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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A 인플루엔자’ 관련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세계의 A독감 의심환자 수와 사망자 수가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고, 멕시코에서 시작되었지만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어 전세계적 전염병으로 700만의 목숨을 앗아갈 인류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예측도 더해지고 있다. 의심환자의 자택 격리, 멕시코 여행의 자제 권고, 국경폐쇄조치에 대한 고려, 빠른 시일 내의 백신 개발에의 호소 등, 잇달은 보도에 사람들은 불안하고 공포스럽기만 하다.
 
‘돼지독감’이 아니더라도… 
 

"사육과 육식" 표지 이미지 중에서

전염병이 가라앉을 조짐이 전혀 없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는 갑작스레 독감의 이름을 바꾸었다. 멕시코 돼지에서 이번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돼지독감’이라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A 인플루엔자’로 부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과학자들은 돼지에서 현재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못했다고 해서 돼지독감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기사, SI 발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멕시코의 마을 역시도 전형적인 공장식 사육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대규모 양돈농장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농장의 돼지오물로 인해 악취와 파리떼가 들끓는 곳이라는 기사, 그리고 1년에 100만 마리 이상의 돼지고기를 생산해 내는 그 대규모 양돈 농장의 대주주가 미국 최대 규모의 돼지고기 가공업체라는 기사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과연 이번 독감이 정말로 돼지와 무관한 것일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이름변경 발표에 뒤이어, 이름 때문에 죄 없이 살처분된 돼지를 애도하며 돼지가 누명을 벗었다는 둥, 억울하게 돼지고기 소비가 줄어 피해를 입은 축산 농가를 안타까워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가축에서 인간으로의 전염병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미 조류독감(AI)으로 경험한 바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돼지독감이 조류독감보다 더 공포를 조장했던 것은 가축의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인간들끼리도 전염되는 2차감염을 유발하는 위험한 질병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염병이 돈다고 알려지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질병이 의심되는 가축부터 매몰 살처분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해왔다. 감염이 대다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또 고기섭취에 큰 지장이 없는 한, 그 병으로 사망한 사람이나 가축을 잃은 농부에게나 비통한 문제였을 뿐, 전염병과 무관한 일반 대중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전염병에 노출되지 않은 축산업자는  고기소비가 줄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번 독감이 비록 돼지에서 유래한 전염병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가축에서 유래하는 전염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인간에게 전염되건, 되지 않건, 가축의 전염병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가축이 그토록 심각한 전염병에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면, 전염병이 조류에서 생겨났건, 돼지에서 생겨났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그 전염병이 왜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에도 근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독감이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며, 끝날 일은 아니다. 여전히 인류는 가축에서 유래하는, 더 위협적인 독감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가축의 열악한 사육환경, 돌아봐야
 
무엇보다 먼저, 가축에게는 가축의 모든 전염병이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류독감에서 보더라도, 전염병 최초 희생양인 살상당한 가축에 대한 동정심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축의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가축의 생존권에 대한 관심은 빠져 있다. 이번 독감이 돼지에서 시작되지 않았으니 돼지가 누명을 벗었다는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비록 돼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돼지의 누명은 벗겨줘야 할 일이니 말이다.
 
가축이 전염병에 취약하게 된 것은 기업식 축산의 공장식 사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축산업자들은 집약적 영농법을 선택한 것은 비용절감과 생산량 증가를 위해서였다. 과밀수용이나 좁은 우리에 감금, 자연채광보다는 인공조명에 의존한 빛조절, 움직임 제한, 자동장치를 통한 먹이공급, 성장호르몬 처방이나 고농축 단백질 먹이, 도축 전 굶기기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한 공장식 사육으로 가축을 단시간에 적은 먹이로 빨리 살찌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축산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된 이래, 가축은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가 아니며, 소비되어 이윤을 가져다 줄 상품으로 전락했다. 닭은 달걀 낳는 기계, 암소는 우유생산기계, 암퇘지는 돼지생산기계일 따름이다. 비록 동물의 고통을 감안할 때조차도 체중이 감소되거나 상처가 생겨 이윤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서이다.
 
이처럼 본능을 억압당하고 동물세계의 질서를 무시당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면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가축은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되거나 사망율도 높아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생산자는 부리자르기나 꼬리자르기와 같은 동물학대로 대응하거나 항생제와 같은 약품 투여에 의존하기도 한다.
 
약품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토록 생존에 열악한 환경 속에 처한 동물이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일상적 육식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그런데 생산자가 가축을 학대하면서까지 생산지향의 집약적 영농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렇게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값싼 고기를 찾는 소비자, 고기냄새가 나지 않는 부드러운 고기를 찾는 소비자, 과도한 육식을 하는 소비자야말로  생산자로 하여금 가축학대를 용인케 하며 공장식 사육을 고집하게 만든다.

 
물론 소비자 중에는 자신의 일상적인 육식습관이 동물학대와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축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동물학대에 동조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편견 못지않게 무지도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제는 자기가 소비하는 고기가 어떤 경로를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축사육과 도축의 실태를 알게 되면, 육식습관을 갖게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만큼 시중에 유통되는 고기는 동물의 생존권은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된 것으로 보면 된다. 비록 먹을 거리로서 위생관리기준을 통과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가축이 원래 인간의 먹이로  생산된 동물인 만큼, 더 이상 학대받는 가축을 양산하지 않으려면, 소비자 불매운동이 최선의 방책이다. 즉, 채식을 실천함으로써 가축의 수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식습관을 바꿔나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사태를 올바로 인식하면서 조금씩 변화해 나갈 수는 있다고 본다. 과도한 육식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육식의 횟수를 줄인다든지, 밖에서의 육식은 피하고 육식은 가정 내로 제한한다든지, 육식을 포기하기 힘들다면 과도한 동물학대에 노출된 고기는 구매하지 않고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좀더 나은 환경에서 사육된 고기를 먹는다든지, 극단적 채식이 힘들다면 달걀, 유제품만 섭취하고 고기는 피한다든지 등등.
 
아무튼 육식습관에 대한 재고 없이 가축의 생존권을 이야기하기 어려우며, 동물의 생존권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한, 가축 질병에서 비롯된, 또는 비롯될 수 있는 각종 신종 전염병을 근절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가축의 생존권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축의 생존이 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감히 무관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독감은 돼지독감이 아니다’, ‘돼지고기를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정보에 마냥 안심하기보다 이번 기회에 내 육식습관을 재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 또 ‘고기 소비가 줄어 축산농가가 망한다’는 호소에 귀 기울이기에 앞서, 오늘날의 축산실태 속에서 가축의 생존권이 얼마나 무참하게 훼손당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바라볼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 *함께 읽자. 피터 싱어 <동물해방>(인간사랑, 1999)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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