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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건강 
 
심하게 앓았다. 외식 때문이었는지, 피로 때문이었는지, 특별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배탈이 심하게 났다. 거의 하루 동안 굶고 누워 지내면서 몇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헛구역질을 하고, 두통, 근육통을 동반한 배앓이로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가끔 보리차를 홀짝이며 숨을 고르고 배를 주무르다 가수면 상태에 빠져드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시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로 뛰쳐나가길 반복했다.
 
이번에도 난 병원을 찾아가지도, 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아프기만 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내 모습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한다며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드물긴 하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기도 한다. 하지만 호미조차 필요 없는 상황에도 가래부터 꺼내 드는 병원이 싫어서라면 이해가 되려나.
 
환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의사
 

레이 스트랜드 "약이 사람을 죽인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일단 몸이 아프다 싶을 때 각기 다른 해결책을 찾는다. 약국부터 가는 사람, 근처 가정의나 보건소를 찾아가는 사람, 감기가 걸려도 대학병원 전문의만 신뢰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한 이웃이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제 남편은 아무리 아파도 병원엔 절대 가지 않고, 꼭 한의원만 가려고 해요. 그것도 가는 한의원이 정해져 있죠.”

 
이처럼 각자 질병 대응책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의사와 약에 기대하는 바는 누구나 같기 마련이다. 감기든, 암이든, 병에 걸린 사람은 빨리 완쾌돼서 평소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길 기대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의사와 약에 의지한다. 의사라면 병든 자신을 위해 적절한 약을 써서 잘 치료해 주리라고, 또 처방해 준 약을 잘 복용하다 보면 내 병이 씻은 듯 사라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병원 문을 두드리다 보면, 의사는 기대에 못 미친다. 대체로 의사는 시간이 없다. 특히 대학병원은 더 하다. 의사를 만나도, 내 병에 대해 찬찬히 설명할 시간도, 병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설명 들을 시간도, 처방 받은 약에 대해 세세히 문의할 시간도 없다. 좋은 의사라면 환자의 병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해서 청취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식구나 친구 중 의사가 있는 운 좋은 경우가 아닌 이상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의사라면, 우선 환자를 촉진해 그 병의 상당부분을 미리 파악하려 애쓰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의사는 촉진(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 진단하는 진찰법)보다는 첨단의료기기를 더 신봉하면서 자신의 역할 상당부분을 기계에게 떠넘기고 있다. 병원이 규모가 클수록 기기의존도는 더 높다. 환자는 의사의 관심보다는 기계 곁을 전전하며 불필요한 과잉검사에 지치고, 검사결과 때까지 노심초사하며, 값비싼 의료비용에 신음할 따름이다. 병이 위중하면 할수록, 또 희귀하면 할수록 비용은 더 올라간다.
 
아쉽게도 우리 병원은 사회정의와 공적 이익을 위한 공간이기를 점점 포기하며, 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의사 개인이 그런 의료 현실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의사도 돈 버는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인정해야 할 때인가 보다.
 
언젠가 대학병원에서 내시경검사를 받은 적 있는데, 결과를 받으러 갔더니 간호사가 내게 “OOO 의사선생님을 만나 결과를 들으세요”했다. 그 의사는 내게 단 한 마디, “이상 없습니다”로 진료비를 벌었고, 알고 보니 그 의사가 특진의라서 특진비까지 울며겨자먹기로 지불해야 했던 적이 있다.
 
마냥 믿기엔 너무 위험한 약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과 의사에 대해 정확히 다른 태도를 가지고 계셨지만 약에 대한 믿음은 같았던 것 같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평생 병원에 가지 않고 자가진단해서 상비약을 마련해 놓고 드시곤 하셨었다. 그러다 결국 병을 방치해 치료의 시기를 놓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20년 이상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는 동안, 그 어떤 사람보다 병원, 특히 대학병원을 신뢰하며 열심히 다니셨다. 의사의 지시라면 절대 복종하는 성실한 환자였지만, 여러 차례 수술과 갖은 약의 부작용을 묵묵히 견뎌내곤 하셨다.
 
우리가 평소 약을 복용할 때마다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다. 부작용 없는 약은 없고 모든 약은 위험하다는 것. 그 병이 경미하거나, 만성질환이라면 더더욱 약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의사가 처방한 고혈압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셨는데, 한 번은 얼굴을 포함해서 온 몸에 털이 자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결핵을 의심할 정도로 기침에 시달리기도 했다.
 
요즘처럼 신약이 넘쳐나는 시대에 의사가 모든 약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다가 합성약의 경우, 나름의 검증과정을 거치고는 있지만, 갈수록 그 과정은 축소되고 있어, 약을 복용하는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약효능 실험에 동원되고 있음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환자의 세 번째 사망원인이 약의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미국식 의료체계를 모방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약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여진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어머니는 아이들이 감기만 걸리면 항생제가 든 감기약을 먹이면서 키우셨다. 하지만 이 같은 약에 대한 맹신이 과도하게 의료비용을 지출하게 함과 동시에 당신 자신을 의학 실험실의 제물로 바치게 하리라고는, 결국에 당신 자신의 생명까지 단축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셨을 것이다.
 
비록 나 자신이 어린 시절,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폐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나의 건강을 의사와 약에 전적으로 기대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항상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좋은 생활습관 -올바른 위생습관, 금연, 적당한 운동, 좋은 식습관,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을 통해 자연 면역력을 키워나간다면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중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감기나 배탈과 같은 사소한 질병에 걸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좋은 생활습관이 가져다 준 자연 치유력에 의지해 극복하려 애쓰는 것이 병원을 찾기에 앞서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내가 두려운 것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것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보왕삼매경의 지혜를 되새긴다. 아무튼 지금 난 거의 나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 이경신일다는 어떤 곳?
 
*함께 읽자. 레이 스트랜드 <약이 사람을 죽인다>(웅진리빙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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