이 넘은 어느 순간, S가 내 앞에 촛불이 켜진 작은 케이크를 내밀었다. 기차에서 불이라니, 얘는 어쩜 이런 일을 벌이나! 놀라서 화가 났다. 서둘러 촛불을 끄고 손으로 연기를 휘휘 저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S는 내 속은 모르는 듯, 언젠가 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군밤 장수 모자를 내밀었다. 부끄럽게 선물을 건네는 S를 보자니 혀가 끌끌 차졌지만, 그보다 이 상황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첫사랑』 (박지니 역, 움직씨, 2018)


퀴어 페미니스트 출판사 움직씨에서 출간한 『첫사랑』. 작고 예쁜 그림과 판형이 눈에 띄어 무심히 펼쳤다가, 설레고도 애잔해서 여러 감정과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부산 바다를 같이 갔던 S도 떠올랐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느낀 어느 날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썼던 내 창피한 일기장도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이불킥하며 고개를 파묻게 되는 지난 내 모습들이.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첫사랑』


『첫사랑』의 주인공은 여섯 살 남자아이다. 아이는 시골 할머니 댁에 살다가 엄마와 단둘이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낯선 환경과 동의할 수 없는 유치원 규칙들로 아이는 자꾸만 눈물이 터지고,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드레이크를 만나서다. 드레이크는 또래들 사이에 대장 노릇을 곧잘 하는데, 거친 친구들이 아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지켜준다. 산책 중에 혹 아이가 뒤처지면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아이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걸 잘 들을 줄 안다. 아이는 드레이크와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어느새 둘은 단짝이 된다.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첫사랑』 중에서. (박지니 역, 움직씨, 2018)


아이의 꿈은 가수지만, 또래들한테 웃음거리가 될까 봐 늘 혼자 숨어서 노래를 한다. 그런데 드레이크 앞에서라면 용기가 난다. 파랗고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드레이크를 보면, 아이는 기뻐서 더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드레이크랑 있으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 유치원 뒤뜰 둘만의 수풀 공연장에서 드레이크를 위한 공연을 펼치기로 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여자 가수처럼 빨간 스카프를 몸에 두르고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며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 모습을 본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을 꾸짖는다. 마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굳은 얼굴로 다시는 이런 놀이를 하지 말라며 혼내고, 두 아이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겨울이 되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 만에 유치원에 나오게 됐다. 반가움에 들뜬 드레이크가 달려와 아이를 꼭 안아 주며 뺨에 뽀뽀하는데, 선생님이 달려와 두 아이를 떼어 놓고 소리친다. 


“뭐 하는 짓이니? 그 애는 여자애가 아니야!” (계속됩니다) 

 


▶ 국가, 분단…거대서사에서 비켜나 ‘북한’을 기록하다 『나의 살던 북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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