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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정의 없인 자긍심도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의 메시지


6월은 퀴어대명절이라고 불리는 ‘퀴어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열리는 일명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다. 보통 때라면 각국에서 퀴어 인권 행사들이 열리고 특히 퍼레이드 소식으로 들뜰 때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하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자긍심의 달 관련 행사와 퍼레이드가 쉬는 걸로 결정되거나 연기되었다. 온라인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 곳들도 있다.


그리고,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금 자긍심을 축하하기보다는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대낮에 아무런 이유 없이 백인 남성 경찰에 의해 목을 눌려 살해당한 사건을 기점으로 인종차별(Racism)과 반흑(Anti-Blackness) 정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퀴어 인권단체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자긍심의 달 축하 메시지 대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 연대하며 ‘정의 없인 자긍심도 없다’(No Justice No Pride)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 중에서 마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  ©Netflix


이런 시기이다 보니 미국 퀴어 인권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인, 흑인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 마샤 P. 존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너머: 드래그 퀸 마샤 P. 존슨>(The Death and Life of Marsha P. Johnson, 데이비드 프랑스 감독, 2017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마샤 P. 존슨이 퀴어 커뮤니티에 남긴 것


1992년 7월 6일, 만 46세의 나이로 사망한 마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 없이 자살로 결론 냈다. 영화는 25년이 지난 후, 마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혼자 조사에 나선 성폭력 생존자이자 반성폭력 운동가인 트랜스젠더 여성 빅토리아 크루즈를 좇는다. 그러면서 마샤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를 흑인이자 트랜스여성, 성판매여성, 그리고 인권운동가로 살았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명한다.


또한 미국 경찰과 사회가 마샤의 죽음을 방치한 것이나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마샤와 그의 친구들을 주변부로 밀어내려 했던 것이 인종차별, 계급차별, 트랜스젠더 차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마샤 P. 존슨은 현대 미국 퀴어운동의 주요 기점이 된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이 시작된 현장에 있던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게이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 모여 있던 퀴어들은 그동안 반복되어 온 경찰의 폭력적인 불시 단속에 반발했다. 경찰에 맞선 그들의 행동은, 차별과 혐오에 지친 퀴어들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인 스톤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샤는 그 역사를 만든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마샤와 그의 친구 실비아 리베라(Sylvia Rivera, 1951-2002. 라틴계 비백인이며 마샤와 함께 트랜스젠더 운동사의 주요 인물)를 비롯한 비백인 드랙퀸/트랜스베스타잇(당시 용어와 달리 현재는 주로 트랜스젠더로 해석된다)들의 역할은 스톤월 항쟁 이후 탄력을 받은 백인 동성애자 중심의 ‘게이 해방운동’(Gay Liberation Movement) 속에서 흐릿해진다.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 행진에서 실비아 리베라가 연설하는 장면 ©Netflix


1973년, 지금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 행진’(Christopher Street Liberation Day Rally)에서도 드랙퀸들이 제일 뒤로 밀려났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드랙퀸들의 모습이 너무 ‘유별’나서 부끄럽다며 행진 앞에 서는 걸 반대한 탓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실비아 리베라의 연설은 그런 상황을 정확하게 비판한다.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오른 그는 자신도 게이 해방운동에 힘써왔지만, 지금 게이 해방운동이 중산층 백인 동성애자 중심으로, 그들의 목소리만을 반영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난 오늘 하루 종일 여기 올라오려고 애썼어요. 감옥에 있는 당신의 동성애자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요. 그들은 매주 내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구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중략) 당신들은 나한테 숨어라,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죠. 난 더 이상 못 참아요. 전 맞아봤고, 코도 부러져봤고, 감옥에도 가 봤고, 직업도 잃어봤고, 집도 잃어봤어요. 게이 해방운동을 위해서요! 근데 절 이렇게 취급할 수 있죠? 당신들 대체 왜 그래요?”


당시의 게이 해방운동이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소수 집단을 배제했던 문제는 지금과도 완전히 무관하진 않다. 2015년에 개봉한, 스톤월 항쟁을 담은 영화 <스톤월>(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주요 배역들을 백인으로 구성해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미디어, 특히 영화/TV에서 비백인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일, 혹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면서 사실과 상관없이 백인을 중심에 두는 일)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마샤 또한 당시 게이 해방운동을 이끌었던 ‘게이해방전선’(Gay Liberation Front)에 합류해 활동했지만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주에도 게이 활동가 모임에 갔는데 남성 동성애자들은 한 명도 나한테 와서 인사를 안 하더라. 인사하더라도 인사‘만’ 하고 급하게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샤 P. 존슨 연구소 홈페이지 사진. 우리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 연대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을 고민할 수 있다.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할 수도 있고, 관련 단체를 후원할 수도 있다. 한국 내의 흑인과 연대자들이 한글로도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고, 유튜브에서도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마샤는 1970년 실비아와 함께 ‘거리 트랜스베스타잇 행동 혁명가들’(STAR: Street Transvestite Action Revolutionaries)을 설립한다. 비백인 게이, 드랙퀸, 트랜스베스타잇 그리고 홈리스 퀴어 청소년과 퀴어 성노동자들을 위해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 쉼터를 만들어 운영했고, 감옥에 갇힌 드랙퀸/트랜스베스타잇을 구명하는 일을 했다. 마샤는 본인 또한 집이 없는 상태로 전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STAR를 이끌며 많은 이들을 위해 애썼다.


하지만 STAR는 오래 가진 못했다. 1973년 행진에서의 일 이후, 실비아는 게이 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그만뒀고 뉴욕을 떠났다. 길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STAR는 당시 주류 게이 인권운동이 보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거리의 비백인 퀴어들, 청소년들, 젠더규범에 어긋난 드랙퀸과 트랜스베스타잇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활동은 이후 트랜스젠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계속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미디어일다의 책 <나는 뜨겁게 보고 차갑게 쓴다> 세상과 사람과 미디어에 관한 조이여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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